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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의사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

강우규 (姜宇奎, 1855년 ~ 1920년)의사는 1919년 3·1 혁명 당시 만주, 노령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그 해 5월 노령의 노인동맹단에 참여해 조선 총독을 폭살시킬 계획을 세우고 폭탄을 구입해 허형과 함께 8월 5일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 서울 안국동 김종호의 집에서 머물던 강우규는 3.1운동으로 물러난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부인해온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사진과 부임 정보를 입수했다. 

64세의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는 남대문 정거장(현 서울역)에서 일제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 일행에게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총독의 폭살에는 실패하고 수행원과 경찰 등 30여 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이후 도피하며 거사를 다시 준비하던 중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아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순국하던 그해는 65세로 머리칼도 수염도 다 허옇게 센 백발노인이었지만 평생 한약방으로 모은 전 재산을 교육계몽과 독립운동에 바쳐왔던 진정한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유서에는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라고 썼다. 실제로 강우규 의거 이후에 의열 투쟁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서울시는 지난 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역 맞은 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이름을 '서울역버스환승센터. 강우규 의거터'로 병기하여 서울 시민들이 강우규 의사의 삶과 애국심을 날마다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뜻과 정신을 기리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서울역 앞에 서 있는 강우규 의사 동상 (사진 = 한문화타임즈)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강우규 의사가 순국 직전에 남긴 유시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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