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제기
유튜브 채널 '박종인의 땅의 역사'(275화)에서 제기된 "조정래씨, '나의 소원' 읽어봤나? 그거 이광수 글이야"라는 주장은 백범 김구(金九, 1876~1949)의 대표적 명문으로 각인된 「나의 소원」이 실상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에 의해 100% 창작·대필된 텍스트이며 김구의 사상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세운다 . 이는 최근 'K-컬처'의 세계적 약진과 맞물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구절이 백범의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재조명되고 소설가 조정래를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이 이를 찬양하는 현실을 겨냥한 정면 비판이다 .
이 주장은 그동안 근현대사 및 국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의되어 온 『백범일지』의 판본학적 복합성과 춘원의 윤문 개입 문제를 대중적 논쟁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환기 효과를 지닌다 . 그러나 엄밀한 사료 비판과 사상사적 연속성을 검토할 때 박종인의 논지는 "친필 원본의 부재"라는 물리적 사실을 "타인의 100% 창작"이라는 자의적 결론으로 비약시키는 중대한 학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 근대 정치 지도자의 선언문이 형성되는 텍스트적 특수성을 무시하고 양극단의 이분법으로 역사를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그의 논거는 심각한 한계를 드러낸다 .
문헌학적 사실관계와 판본 계통의 정밀 검토
「나의 소원」의 진정한 저작 주체성을 가리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백범일지』의 판본 계통과 출간 경위를 문헌학적으로 엄밀하게 대조해야 한다 . 김구가 직접 붓으로 작성한 『백범일지』 친필 원본은 1929년 상하이에서 탈고한 상권과 1943년 충칭에서 집필한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7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었다 . 상권은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서 형식으로 독립운동의 초기 궤적을 담았고, 하권은 미주 동포들을 대상으로 임시정부의 투쟁사를 증언하기 위해 기록된 1차 사료이다 .
문헌학적으로 확인되는 명백한 사실은 김구의 친필 원본 상·하권 어디에도 「나의 소원」이라는 독립된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나의 소원」은 해방 2년 뒤인 1947년 12월 출판사 국사원(國士院)에서 대중 보급용으로 발행된 초판본의 권말에 부록 형태로 비로소 처음 등장한다 . 당시 국한문 혼용과 거친 고어체로 쓰인 김구의 원고를 일반 대중이 읽기 쉬운 순한글 산문으로 옮기고 다듬는 윤문(潤文) 작업을 맡은 인물이 바로 춘원 이광수였다 . 이 사실은 1980~1990년대 김구의 아들 김신 장군의 증언과 판본 대조 연구를 통해 명백히 공인되었다 .
이와 같은 사료적 계통은 박종인이 언급한 내용 중 "김구의 친필 원본에는 「나의 소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 자체는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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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주장의 정당성과 사실에 부합하는 측면
박종인의 영상에서 역사학계의 실증적 연구 성과와 합치하여 사실로서 수용할 수 있는 대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첫째, 김구의 손으로 직접 작성된 「나의 소원」 친필 초고(草稿)는 현재까지 단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 『백범일지』의 주해와 정본화에 평생을 바친 사학자 도진순 교수 역시 주해본과 정본을 편집할 때 「나의 소원」을 본문과 엄격히 구별하여 다루었으며, 김구의 육필 원고가 아예 없다는 문헌학적 한계를 공개적으로 지적해 왔다 . 엄밀한 1차 사료의 범위 안에서만 논의한다면 「나의 소원」은 김구의 육필 문서군에 포함될 수 없다 .
둘째, 텍스트의 문체와 구성 기법에서 이광수의 작가적 개입이 지대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의 정밀 텍스트 분석에 따르면, 국사원본은 단순한 오탈자 교정이나 한문 번역 수준을 넘어 원문의 서사를 재배치하고 문학적 살을 덧붙인 고도의 '작가적 윤색'이 가해진 결과물이다 . 「나의 소원」 특유의 문답식 도입부("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와 점층적 수사, 세련된 비유 구조는 당대 최고의 근대 문장가였던 춘원의 문학적 능력이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 거칠고 투박한 김구의 본문 육필 문체와 비교할 때 이질적인 문학적 완성도가 드러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셋째, 글에 담긴 '문화주의(文化主義)' 수사의 성격이다 . 도진순 교수는 2026년 발표한 저서와 연구를 통해, 평생을 무장투쟁과 의열투쟁, 군사력 양성에 투신해 온 김구의 실제 현실 궤적은 군사적·물리적 실력 양성을 통한 '부국강병(富國强兵)'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었다고 분석했다 . 반면 "우리의 부는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며 경제력과 군사력을 부차화하고 '문화의 힘'을 절대시하는 논리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일본 지식인 사회를 풍미하고 1920년대 식민지 조선으로 유입된 문화주의 담론, 그리고 춘원 이광수의 '문화운동론' 및 '민족개조론'의 발상과 매우 유사하다 . 따라서 텍스트의 수사학적 뼈대와 문화적 이상향을 서술하는 표현 양식에 이광수의 지적 경험이 깊이 침투해 있다는 지적은 타당성을 갖는다 .
박종인 주장에 대한 논박: 백범 김구의 사상적·정치적 저작 주체성
그러나 박종인이 이러한 문헌학적 사실들을 디딤돌 삼아 "그러므로 「나의 소원」은 김구의 글이 아니며 100% 이광수의 글이다"라는 극단적 단정으로 나아간 것은 역사적 진실을 본질적으로 왜곡한 궤변이다 . 근대 정치사와 지성사에서 텍스트의 저작권과 사상적 귀속은 단순히 마지막 펜대를 쥔 윤문자의 몫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김구 자신의 확고한 사상적 궤적과 문헌적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
저자의 공식적 승인과 정치적 선언
근대 출판사에서 지도자의 회고록이나 정강 정책 선언문은 전문 작가의 문학적 윤문을 거치는 사례가 빈번하다 . 결정적인 기준은 발언 주체의 승인 여부다 . 김구는 1947년 12월 국사원 초판본의 서문 격인 「저자의 말」에서 「나의 소원」의 성격을 직접 천명했다 . 그는 우리의 서울은 우리의 서울이어야 하고 우리 민족의 철학을 세워야 함을 역설하며, "「나의 소원」은 이러한 동기, 이러한 의미에서 실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품은, 내가 믿는 우리 민족철학의 대강령을 적어본 것이다"라고 명백히 규정했다 .
김구는 이 글을 자신의 자서전 결론부로 직접 배치하고 자신이 믿는 민족철학의 총체적 강령으로 공인했다 . 만약 이 글이 김구의 정치적 지향과 무관하게 이광수의 독단적인 상상으로 조작된 위작이었다면, 칠순의 완고한 혁명가이자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가 이를 자신의 공식 민족철학이라 공표할 까닭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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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엄항섭본과 1949년 김구의 직접 재인용
최근 발굴된 사료들은 이광수 단독 창작설을 문헌학적으로 정면 격파한다 . 동국대 황태연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이자 김구의 최측근 참모였던 엄항섭이 1948년 10월 편찬한 『김구주석최근언론집』 부록에 수록된 「나의 소원」 텍스트를 발굴하여 제시했다 . 이 판본은 1947년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과 전체 골격은 같지만, 문장 구문과 단어 표기 등 8개 대목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 예컨대 국사원본의 오기나 자의적 윤색을 바로잡고 김구 측의 원안에 가깝게 복원한 징후들이 발견된다 . 이는 국사원본과 독립된 김구 진영 내부의 원고 계통(구술 기록, 메모 초안, 또는 선행 텍스트)이 별도로 관리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
더욱 결정적인 사료는 김구가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하기 불과 수개월 전인 1949년 3·4월호 잡지 『대조(大潮)』에 기고한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져야―민족통일의 재구상」이라는 글이다 . 김구는 이 기고문에서 자신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재천명하며 「나의 소원」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본문을 직접 재인용했다 . 주목할 점은 이 인용문이 1947년 이광수의 국사원본 표기가 아니라, 1948년 엄항섭본의 독자적 문구와 완벽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 자신이 직접 인정하지 않았거나 타인이 써준 글이었다면, 생애 마지막 순간 통일 국가의 비전을 밝히는 중대한 선언에서 엄항섭본의 계통을 좇아 본문을 스스로 길게 재인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사상사적 연속성: 1940년대 임시정부 노선의 결실
박종인의 주장은 김구를 오직 총칼만을 알던 비지성적 무투파로 폄훼하고, 그에게는 고차원적 민주주의나 인류 평화의 이상을 구상할 능력이 없었다는 왜곡된 전제에 의존한다 . 그러나 김구의 사상사적 궤적을 추적하면 「나의 소원」의 핵심 강령들이 이미 1940년대 임시정부 선언서와 논설들에 오롯이 담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1940년 3월 발표한 「한국독립과 동아평화」에서 김구는 독립의 목적을 단순히 일제 축출에 한정하지 않고, 도의(道義)에 기반하여 강자가 약자를 돕는 도덕적 인류 평화의 확립에 두었다 . 이어 1940년 8월 「한국독립당의 건립과 광복운동의 장래」에서는 특정 계급의 독재를 철저히 배격하고 국가 간의 평등과 인류가 한 가족이 되는 전민평등(全民平等)의 민주공화정을 강조했다 .
「나의 소원」의 제2장인 「정치이념」에서 피력된 일당 독재와 계급 독재에 대한 단호한 비판,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기본권에 대한 옹호, 그리고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축으로 한 공동체 비전은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임시정부 건국강령(1941)을 충실히 계승해 온 김구의 일관된 정치철학이었다 . 이를 이광수가 즉흥적으로 창작해 주었다는 주장은 독립운동 지성사의 깊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
대동(大同) 철학과 식민지적 개량주의의 근본적 괴리
사상의 뿌리 면에서도 김구와 이광수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 김구의 국가 구상은 유교의 천하위공(天下爲公)과 대동주의, 동학의 인내천 사상,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자유가 융합된 장엄한 인류 상생의 '대동(大同)' 철학에 기반한다 . 반면 이광수의 정신적 지형은 1922년 『민족개조론』에서 드러나듯 우리 민족의 기질을 결함투성이로 규정하고 일제의 식민 지배를 기정사실화한 채 법률 테두리 안에서의 도덕 수양만을 강조했던 식민지적 개량주의, 즉 '소강(小康)'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
이광수가 수필집 『돌베개』(1948)의 권말 수필 「내 나라」에서 「나의 소원」과 유사한 문맥과 비유를 썼다는 점을 두고 김구의 글이 이광수의 표절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시간적 전후 관계를 뒤바꾼 해석이다 . 국사원본 『백범일지』와 「나의 소원」이 1947년 12월에 먼저 출판되었고, 『돌베개』는 1948년에 간행되었다 . 해방 후 친일 협력에 대한 자책과 은둔 속에서 백범의 원고를 윤문하던 이광수가 오히려 김구의 거시적인 자주독립 비전과 도덕적 감화력에 깊은 영향을 받아 이를 자신의 사후 저작에 문학적으로 흡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학계의 텍스트 분석과 쟁점 지형
학계에서는 「나의 소원」을 둘러싸고 국문학, 역사학, 정치학적 관점에서 다각적인 분석을 진행해 왔다 . 박종인의 일방적인 대필 단정론과 달리 연구자들은 사료의 문헌적 한계와 사상사적 실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
이와 같은 쟁점 지형은 「나의 소원」이 어느 한 사람의 독점적 산물이라기보다, 김구의 핵심 사상과 이광수의 문학적 윤문이 결합하여 탄생한 복합적인 정치·문학적 텍스트임을 증명한다 .
종합 결론: 단일 저작자 도식을 넘어선 정치 텍스트의 본질
박종인의 "조정래씨, '나의 소원' 읽어봤나? 그거 이광수 글이야"라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의 절반을 포착했으나, 나머지 본질적인 절반을 완전히 왜곡함으로써 결론에서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
그의 주장 중 『백범일지』 친필 원본(보물 제1245호)에 「나의 소원」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 현재 김구의 친필 초고가 부재한다는 점, 그리고 1947년 국사원본 출간 시 춘원 이광수가 탁월한 문학적 솜씨로 문장을 유려하게 윤색하고 문화주의적 수사를 입혔다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실증적 사실이다 .
그러나 이를 이유로 "이 글은 김구의 글이 아니며 100% 이광수의 창작"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사료와 역사적 맥락을 철저히 무시한 억측이다 .
김구는 초판본 서문에서 이 글을 자신이 품고 믿는 민족철학의 대강령으로 공포하였고, 1948년 엄항섭본으로 관리된 독자적 텍스트 계통이 실존하며, 서거 직전인 1949년 잡지 『대조』에 자신의 확고한 통일 비전으로 본문을 직접 재인용했다 . 더욱이 글에 담긴 도덕국가관, 세계평화론, 전민평등의 민주주의 철학은 1940년대 임시정부 시절부터 김구가 목숨을 바쳐 일관되게 주창해 온 사상적 궤적의 연장선에 있다 .
정치사에서 세기의 명문은 지도자의 사상적 영감과 당대 문장가의 언어적 기량이 만나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나 세계 유수 지도자들의 역사적 선언문이 참모들의 문학적 윤문을 거쳤다 하여 참모 개인의 저작물로 전락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의 소원」은 백범 김구가 평생의 독립투쟁 속에서 다듬어 온 '자주독립과 세계 평화의 국가 철학'이라는 본체에,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춘원 이광수의 '유려한 한국어 문체와 윤문'이라는 옷을 입혀 완성된 글이다 . 따라서 문장에 묻어난 이광수의 문학적 기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그 텍스트의 사상적 저자이자 정치적 주체는 온전히 백범 김구라는 사실을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 균형 잡힌 역사의 진실이다 .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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