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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람이 머물고 돌이 말을 거는 곳, 유동룡의 건축은 명상이 되었다수풍석미술관에서 유동룡미술관까지… 자연을 품은 건축가가 제주에 남긴 영혼의 풍경
수풍석 미술관 중 수미술관

제주에는 바람이 지은 집이 있다.

돌이 침묵으로 말을 건네고 물이 하늘을 품으며 햇살이 시간의 흐름을 그려내는 곳이다. 그곳에는 화려한 그림도 거대한 조각품도 필요하지 않다. 바람 한 줄기가 작품이 되고 물 위에 스치는 구름 한 점이 전시가 된다.

세계에는 '이타미 준(Itami Ju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재일한국인 건축가 유동룡(1937~2011). 그가 제주에 남긴 수풍석(水風石)미술관 이야기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활동하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켰다. 특히 제주의 검은 현무암과 거센 바람 그리고 낮게 엎드린 초가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렇게 탄생한 수풍석미술관은 자연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건축이었다.

2004년 조성된 수풍석미술관은 물과 바람과 돌을 주제로 한 세 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미술관(水美術館)은 하늘을 담는 공간이다. 둥글게 열린 천장 아래 고요히 담긴 물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바람이 스치면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온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수풍석미술관 중 풍미술관

풍미술관(風美術館)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끼게 한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그림자 그리고 그 틈을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 건축가는 바람을 가두지 않고 그저 지나갈 길을 열어 두었다.

석미술관(石美術館)은 깊은 침묵을 품고 있다. 어두운 공간에 놓인 돌 하나와 천창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 시간이 흐르면 빛의 자리가 달라지고 돌의 표정도 달라진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침묵하게 된다. 물 앞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바람 앞에서는 마음을 열며 돌 앞에서는 오래된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

 

수풍석미술관 중 석미술관

어쩌면 유동룡이 제주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잠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건축을 딸의 마음으로 잇다

2011년 유동룡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제주에 남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가 아버지의 건축정신을 이어 2023년 1월 제주시 한림읍 저지예술인마을에 유동룡미술관을 개관한 것이다.

수풍석미술관이 자연을 작품으로 삼은 공간이라면 유동룡미술관은 자연을 사랑했던 한 건축가의 삶과 철학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제주의 곶자왈과 나지막한 지형을 품은 미술관에는 그의 건축 모형과 스케치 그리고 평생의 사유가 담겨 있다. 라이브러리 '먹의 공간'과 티 라운지 '바람의 노래'에서는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며 잠시 머물 수 있다.

그곳에는 아버지를 향한 딸의 그리움과 함께 한 사람이 평생 추구했던 아름다움을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흐른다.

건축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는다. 그러나 그 건축에 담긴 정신까지 이어지는 일은 흔치 않다.

유동룡미술관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건축은 남고 사람은 떠나지만 그 마음은 바람이 된다

유동룡의 건축은 화려함보다 소박함을 선택했다. 자연을 바꾸기보다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건축이 앞서기보다 그 땅이 품어 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에게 제주는 어쩌면 국경도 경계도 없는 자연의 품이었을 것이다.

바람은 어느 나라의 바람인지 묻지 않는다. 바다는 누구의 고향인지 따지지 않는다. 돌은 그 앞에 선 사람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자연은 그저 모든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고 너무 빨리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은 것을 이루려는 삶 속에서 정작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잊고 살아간다.

그런 우리에게 제주의 수풍석미술관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물처럼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바람처럼 마음의 문을 열어 두라고. 돌처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라고.

건축가는 떠났지만 그가 사랑했던 제주의 자연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자연을 찾아온 사람들은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비로소 고요해진 우리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제주의 수풍석미술관과 유동룡미술관은 단순히 보고 돌아오는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명상의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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