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관 미사협 상임대표의 2016년 중국을 다녀오며 쓴, 우리역사 현장 답사기를 7회에 걸쳐서  연재합니다

(2016년 7월31일, 일) 하택시 ⟶ 조현 ⟶ 기자총 ⟶ 개봉시 ③

- 기자(箕子)는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오늘은 하택시를 출발해서 조현(曺縣)에 있는 기자총(箕子塚)을 답사한 후 개봉(開封)까지 가는 일정이다. 버스로 330km 정도 이동하는 거리라서 비교적 수월한 하루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기자총을 쉽게 찾지 못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일직선으로 판 산동성 조현 근처 수로

하택시를 벗어나 조현(曺縣)까지 가는 길 70km는 놀랍게도 직선이다. 주위는 평원이고 온통 옥수수 밭이다. 격자형으로 수로가 정연하게 나 있다. 우리가 달리는 길도 수로와 같이 간다. 조현은 산동성 서남 지역이고 하남성 상구(商邱)와 접하고 있다. 조현은 『사기』 <은본기>에서 말하는 박(亳)일 것이다. 『사기』에 의하면 은(殷)나라 중흥 군주인 14대 탕(湯)왕이 도읍한 곳이 박이고, 현재 기자총에서 멀지 않는 곳에 탕왕의 묘가 있다. 자신의 본거지에 묻히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에 이 지역이 박이 맞을 것이다. 조현, 상구, 하남성 안양(安陽) 일대가 은나라 중심지였다. 은나라는 상(商)나라고도 하는데 우리와 같은 동이족 나라였다.

한 시간 반을 달린 후 조현 현성이 있는 도시 중앙 큰 길이 끝나는 네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기자묘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가다가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바로 합해초시(合海超市)라는 가게를 끼고 우회전했다. 초시는 우리나라 수퍼다. 울퉁불퉁한 버드나무 가로수 길을 덜컹거리며 더 가자 마을이 나오고 삼거리다. 직진해서 갔더니 마을이 끝나는 곳에 큰 돌로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와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버드나무 숲길을 계속 갔다. 수로에 놓인 다리를 두 개 지나자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난다. 정장진(鄭莊鎭)이다. 이 마을을 벗어나서 직진하니 다시 마을이 나타나고 조그마한 네거리에 과일가게가 있다. 여기에서 양쪽으로 과일가게를 끼고 좌회전해서 조금 가니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새 마을이다. 주민들이 웃통을 벗고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기자묘를 물으니 마을 끝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다 다리를 건너면 옥수수 밭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알려준 대로 가니 제법 널찍한 수로 위에 다리가 있고, 주민들이 수로에서 낚시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니 농로 삼거리가 나오고 주위는 온통 옥수수 밭이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었다. 이 평원 옥수수 밭에서 어떻게 기자묘를 찾는단 말인가. 난감하다.

마을 사람들

답사에는 운이 따라야 한다. 마을 주민 한사람이 짐칸을 붙인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서 안내하겠다고 한다. 옥수수 밭을 헤치고 따라갔다. 날은 덥고 옥수수가 사람 키보다 크니 고역이다. 50m 쯤 옥수수 밭을 헤치고 가니 기자묘가 있었다. 우리 상고사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기자의 묘를 찾은 것이다. 멀고 먼 서울에서 와서 마침내 기자묘를 찾았다. 이 노인이 없었다면 허탕쳤을 것이다. 초목이 무성한 여름에는 기자묘 답사를 피하는 것이 좋음을 알겠다. 노인에게 사례하려 했지만 끝내 사양한다. 오래된 무덤을 한국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찾으니 아마도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상하게 비쳤을 것이다.

은나라 태사 기자묘비

기자는 주나라 왕족이다. 『사기』에 의하면 은나라 마지막 주(紂)왕이 무도하여 기자가 간언하자 감옥에 가두었다. 주(周)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기자는 석방되어 조선으로 갔다. 그러나 『사기』 <송미자 세가>는 주 무왕이 기자를 찾아가서 나라 다스리는 근본에 관해서 질문하자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설명했고, 주 무왕은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했으나 그를 신하의 신분으로 대하지는 않았다고 전한다. 기자가 조선으로 이민 갔는지, 망명했는지, 제후로 봉함을 받았는지 기록이 명확하지 않다. 기자가 옮겨간 조선이 지금 어디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기자묘는 거의 방치되어 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풀이 수북하고, 볼품없는 나무마저 묘 옆에 자라고 있다. 80년대에 세운 비석이 은나라 태사 기자의 묘라고 말해주고 있다. 

기자묘 위치를 위도와 경도로 표시한 표석

게다가 위치를 표사하는 좌표인 위도와 경도까지 표시해 놓았다. 아마도 기자묘가 황폐해져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비석 뒷면에는 기자의 일생을 적어 놓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쪽 기록들을 인용하고 있다. 한치윤의 『해동역사』를 인용하여 기자가 일족 5천 명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갔고, 홍범구주와 8개 법 조항으로 조선을 다스리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써놓았다. 『삼국사기』기록을 인용하여 고려 때 지금 평양에 기자 사당을 세웠고, 14세기에는 기자묘를 조성했다고 기록했다. 『해동역사』 원문에는 명나라 때 편찬된 『삼재도회(三才圖會)』라는 책을 인용하여 기자가 5천 명과 함께 조선에 왔다고 되어 있다. 이 책을 보지 못해 오천 명이 왔다는 최초 출전을 찾을 수는 없지만 고대 역사책에는 이 기록이 없다. 참 씁쓸하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만리장성이 지금 황해도에서 시작한다고 지도에 그려놓았다. 그러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등 중국 기록은 일관되게 하북성 동북부에 있는 갈석산 근처에서 장성이 시작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나라 때 조금 더 북쪽인 산해관부터 장성을 쌓았다. 소위 국사학계 태두라는 이병도 씨가 일본 식민사학자의 견해에 따라 만리장성의 기점이 황해도 수안군이라고 주장한 것을 동북공정에서 그대로 써먹은 것이다. 만리장성의 흔적이 수안군에 하나도 없는데도 단지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낙랑군 수성현(遂城縣)의 遂(수)자가 황해도 수안군의 遂(수)자와 같다는 이유로 그렇게 비정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만리장성을 쌓은 후 천년이 지난 고려 때 수안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기자묘의 비석 기록도 중국 자신들의 기록이 소략한 탓으로 한국 기록을 인용하면서 마치 기자가 우리 민족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처럼 기록한 것이다. “보아라, 너희들이 그렇게 쓰지 않았느냐!”고 중국이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중화 사대주의 역사관과 매국위증사학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얼마나 큰 걸림돌인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묘 관리에 정성도 들이지 않고, 비문의 내용도 별 게 없으니 기자가 중국 역사에서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묘 자체가 국가가 아닌 시에서 관리하는 유적이다. 그러나 우리 고대사에서 기자는 논란의 대상이다. 사대모화주의 유학자들과 매국위증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에서 단군조선이 기자조선에 망하고, 기자조선은 위만조선에 망하고, 위만조선은 한나라에 망하고 그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 나라의 중심이 지금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기자가 하북성 동북부까지 왔을지는 몰라도 평양까지는 오지 못했다는데 대체로 광복 후 연구 성과가 일치한다.

기자가 이곳 산동성 서남쪽 끝에서 평양까지 왔다가 다시 이곳에 와서 묻혔다는 주장은 현장에서 보면 믿기 어렵다. 이 근처가 은나라의 본거지고 기자의 고향이니 기자의 무덤도 이곳에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기』 <송미자 세가> 주석에는 양국(梁國) 몽현(蒙縣)에 기자의 무덤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오늘날 하남성 상구(商邱) 지역에 해당된다고 한다. 지금 기자묘가 있는 조현은 상구시와 붙어 있다. 근처에 기자가 독서하던 곳이 있다는 기록도 있다. 상구는 상(商)나라 언덕(구, 邱)이라는 뜻이고 상나라가 은나라이다. 이덕일 소장은 邱(구)자에는 언덕이라는 뜻도 있고 옛 터전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평원이고 언덕이 없으니 구(邱)자의 뜻이 옛 터전이 확실하다.

이러니 지금 평양에 있는 기자묘는 허묘일 것이다. 왜 고려 때 평양에 기자 사당을 짓고 허묘까지 만들고, 조선에 들어서도 기자를 존숭했을까? 공자가 기자, 미자, 비간을 은나라 말기 세 사람의 어진 인물이라고 평가한 데 연유할 것이다. 유학의 종장인 공자가 어진 인물로 평가한 기자가 조선에 와서 백성들을 교화했다고 하고, 공자가 존경한 주나라 무왕에게 홍범을 가르친 인물이 기자이니 기자가 조선 유학자들의 존숭 대상이 된 것이다. 조선의 사대주의 유학자들의 역사관이 바로 이 기자 존숭에 반영되어 있다.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했지만 신하가 아니었다는 기록은 조선이 무왕의 지배를 받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자가 조선의 제후가 되었다 해도 고조선 서부 좁은 지역에 불과했을 것이다. 며칠 후에 답사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하북성 노룡현은 옛 고죽국 땅인데 이곳이 기자가 제후로 봉함을 받은 지역이라는 중국 기록을 믿는다면 기자가 머문 지역은 난하(灤河)를 넘지 못했다.

현장에서 기자묘를 보니 기자가 평양까지 왔다는 주장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사리에 맞지도 않고, 지리적 여건과도 부합하지 않음을 알겠다. 논란 대상인 기자묘를 찾고 보니 여행 경비가 아깝지 않다. 고대 문헌 기록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기자묘를 떠나 조현 시내 허술한 위글족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찌는 날씨라 낮술을 마시지 않는 필자도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아침에 출발한 하택시 까지 되돌아 가서 개봉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고속도로 주변 경관은 별로 변함이 없다. 옥수수 밭의 연속이다. 하남성에 들어서자 산동성과는 달리 수양버들 가로수가 많다. 산동성 가로수는 대부분이 버드나무였다. 개봉(開封)시가 가까워지자 온통 벼 논아다. 기후가 산동성과 별 차이가 없는데 식생은 구분이 완연하다.

개봉은 조광윤(趙匡胤, 서기 927-976))이 세운 북송(北宋, 서기 960-1127)의 도읍이다. 여진족의 금(金, 서기 1115-1234)나라가 개봉을 함락하자 남쪽으로 도망가서 다시 세운 송나라는 남송(南宋, 서기 1127-1279)이다. 개봉에 들어서자 사방으로 나있는 널찍한 대로가 시원하다. 오래된 도시가 아니고 신시가지임이 확실하다. 고층 건물들의 외관이 우아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현장이다. 홀리데이 인(Holiday Inn)과 연계한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별로다. 해가 졌는데도 너무 덮다. 황노자(黃老子)라는 오래된 만두 전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맛이 일품이다. 내일은 개봉 옛 시가지를 둘러본 다음 정주로 가서 비행기로 북경으로 이동한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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