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한문화 속으로 독립운동사
천마산대 약력독립신문 19230314

천마산대의 독립운동을 정리한 독립신문의 글이다. 

천마대약력(天摩隊略歷) 독립신문 1923-03 -14

천마대는 그 근거를 천마산에 두었다고 하야 이로써 명(名)하나니 이래 5년간 가장 맹렬한 모험행동을 취하야 적에게 다대(多大)한 타격을 주어 일즉  그 소리가 세상에 쟁쟁하던바 이제 그 약력을 揭하면 左와 같더라

최시흥(崔時興)은 의주군인이라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어 학업을 증수(曾修)치 못하엿스나 활달한 심지와 강개한 의기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려 하더니 경술국치를 당한 후로는 가슴을 치고 이를 갈면서서 시운(時運)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바 기미년 3월 1일에 33현(賢)이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독립을 선언하매 이에 동지 여러명과 더부러 급히 의거를 모의하고 員을 派하야 시위운동을 계획할세 예정(預定)의 일(日)에 군중을 지휘하야 의주군 고령삭면 시장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旱天霹靂갓치 만세를 고창(高唱)하면서 적의 헌병주재소로 조수潮水갓치 살입(殺入)하니 뎌 殘虐無道한 적은 총을 쏘며 鎗으로 刺하야 사상자가 수인에 이르는지라 시세불리함으로 再擧를 圖코져 悽然히 만주(滿洲)를 향하니 시년(時年)이 삽십(三十)이러라

금년(1920) 3월에 중국 유하현 삼원보(柳河縣 三源浦)에서 동지 수인과 동반하야 합이빈(哈爾濱)에 이르러서는 대사를 모의코져 노농공에 참여하야 만주리(滿洲里)로 왕(往)하엿다가 해산의 비운을 당함에 피눈물이 흘러내려 ○○장군과 작별하고 국내에 들어가고자 수만리험정(萬里險程)에 仝槖뿐으로 풍찬노숙의 천신만고를 당하면서 임강현(臨江縣) 팔도강(八道江)에 도달하다 仝年 12월에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구성군(龜城郡)에 이르러 최지풍(崔志豐)으로 더부러 동지를 모집하며 군물(軍物)을 준비할세 회중會衆이 30명에 달하고 화승총이 20여柄이라 이에 천마산에 들어가 근거를 정하고 인원을 파송하야 동지를 召募하며 군자금을 모집할세 민국 2년 3월에 적병 백여명에게 포위를 당하여 盡日 酣戰하엿스나 사상자는 없었으며 其翌日에는 33人이 손가락을 끊어 혈맹(血盟)하고 회중會衆의 公薦으로 최시흥은 주무(主務)가 되야 적을 벌코져 할세 아(我)의 근거를 파괴하려는 적은 전산(全山)에 방화하는지라 이에 삭주군 두룡산(頭龍山)으로 이둔(移屯)하다.

1920년 5월 초에 박정환(朴貞煥)은 부하 5인을 거느리고 삭주군 수북면(水北面)에서 기관을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적의 포위를 당하여 交鋒하다가 박정환(朴貞煥), 최윤옥(崔允玉)은 전사하고 3인은 잡혔다.

1920년 6월에 적병 수백여명이 사로(四路)로 침입하야 두룡산(頭龍山) 우리 본대(本隊)를 공격함애 鋒火를 서로 교전하여 맹렬한 전투를 행한 결과 적병 3명이 즉사하고 우리 측에서는 허기호(許基浩), 독고무(獨孤武), 이창근(李昌根), 류태순(柳泰純), 오원문(吳元文) 5人이 전사하고 3인이 被捉되다

 중과부적되야 천마산으로 이둔(移屯)할세 이 변보를 들은 출장하엿든 동지들은 應援으로 馳來하엿스나 不及하고 천마산으로 회합하야 復讐를 再圖할세 김상옥(金尙玉) 以下 5인은 두룡산(頭龍山)에서 이산(離散)한 동지를 召歸하기 위하야 출장하고 박영찬(朴泳燦) 이하 2인은 外南面에 촐장하야 적의 倀犬인 면장을 총살하고 면사무소를 소각하다

금 16일에 군제를 略定할세 사처(四處)로 운집하는 지사용부(志士勇夫)는 130여명에 달하엿더라 會象(衆)의 公薦으로 최시흥은 사령장(司令長)으로 최지풍은 부관으로 박응백(朴應伯), 박영찬(朴泳燦), 최윤희(崔允熙)는 참모로 김세진(金世鎭)은 경리로 하고 崔義楫을 中隊長으로 김상옥(金尙王), 김용택(金龍澤)을 소대장으로 하다

금 28일 부관 최지풍은 부하 10여명을 영솔하고 의주군(義州郡) 옥상면(玉上面) 적헌주재소敵憲駐在所와 仝面事務所를 공격하야 소각하고 적 1명을 총살하다

금년 7월 26일에 우리 본대는 적병 100여명에게 공격을 당하고 초산(楚山)으로 이둔(移屯)하는 길에 碧潼郡 加別面所를 소각하고 楚山郡 板面 富崇洞에서 적의 山林 監守 2명을 격살하야 獵銃 1정 彈丸 20발 望遠鏡 1개 軍刀 3정 기타 물품을 鹵獲하고 9월 1일에  渭原郡 漢堂地方에서는 적병의게 포위를 당하야 약간의 携帶品을 被奪하고 楚山郡○○에 進屯하다

9월 10일에 부관 최지풍(崔志豐)은 부하 7인을 영솔(領率)하고 초산군(楚山郡) 砂器洞에서 적경 1명을 총살하다

10월 10일에  사령장 최시흥은 만주에 渡하야 광복군총영과 연합을 작(作)하다

부관 최지풍은 민국 3년 2월에 부하 3인을 거느리고 熙川郡 北面 膺洞에 출장하엿다가 적의게 피격되야 김봉한(金鳳漢)은 전사하다 참모 박응백은 부하8인을 거느리고 碧潼郡 加別面 大上洞에서 적병 5명을 총살하다

二年 8월 龜城郡에 출장하엿던 중대장 최의집(崔義楫) 참모 최윤희(崔允喜)는 적의게 피살된바 심용준(沈龍俊)으로 중대장에 薦任하다 3년 3월 강계군(江界郡) 化景面 帝龍峴에서 雪을 掘하고 營寨을 建하야 주둔하다

仝年 3월 하순경에 심 중대장은 부하 11인을 영솔하고 熙川郡 西面에 출장하엿다가 回路에 楚山郡 桃源面에서 적경과 충돌되여 김명준(金明俊)은 전사하다

仝年 5월 4일 적경 6명이 침입하는 것을 步哨가 격퇴하다
仝十五日 박참모는 12명을 거느리고 寧遠郡 古面에 출장하엿다가 적경 1명을 총살하다.

7월 19일 심沈중대장급 박참모는 부하 19명을 거느리고 昌城郡 大楡洞 敵駐在所를 공격하야 연발 16정과 탄자 300발, 구도 10정, 기타 다수 물품을 획득하다. 9월 9일에 소대장 김상옥 경리 박영찬은 부하 16인을 거느리고 楚山郡 桃源面 敵警駐在所를 공격하야 적경 4명을 총살하고 연금 100원과 연발총3정, 탄알 300발,군도,군복 등 물품을 획득하다

仝年 9월 하순에 전대는 겨울을 나기 위하야 강계군(江界郡) 安桃里 산중에 營寨을 建하고 冬糧을 負運 준비하엿다가 적병의 침공을 피하야 군량을 抛棄하고 ○○지방에 이둔(移屯)하야 營寨을 재건할세 積雪이 丈餘라 萬難을 排하고 雪을 掘하야 寨을 立하고 過冬하다

四年 3월 초순에 전대는 一致히 무武장을 更整하고 부대를 나누어 출동할세 소대장 김상옥은 부하 3인을 거느리고 운산군雲山郡에서 溫井駐在所를 공격하엿스며 중대장 심용준(沈龍俊)은 부하 5명을 거느리고 熙川에서 적과 충돌하야 약 2시간 戰鬪하엿스며 부사副士 김준원金俊源은 부하7명으로 더부러 楚山에서 적과 교전하엿스며 其后 熙川에서 東倉駐在所를 공격하다가 地帶의 관계와 중과부적으로 허신호(許信浩)는 전사하엿스며 참모參謀 박응백(朴應伯)은 4인을 거느리고 寧遠郡 古面 城谷에서 적과 교전하야 5명을 총살하고 7명을 부상케 하다

八月 初旬 제1소대장 김상옥金尙玉은 부하 5인을 거느리고 운산군(雲川郡) 溫井附近에서 적병 100여명과 종일토록 교전하다

부사(副士) 최재경(崔在京)은 부하 4인을 거느리고 渭原郡 漢堂面에서 적 1명을 虜殺하고 단총1정과 탄환 기타 물품을 획득하다 참모 박응백은 부하 4인을 거느리고 강계지방(江界地方)에서 民心을 收拾하며 軍資金을 募集하다가 東面馬山里에서 敵경과 約二時間 交戰하다

八月 下旬 全軍隊는 강계지방을으로 집중하야 ○○長의 귀환을 고대하던 중에 대한광복군 총영(大韓光復軍 總營)에서 특파한 이한준(李漢俊)의게 ○○長 逢變의 급보를 접하고 즉시 後援을 계획할세 소대장 김준원(金俊源) 이하 일소대는 본영(本營)에 주둔케 하고 중대장 이하 2소대는 ○○縣에 至하야 적의 追兵 35인과 약 1시간 교전하다가 마침내 적을 물리치고 통의부(統義府)와 연락(聯絡)하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화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