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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립운동가 이범석 선생(1900.10.20~1972.5.11) 서거일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의 빛나는 승리를 이끌다.

 

조국!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말이고, 또 생각 없이 불리며 일컬어지는 단어다. 그러나 조국이라는 이 두 글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게 제 각기 강력한 작용과 위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다시 없으리라 본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믿는 것이 옳은 내 견해이고, 내 체험의 소산인 것이다.
-이범석 장군의 회고록 [우둥불] 중에서-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만나 중국 망명을 결심하고 북로군정서에서 장교로 활동하며 600여 명의 생도를 교육하였다. 김좌진 장군과 이범석 장군의 지휘 아래 일본군을 대파하였으며, 일본군과 10여 차례 격전, 무장독립운동 사상 가장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한국광복군이 창설 된 후 참모장과 제2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하여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할 계획을 세웠다.

이범석 장군은 임정 요인들이 모두 귀환한 뒤인 1946년 6월 3일 500여 명의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조국에 돌아왔다. 귀국 직후 이범석 장군은 좌우의 극한 대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범석 장군은 1946년 10월 '민족지상 국가지상'을 내세운 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해방 공간에서 민족 국가 건설에 힘썼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는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군 창설과 육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자료 제공 : 정상규의 독립운동가 어플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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