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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랑 대구경북지부, 경주의 신라와 동학을 체험하다3월 30일, 경주 역사 투어 성황리에 마쳐

대한사랑 대구지부는 화창한 봄날을 맞아 지난 3월 30일 대형버스를 대절하여 대구에서 출발하여 경주의 신라 역사문화와 조선말 동학의 역사문화를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단법인 대한사랑大韓史郞에서는 2024년을 맞아 매달 박물관과 역사유적 탐방을 통해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역사특강과 더불어 현장에서 역사를 느끼는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 1월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을 2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탐방한 바 있다. 

3월 30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9시에 도착한 대구와 포항과 경산, 울산 등지에서 온 70여명의 대한사랑 회원과 참여자들은 들뜬 마음으로 육부전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한사랑 윤창열 이사장의 개회사와 함께 시작한 이번 탐방은 신라 건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나정과 육부전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나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정(蘿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강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옛 적에 부여 황실의 딸 파소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눈수에서 도망하여 동옥저에 이르렀다가 또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진한의 나을촌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때 파소는 나을촌의 나정이라는 우물 근방에서 박혁거세를 낳게 된다. 이곳에 사는 소벌도리라는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가서 파소의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고 박혁거세가 13세가 되어 진한 6부가 함께 받들어 박혁거세 거서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위 이야기는 <태백일사>와 <삼국유사> 등을 합한 내용이다.  

나정 유적지에서 나와 육부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거 양산재로 불렸던 육부전은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진한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기원전 57년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취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의 6부 촌장들이 알천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신라의 첫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여기에서 이, 최, 정, 손, 배, 설 씨가 나오게 되었다. 지금도 그 자손들이 이곳 육부전에 와서 일년에 한두번씩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육부전은 평소에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으나 이날은 특별히 공개해주셔서 감사했다. 

신라의 건국 역사를 보다가 거리상 신라 멸망의 역사가 담겨 있는 포석정으로 이동하였다. 일제는 보물 1호 남대문, 보물 2호 동대문, 고적 1호 포석정으로 정했다. 현재 남대문은 국보 1호가 되고 동대문은 보물 1호가 되었고 고적 1호는 포석정이 되었다.

일제가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가 동대문을 입성하고, 가토 기요마사 부대는 남대문을 통해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보물로 지정한 것을 우리는 무턱대로 국보1호, 보물1호라며 계승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포석정이 1호라는데도 음모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경애왕 4년(927)겨울 11월에 견훤이 갑자기 서울에 쳐들어갔다. 왕은 포석정(鮑石亭)에서 잔치를 베풀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왕은허둥지둥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견훤은) 왕을 핍박하여 자살하도록 했고, 왕비를 강제로 욕보였다. 부하들을 풀어 궁녀들을 욕보였다.” (‘신라본기·경애왕조’) 라고 하는 구절이 있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으나 이를 강조한 일제의 의도는 다분했다.

 포석정은 단순히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포석사였다. <화랑세기>를 보면 이 포석사에는 화랑 중의 화랑으로 추앙받은 문노(文努)의 화상을 모셨으며 8대 풍월주 문노와 윤궁이 혼인할 때는 진평대왕이 친히 포석사에 간 적이 있다. 또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생 문희의 혼인식이 열린 곳도 바로 포석사였다. 국가제사를 마치고 나면 음복을 하거나 길례를 한 뒤 피로연 장소로 활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마치 왕이 미쳐서 향응을 하다가 당한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포석정에서 5분 거리에 지마왕릉이 있다. 신라 6대 지마왕(112∼134)의 무덤이다.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특히 말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갈의 위치는 대략 고구려의 북쪽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신라의 초기의 국경 문제, 신라의 위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이다. 

이어 답사 일행은 오릉을 향했다. 오릉은 박혁거세와 알영여왕과 남해왕, 파사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오릉은 자연 경관 속에서 산책하기에도 좋은 장소다. 고라니도 가끔 뛰어노는 것을 볼 수 있다는데 이번에는 보지 못했다. 

 오릉안에는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의 우물이 있었다. 일명 알영정이라고 하는데 작은 정자와 함께 있지만 박혁거세와 더불어 두명의 성인으로 불리웠기에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오릉을 벗어나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날씨 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정보가 없어서 잠시 당황했지만 일회용 우비를 다량으로 가져온 회원덕에 모두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먼저 분황사가 예정지였으나 방향을 실내로 돌렸다. 먼저 홍룡사지 황룡사 역사관을 먼저 가기로 했다. 황룡사 역사관에는 9층 목탑 모형이 있다. 여기서 설명을 한후에 15분 영상을 시청했다. 이 시청을 통해서 황룡사의 위용과 그 중앙에 있는 9층목탑이 경주에서 어떻게 자리잡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답사팀은 황룡사의 흔적이 담긴 황룡사지 터전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비가 개었다. 실내에 있을때 비가 개어서 인지 더 시원하고 맑은 하늘이었다. 황룡사지를 걸으며 아까 보았던 영상속의 목탑을 생각하며 목탑의 흔적이 있는 초석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초석은 64개 정도였는데 대략 초석 하나에 한명이 올라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드론으로 위에서 찍었다면 더 멋지게 사진이 나올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황사 당간지주를 거쳐서 분황사로 갔다. 분황사에는 모전석탑이 있다. 그리고 아형과 훔형의 금강역사가 있고 그 옆에 원효비석이 있다. 화쟁국사 비석인데 이는 고려 숙종이 내려준 것이다. 여기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도 있어서 눈길이 간다.

그리고 그 뒤에 보면 탄허스님이 쓴 비석이 있다. 여기에는 북방불기가 써 있다. 북방불기로 올해는 3050년이다. 탄허스님은 돌아가실때까지 북방불기를 고집했다. 이유는 결국 북방불기가 맞기 때문일 것이다. 3천년이 지나면 미륵불의 시대로 들어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신라도 처음 흥륜사부터 미륵신앙이 강했다. 원효도 그랬었고 그의 아들 설총은 설총결을 남겨 이 나라 간방땅에 미륵불의 시대가 도래함을 알렸다. 

그렇게 황룡사와 분황사를 거쳐서 버스를 타고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먼저 성덕대왕 신종을 보고 소리를 들었다. 항상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관중의 하나인 월지관을 향했다.월지관은 일년간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번 관람이 마지막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설명하고 있는 김용호 가이드님

그리고 자유시간후에 우리는 용담정으로 향했다. 동학의 수운 최제우 대신가가 수행하고 득도하고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신 곳이다. 동학의 본질은 최제우의 동학 창도에 있는데 그 핵심적인 장소가 바로 용담정이다.

동학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1860년에 창도하였다. 그 창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1860년 4월 5일에 있었던 최제우 선생의 신비체험이다. 이를 천상문답사건(天上問答사건)이라고 한다. 이 천상문답사건은 ​동학의 3대 경전 도원기서, 동경대전, 용담유사에 생생히 기록되어있다.

<동경대전>에는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용담유사>에는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도원기서>에는 "나는 바로 상제이다. 너는 상제를 모르느냐?"라고 이 광경을 표현하고 있다. 

바로 수운 최제우 선생 앞에 음성(仙語)으로 나타난 분이 자신의 호칭을 '상제'라고 했다는 것이다. 상제! 한울님이나 천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상제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사건이고 중요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서부터 동학은 왜곡되어있다. 우리가 올랐던 용담정 주변의 설명이나 수운관이라는 기념관 어디에서도 상제라는 호칭을 볼 수 없으며 오직 한울님이라는 다른 호칭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렇게 동학의 본질을 공유하고나서 그 상제님이 내려주신 주문이 시천주주문이라는 것. 동학을 제대로 알려면 시천주주문을 많이 읽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최제우 생가였다. 올해는 수운 최제우 대신자 탄생 200주년이다. 그래서 더욱 생가에서 그 흔적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대한사랑 대구경북지부의 하루 나절의 경주 투어는 끝이 났다. 이날 마라톤으로 교통통제도 있었고 벚꽃 축제 기간이라서 사람이 많이 몰렸지만 크게 밀리는 시간 없이 차질없게 진행되어서 다행이었다. 이날 온 대한사랑 회원과 역사를 사랑하는 참여자들에게는 신라도 동학도 과거 역사 속에만 남은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현재진행형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의 화랑이 되고 이 시대의 동학군이 되어야 할 것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대구경북지역의 역사광복 활동이 더 기대가 된다. 

 

# 당일 행사 사진 촬영 : 박유찬님

 

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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