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의 찬란한 고대 역사가 또다시 식민사학 논란의 흙탕물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을 ‘기문국(己汶國)’으로 등재하려다 거센 시민적 저항과 비판에 부딪혀 철회했던 뼈아픈 역사가 채 아물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남원시의 재정 지원을 받아 남원문화원이 발간한 ‘2026 문화관광해설사 양성을 위한 남원향토대학 자료집’에서 또다시 운봉고원을 ‘기문’으로 기정사실화하고 나섰다. 역사를 지키고 지역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할 문화원과 시 당국이 오히려 논란의 불씨를 되살려 시민과 미래 해설사들에게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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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교재에 실린 김낙중 교수의 글은 운봉고원 일대의 고분군과 외래 위세품을 설명하며, 이 지역을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기문’ 세력으로 비정하고 ‘상기문(上己汶)’일 가능성이 높다고 서술한다. 주석과 본문 곳곳에는 야마토 왜(倭)가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주된 텍스트인 《일본서기》 계체기 기록을 거침없이 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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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문’이라는 지명과 개념 자체가 가진 태생적 위험성이다. 《일본서기》 속 기문은 야마토 정권이 백제와 대가야 사이에서 영토 분쟁을 중재하거나 할양의 주체로 개입하는 과정에 등장한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이를 빌미 삼아 한반도 남부를 고대 일본의 식민 통치 영역(임나)으로 규정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 논거로 활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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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사서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어디에도 남원을 가리켜 ‘기문국’이라 칭한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학술적 가설과 추정에 불과한 지명을 끌어와 남원의 유구한 가야·백제 고분군을 기문국의 유산으로 규정하는 것은, 식민사학의 논리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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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심각한 것은 이 교재가 단순한 학술 토론용 논문집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자료집은 남원의 역사와 문화를 현장에서 알릴 ‘문화관광해설사’를 양성하는 공식 교육 프로그램 교재다. 남원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대외에 올바르게 알릴 해설사들의 입을 통해, 시민과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남원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국’이라는 식민사관의 파편을 읊조리게 만들 셈인가. 남원시민의 혈세로 지원되는 공적 교육에서 이러한 역사 왜곡을 방치하고 되풀이하는 것은 시민의 역사적 자긍심에 대한 모독이자 직무유기다.
운봉고원의 고분들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문헌적 확증도 없는 외래 사서의 식민주의적 왜곡 지명을 굳이 덧씌워 지역의 역사적 자산을 훼손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남원문화원과 남원시는 뼈아픈 과거의 논란을 잊었는가.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폐기되었던 명칭을 슬그머니 해설사 교육 자료에 다시 들이민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남원문화원은 해당 자료집의 배포를 즉각 중단하고, 편향되고 위험한 서술에 대해 남원시민 앞에 명명백백히 해명해야 한다. 남원의 진정한 역사는 식민사학의 낡은 잣대가 아닌, 우리 땅에 새겨진 온전한 유적과 시민의 주체적인 역사관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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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도 살리고 반파도 살리려는 노력이 애처롭기만하다. 반파는 가야라고 하고 있다. 반파가 가야인가? 반파가 장수군인가? 어이없는 위치비정으로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려는 작태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반파에 대해서 한가지만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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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년 반파가... 봉수와 저각(邸閣)을 설치하여 일본에 대비하였다. (일본서기)
반파가 장수군이라면 왜 깊은 내륙에서 일본에 대비하는가?
"반파국이 만약 장수라면 그 봉화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일본에 대비하기 위하여 진안, 장수, 무주, 완주, 임실, 순창에 봉화를 설치했을까? 봉화에만 집착하여 일본에 대비했다는 중요한 점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이 없다. 왜 침묵하는 것일까? "
이상훈(진안문화원 부원장)
"그들은 “일본에 대비했다”라는 대목은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이 대목이 들어가면 반파국이 바다를 끼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규영 진안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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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천년사 책 중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부분인 "일본에 대비했다"를 생략 처리한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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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역사가 교재에 실리고, 해설사의 입을 거쳐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는 순간, 그것은 미래 세대의 역사 인식까지 좌우하는 현재진행형의 문제가 된다.
남원의 역사는 누구의 가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실험장이 아니다. 남원의 역사는 남원 땅의 유적과 객관적 사료가 말하게 해야 한다.
일제가 남긴 역사 해석의 그림자를 걷어 내고, 남원의 역사를 남원시민의 눈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이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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