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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대 문장가, 강수(强首)는 석탈해의 월성 석씨 18세 후손

한국사의 가야를 일본서기 임나로 비정하는 1차 근거가 광개토태왕비문의 '임나가라'와 <삼국사기> ‘강수열전(强首列傳)’에서 언급된 '임나가랑' 그리고 진경대사탑비에서 언급된 '임나의 왕족'이다. 조선총독부는 이 세 가지 기록을 중심으로 임나가 한반도에 존재하였다는 근거 자료로 삼아 임나는 곧 한반도 땅의 가야라고 비정해 왔다. 그리고 우리 학계는 이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이완영 선생의 논문 중 강수 관련 논문의 핵심만을  발췌한 것이다. 한반도에 임나가 있었다는 주장의 논리로 사용되고 있는 강수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리한 글이다. 전문은 논문에서 살펴보시기 바란다. 

 여기서 그동안 주목을 받지 않았던 강수의 성(姓)을 다시 살펴보고 본문을 논하고자 한다.​

강수의 성은 ‘석씨昔氏’ 이다

강수(强首, ? ~ 692년?)의 성은 강수强首에서 보듯 강씨(强氏)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강수의 원래 이름은 그의 머리 형태로 지은 "우두(牛頭)"라는 이름이었다. 태종무열왕이 강수를 총애하여 성을 임나가랑인의 후손이기에 임씨(任氏)로, 이름은 강수(强首)로 내려 주었다. 임씨(任氏) 성(姓)을 사성(賜姓) 받았기에 임강수(任强首)라고도 보았다. ​

만생보(萬生譜)에는 충주강씨(忠州强氏)가 있지만 그 족보에는 강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강수는 임씨를 사성 받았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강수의 성에 명확한 파악이 안 되고 이견이 생긴 이유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강수 관련 문헌연구가 기본적으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강수열전에는 명백히 강수의 성을 기록하고 있다.​

* 『強首, 中原京沙梁人也. 父昔諦奈麻』 

  강수는 중원경 사량부 사람이다. 아버지는 석체(昔諦) 나마(奈麻)였다. 

    <<三國史記 卷第四十六 列傳 第六 强首>>

강수열전에는 강수의 아버지는 석체(昔諦)임을 명시하여 강수가 석씨(昔氏)의 후손임을 밝혀 놓았다. 그렇지만 기존의 연구 대부분이 석체를 성과 이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이름으로 인식하였다. 자료의 빈곤과 더불어 조선총독부시기부터 강수는 임나 출신이라는 논지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강수와 임나가랑의 관계는 그의 뿌리 석씨(昔氏)에 대한 이해부터 다시 정립되어야 한다.

강수(强首)는 석탈해의 월성 석씨(昔氏) 18세 후손

강수는 강씨(强氏)나 임씨(任氏)가 아니다. 그의 성은 기록상 석씨(昔氏)임이 명확하다. 그의 기록은 월성(경주)석씨 족보에 명확히 등장한다. 

<월성석씨 대동보 >△월성(경주) 석씨 대동보에 기록되어 있는 석체와 그의 아들 강수

​ 석(昔)씨는 석탈해를 시조로 하는 월성석씨(月城昔氏)가 있다. 석탈해 후손인 신라 11대왕 조분 이사금의 3남인 6세 석지(昔祉) 후손으로 16세 석오원(昔五源)이 있다. 그는 첨성대와 분황사를 건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석오원의 차남이 석체(昔諦)로 곧 강수의 아버지이다. 그렇기에 강수는 석탈해의 월성석씨 18세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석탈해 후손인 강수의 본관은 임나가랑

이로써 강수열전에 기록된 강수가 성씨로 언급한 신본임나가라인(臣奉任那加良人)의 본(本)의 의미가 명확해 진다. 강수는 자신의 뿌리인 석씨를 본으로 태종대왕에게 아뢴 것이다. 그리고 그 석씨가 임나가랑인이라는 것이다. ​

강수열전에 본(本)에 주목한 이가 이병선이었다. 그는 본의 개념을 '본관(本貫)', ‘관향(貫鄕)'으로 파악하여 대마도로 비정되는 임나가랑인으로 보았다. (* 이병선, 임나국과 대마도, (아세아문화사, 1987). 43~44쪽) 본고에서는 강수의 본관인 석씨를 중심으로 가야는 임나라는 현 한일학계의 주장의 한계를 논하고 임나가랑의 위치를 재비정할 것이다.​

이병선, <임나국과 대마도> (아세아문화사, 1987)

위의 논지를 바탕으로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갈 역사적 사실은 기존의 선행연구자들이 대부분 주장한 강수가 중원인 국원에 살고 있는 계기로 논했던 "강수는 대가야나 금관가야의 귀족의 후손으로 사민정책徙民政策으로 이주하였다는 주장"은 강수에 대한 기초문헌 사료 검토도 없이 주장되어 온 허구란 것이며 그 논리에 입각한 '가야는 임나'라는 주장도 논리 근거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수는 대가야나 금관가야의 인물이 아니라 신라의 왕족인 석탈해의 후손이기에 대가야와 금관가야와 연결 지어 사민된 존재로의 강수 존재는 원래부터 역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강수의 본(本)의 의미로 본다면 강수열전의 임나가랑은 석씨 성의 기원처를 의미하는 것이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완영 , <<삼국사기> 강수열전 정역正譯을 통한 임나가랑의 위치 비정> 논문 중에서>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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