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한국의 판소리를 만나 새로운 무대에 오른다. 운명을 피하려다 오히려 그 운명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인간의 비극을 국립창극단 여성 소리꾼들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특별한 공연이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은 오는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창극 ‘오이디푸스’를 선보인다.
이번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대표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바탕으로 인간이 운명과 진실 앞에서 겪는 고뇌와 선택을 조명한다. 특히 출연진 전원을 국립창극단 여성 단원으로 구성해 성별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내면을 들여다본다.
‘오이디푸스 왕’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피하려던 오이디푸스가 결국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테바이의 왕이 된 그는 역병을 끝내기 위해 선왕을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지만 진실에 다가갈수록 모든 단서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번 창극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진실 앞에서도 끝내 그 실체를 확인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주목한다.
극본은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과 ‘리어’ 등을 집필한 배삼식이 맡았다. 연출은 연극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로 루마니아 바벨페스티벌에서 연출상을 받은 최진아가 담당한다. 최 연출에게는 이번 작품이 첫 창극 도전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원 여성 캐스팅이다. 판소리에서 한 명의 소리꾼이 성별과 신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을 표현해 온 전통에 착안해 남성 인물까지 여성 배우들이 연기한다.
오이디푸스 역은 이소연이 맡으며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 역에는 김미진이 출연한다. 크레온 역은 이연주가 맡고 진실을 꿰뚫어 보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역에는 민은경이 무대에 오른다.
음악 역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은 장서윤은 작곡가 장석진과 함께 판소리 장단을 바탕으로 국악기와 서양 현악기 그리고 건반 등이 어우러진 16인조 악단을 구성했다.
여기에 성부를 나눈 합창을 더해 인물들의 갈등과 운명의 긴장감을 더욱 깊이 있게 표현한다.
무대 또한 고대 그리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지름 7.8m의 원형 LED와 경사진 무대에 인체의 혈관에서 착안한 영상을 투사해 인물의 내면과 비극적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의상 역시 현대적인 복식을 활용해 고전 속 인물들을 오늘의 관객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서도록 했다.
수천 년 전 그리스에서 탄생한 비극이 오늘날 한국의 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과연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진실이 고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끝내 그것을 마주해야 하는가.
국립창극단의 ‘오이디푸스’는 이러한 오래된 질문을 판소리 특유의 깊은 울림과 현대적인 무대 미학으로 풀어내며 고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임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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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효 기자 staff102b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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