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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은 실존인물, 허구로 몰아가는 학계는 반성해야

허황옥 (?~188) 금관가야 시조인 수로왕의 비. 허황후(許皇后)라고도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ㆍ김해허씨(金海許氏)의 시조모.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상제(上帝)의 명을 받아 공주를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게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허황옥 [許黃玉] (차생활문화대전, 2012. 7. 10.

허황옥(許黃玉, 32년 ~ 189년)은 가락국의 초대 왕인 수로왕의 부인으로, 허황후 또는 보주태후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아요디아의 공주로, 48년에 오빠 장유화상 및 수행원들과 배를 타고 가락국에 와서 왕후가 되었다.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았다. (위키백과)

허황옥은 위와 같이 사전 설명은 되어있지만 우리 주류역사학계에서 실존인물로 보고 있지 않다. 정말 허구의 인물일까? 허황옥이 실존인물인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가야땅으로 오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보주태후 허씨의 보주(普州)는 사천성 안악현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 비문(碑文)

허왕후 능침 앞에 서 있는 비석에는 가락국수로왕비(駕洛國首露王妃) 보주태후허씨릉(普州太后許氏陵) 이라고 쓰여 있다 

김해김씨 세보에 나오는 보주태후 허황옥

보주(普州)는 어디인가? 현재의 사천성 안악현이다.

김병모 교수는 "나도 처음에는 보주가 인도에 있는 지방의 이름일것이라 생각하고 인도에서 구입한 여러 지도에서 보주로 발음될 만한 지명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보주는 뜻밖에 중국 사천성 안악현의 옛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고 처음 보주가 안악현임을 알게 된 과정을 밝혔다. 

지금은 '보주'를 검색하면 '안악현'이라고 금방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때에는 이를 알아내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이제 사천성 안악현으로 가보자. 

구글 지도의 안악현(보주)

사천성 안악현 허씨집성촌에서 발견된 「신정기神井記」
중국 사천성(四川省) 안악현(安岳縣) 일대에는 인구 15만 명의 허씨집성촌이 있다. 이곳에 있는 보주(普州) 허씨 사당 대문에는 쌍어문(雙魚紋)이 있다. 집성촌 뒷산의 암벽에 음각된 신정(神井)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에는 허황옥(許黃玉)이라는 소녀의 이름이 나온다.

안악에서 후한 때 (925년) 금석문인 「神井記」에 '보주허여황옥(普州許女黃玉)'이 새겨진 명문을 발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東漢(서기 25-220년)초에 許黃玉이라는 소녀가 있어 용모가 수려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 

이로써 허황옥이 사천성 안악현에서 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은 시대를 다룬 『후한서(後漢書)』에는 사천성 안악현(당시 보주)의 허씨 세력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47년 허씨집단 무한(우한)으로의 강제이주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서기 47년 양자강변의 남군(南郡)에서 토착인들(南郡蠻)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정부는 가까운 형주(刑州)의 유상 장군을 파견하여 반란세력을 제압했다. 그 결과 토착인 7천명이 강하(江夏, 양자강 하류 무한武漢지방)로 추방되었다.


허황옥(許黃玉) 가문은 이 반란에 가담했다가 강제이주를 당했고, 그 뒤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지나 바다를 거쳐 가야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로는 아시리아에서 시작된 쌍어문(雙魚紋)이 한반도까지 전래되는 경로와 일치한다.

중국 사천성 서운향의 보주 허씨 사당 대문에 새겨진 쌍어문 ,양자강 주변 한나라때 제사용 그릇의 쌍어문 (운남대학 소장)

첫 봉기를 일으킨 때가 기원후 47년이고 허왕후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때가 기원후 48년 이었다. 정확하게 역사의 톱니가 들어 맞는 것이다.

"보주(普州)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를 해 봤더니, 보주는 옛날 중국의 한 지명이었다. 중국 후한 때의 역사서인 후한서를 찾아 보았더니 당시 그 땅 이름은 '촉'이었는데 그 촉 땅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 즉 남만(南蠻)들이 중앙정부에 대항해서 두 번의 봉기를 일으킨다. 그런데 그 주동자의 이름이 허성(許聖) 이었다. 그러니까 후한 때 보주땅에 허씨 성을 가진 집단이 있었는데,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허황옥(許黃玉)이 가야(伽倻)에 출현하기 1년 전인  47년에 보주(普州)를 비롯한 사천성(四川省)에서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이 진압된 후 연루자들은 양자강 연변(沿邊)의 무한(武漢)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AD 48년 허황옥 세력이 배를 타고 가락국으로 오다(삼국유사)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5월 배를 타고 약 3개월간의 항해 끝에 가락국으로 온 것은 서기 48년 7월 27일이었다.

결정적 자료들을 다시 정리해보자.

① 허황옥은 보주(普州)태후 (허왕후 비문, 김해김씨 족보)
② 보주(普州) = 사천성 안악현
③ 사천성 안악현 허씨 집성촌 「신정기神井記」 = 동한(東漢)초,보주, 허여황옥(許女黃玉)
④ 『후한서』 서기 47년 사천성(四川省) 소수민족 반란 →양자강 연변(沿邊)의 무한(武漢)으로 강제이주
⑤ 『삼국유사』 서기 48년 허황옥 세력이 가락국에 도달하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일단 "허황옥은 실존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와 『후한서』 그리고 『신정기』 등을 통해서 보면 실존인물임이 명확하다. 지금 우리 학계가 허황옥을 허구와 상상의 인물로 보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왜곡이다. 김병모 교수 등의 이런 주장이 이제는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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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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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두석 2020-09-04 12:04:19

    허황후에 대해 학계의 의견이 다양하다.
    1.가야불교사 연구회(김해, 인해, 도명스님 등)는
    교수(정재진)들과 다양한 관점에서 5년간 학술대회를 매년 열어서 인도 아요디아에서 허황후가 해양루트를 통해 가야에 왔다는 주장이 절대 다수의견이다.

    2.학계의 친일사학자니 반불교적 학자들은 남방불교전래설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편파적 연구와 발표가 있다는 설이 있다.
    ㅡ나무위키에 허황옥을 검색바람ㅡ

    3.과학적 팩트
    작년 국립박물관에서 허황옥이 가져온 파사석탑이 인도에서만 나는 엽락석임을 과학적으로 증명(고려대)하였다.
    ㅡ경향신문, 이기환 참조   삭제

    • 허순정 2020-08-15 16:13:42

      허씨성을 가진사람으로 고마운 기사내용입니다. 애독하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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