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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초라한 퇴장,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는 만큼 보인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이 말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전 국민을 문화유산의 매력에 빠뜨렸던 유홍준 교수가 남긴, 거의 유행어와도 같은 명제다. 이 마법 같은 한마디에 매료되어 폐사지의 쓰러진 탑을 찾아가고 흙투성이 기와조각 앞에 쪼그려 앉았던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하지만 그가 국가 박물관의 최고 사령탑 자리에 올랐을 때, 정작 우리 눈에 보인 것은 전혀 엉뚱한 풍경이었다. 그토록 ‘반만년’의 미학을 설파하던 대문장가의 눈에는 정작 박물관 쇼케이스 안에 똬리를 튼 해묵은 식민사관의 곰팡내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던 화려한 언설은 국가의 시원을 증명해야 할 전시실 앞에서 길을 잃었고, 대중의 열광을 등에 업고 입성한 자리에는 역사의 수호자 대신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문 초라한 문화 권력자의 뒷모습만 남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순한 유물 보관소가 아니다. 한 민족이 지나온 시공간의 정체성을 응축하고, 국가의 역사관과 문화적 자존을 안팎에 천명하는 최고 권위의 학술·전시 기관이다.그러나 최근 유홍준 관장이 빚어낸 일련의 파문과 불명예 퇴진은 우리 박물관 행정과 역사인식이 처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대중적 명성을 쌓고 입만 열면 ‘반만년 역사와 미술사’를 외치던 문화 권력자가 정작 국가 최고 박물관의 수장 자리에서 보여준 것은 역사 왜곡의 묵인과 공사(公私) 구분을 상실한 사적 전횡뿐이었다.

가장 뼈아픈 실책은 유 관장이 재임 중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질적인 역사 왜곡 논란을 외면하고 방치했다는 점이다. 박물관 고조선실과 고구려실 등 상설전시관 곳곳에는 여전히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이자 중국 동북공정의 빌미가 되는 ‘한사군 한반도설’과 ‘낙랑군 평양설’ 류의 전시 논리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고조선의 방대한 강역과 유구한 발전사는 축소·왜곡되고, 우리 고대사의 자주적 기원은 한반도 북부에 설치된 외세의 군현 틀 속에 갇혀 있다.

그는 평생 대중을 향해 “우리 역사는 반만년”이라 역설해 왔으나, 정작 이를 제도적으로 입증하고 바로잡아야 할 국가 대표 박물관의 수장이 되어서는 식민사학의 틀을 깨뜨릴 어떠한 학술적 용기도, 결단도 보여주지 않았다. 안일한 관성과 기득권적 역사 서술에 안주하며 우리 고대사의 뿌리를 지키지 못한 그의 무책임은 '대중 저술가'라는 화려한 외피 뒤에 가려진 학문적 태만을 여실히 드러낸다.

여기에 최근 터져 나온 개인 소장품 ‘셀프 전시’ 파문은 박물관의 공공성을 바닥까지 추락시켰다.박물관 특별전에 본인 소장 유묵을 출품하면서, 기초적인 사료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채 애국지사의 글씨로 둔갑시켜 내걸었다가 친일 인사의 유묵으로 밝혀진 사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사다. 과거 문화재청장 시절부터 숭례문 복구 및 궁궐 만찬 논란 등 끊임없이 공적 절차와 안전 규정을 가볍게 여겨 구설에 올랐던 그의 오만한 행태가,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국가 최고의 성역에서 ‘공적 권력의 사유화’라는 최악의 형태로 재현된 것이다.

결국 유 관장은 취임 약 1년 3개월 만에 온갖 물의를 남긴 채 불명예스럽게 짐을 쌌다. 이는 학술적 엄밀성과 공적 윤리를 망각하고 스타성에만 기댄 문화 행정이 빚어낸 필연적인 파국이다.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의 시선은 ‘그 이후’를 향해야 한다.

차기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책무는 명확하다. 실추된 박물관의 윤리성과 공공성을 재확립하는 것은 기본이며, 무엇보다 전시실 곳곳에 박제된 식민사학의 유령을 걷어내는 ‘역사 바로세우기’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한사군과 낙랑군의 위치 비정에 대한 다각적이고 엄밀한 최신 고고학·문헌사학 성과를 전면에 수용하고, 축소된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적 실체를 자주적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수장의 자리는 명성을 과시하거나 사적 소장품을 치장하는 무대가 아니다. 다음 박물관장은 부디 굴절된 역사 서술을 단호히 바로잡고, 왜곡된 고대사의 당당한 위상을 국민 앞에 온전히 복원해내는 참된 학문적 양심과 결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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