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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천년사 사태] 호남 지역 18개 대학 역사문화 연구단체에 보내는 공개질의서

호남사학회를 비롯한 호남지역 역사·문화 연구단체 18곳은 지난 12일 성명서를 내고, '전라도 천년사'를 비판하는 단체가 비난하고 선동하며 집필진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호남지역 단체가 낸 성명서의 제목은 <‘전라도 천년사’에 가하는 맹목적인 ‘식민팔이’식 비난을 중단하라>였다. 

이  성명서를 낸 호남 지역 18개 대학 역사・문화 연구 단체에 역사 정상화 전국연대가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공개 질의서는 아래와 같다

호남 지역 역사・문화를 연구하는 귀 단체 발전과 질 높은 연구 성과를 기원합니다.

이 공개 질의서는 귀 단체를 비롯한 18개 호남 지역 역사・문화 연구 단체가 연명으로 지난 6월 8일 발표한 <‘전라도 천년사’에 가하는 맹목적인 ‘식민팔이’식 비난을 중단하라> 제하 성명서(이하 ‘성명서’)에 관한 것입니다.

이 질의서를 보내는 <역사 정상화 전국연대>는 우리나라 미래를 이어갈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현행 한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 나갈 것을 목적으로 2023년에 만든 시민 역사 운동 단체입니다. 

우리는 귀 단체가 발표에 동참한 ‘성명서’가 지금 전라도민들로부터 폐기 요구를 받고 있는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것임을 알고 ‘성명서’를 정독해 보았습니다. <<전라도 천년사>> 문제는 우리 단체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18개 단체가 낸 ‘성명서’는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500만도민연대>(대표 박형준)을 비롯한 시민 역사 운동 단체들이 지난 몇 달 동안 노심초사 펼쳐온 노력을 ‘맹목적인 식민팔이식 비난’이며 ‘극히 반지성적인 폭력행위’라고 매도했습니다. 

18개 단체는 ‘엄밀한 확인 없이 단체의 주장에 영합하는 일부 정계와 언론계에 반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편찬 주체인 호남권 3개 지자체에게 ‘저들의 위압에 휘둘리지 말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천년사‘ 완간을 선언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18개 단체는 막상 현재 시민 역사 운동 단체들이 <<전라도 천년사>> 공람 과정에서 무엇을 문제 삼고 있는가, 왜 집필진을 ‘식민사학자’로 비난하는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성명서’는 “역사연구는 엄정한 사료 비판에 기초한다”고 하면서 “역사 연구자들은 냉철한 자세로 사료를 통해 논리를 구성하고, 겸허한 자세로 비판을 수용한다”고 역사 연구(자)가 지녀야 할 기본 자세를 밝혔습니다. 아울러 “역사 연구 과정에서 사료를 해석하고 논리를 세움에는 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열려있고 비판에 대한 반비판의 장도 열려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원칙에 비추어 우리는 213명 집필진에 참여한 귀 단체와 함께 <<전라도 천년사>>가 지닌 여러 문제점 중에 몇 가지를 들어 공개질의 형식으로 ‘엄밀한 확인’ 작업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귀 단체가 ‘성명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역사와 민족의 자부심을 허위와 기만이 아니라 진실에서 찾아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질의에 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질의 1> 귀 단체는 ‘도민연대’와 함께하는 역사 연구자들이 ‘천년사’ 편찬 주체와 집필진을 ‘식민사학’ 또는 ‘친일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질의 2> 귀 단체는 ‘기문국’을 전북 남원에 비정한 조선사편수회 소속 이마니시 류(今西龍)를 따른 ‘천년사’ 기술이 ‘성명서’가 강조한 바와 같이 호남 ‘지역의 역사를 한중일 3국의 다양한 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엄밀하게 교차 검증 하고 종합하여 사실대로 서술한’ 것으로 보십니까?

<질의 3> <<삼국사기>>는 마한이 서기 9년에 백제에 멸망했다고 나옵니다. ‘천년사’는 마한이 서기 530년까지 전라도에 존속하고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귀 단체는 마한이 530년경까지 전라도에 존속했다는 사료적 근거가 있다고 보십니까? 있다면 그 사료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의 4> 귀 단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다 같이 “가야는 서기 42년에 건국했다.”고 한 기사를 사실로 인정합니까? 만약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논거는 무엇입니까? 

<질의 5> 한 역사 연구자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①반 노부토모(伴信友 1773~1846) ②일본 육군참모본부(임나명고) ③칸 마사토모(管政友. 칠지도 발견자) ④나카 미치요(那珂通世 1851~1908) ⑤구로이다 가쓰미(1874~1946) ⑥쓰다 소우기지(津田左右吉 1873∼1961) ⑦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 932) ⑧아유까이 후사노신(鮎貝房之 1864~1946) ⑨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 保和 1904~1992) ⑩미지나 아키히데(三品彰英) ⑪이케우찌 히로시(池內宏 1879~1952) ⑫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임나를 남한 땅으로 못을 박고 조선 침략을 꿈꾸었던 일본 극우파와 군부, 어용학자, 조선총독부 소속 연구자 명단이다. 이들은 겉으론 실증주의 사학(랑케)을 내세우며 속으론 실용적인 사학(조선 침략 논리)으로 가야를 임나로 바꿔치기하고 그 임나를 일왕 지배로 묶었다. 그러니 조선 식민지 침략은 과거 일왕이 다스린 고대 식민지의 복원이 된다.

지금의 전라도천년사 역사기술은 이들의 연구를 고스란히 잇고 있다. 즉 대전제인 ‘임나=가야=우리 땅’이 생생히 살아 있다. 호남인들 중 누가 이들의 역사연구에 박수를 칠 수 있을까? 역사교수들 외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 김명성 (호남역사바로세우기국민연대 상임고문, 원광대 강사, 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 

귀 단체는 이 주장을 ‘식민팔이’식으로 시민사회를 선동하고 ‘천년사’를 비하하는 것으로 보십니까?

<질의 6> ‘천년사’는 “고인돌은 기원전 1200년 무렵에서 기원전 200년을 전후한 약 1000년간 축조된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아이콘인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책 2권 312쪽) 

앞에서 언급한 조선사편수회 소속 이마니시 류는 “남조선의 석기시대 유물이 어느 민족의 손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혹은 한민족(韓民族)의 것인가 하는 것도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청동기문화와 고인돌을 형성한 정치체는 고조선’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고조선 건국은 문헌상으로는 BC 2333년(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이고 고고학 상으로는 BC 31세기-BC 25세기(신용하, 윤내현 교수)’라는 기록과 학설을 따릅니다. 

귀 단체는 호남지역에 편재한 고인돌을 세우고 청동기 유물을 만든 정치체에 대하여, 그리고 고조선 기원과 존속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질의 7> ‘천년사’는 ‘전라도 지역에서 조사되고 있는 왜계 고분’ 주인공을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른바 ‘전방후원분’ 또는 ‘장구형 고분’ 주인공을 왜인으로 규정했습니다. (4권 150쪽) 

그러나 리는 이런 형태를 지닌 고분은 일찍이 이북 자강도 지역에서도 발견됐고 ‘백제계 전방후원분’으로 보는 주장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천년사’ 완간 선언을 3개 지자체에 요구한 귀 단체는 전라도 지역 ‘장구형 고분’ 주인공을 왜인으로 보는 ‘천년사’ 기술에 찬동하십니까? 찬동한다면 그 근거가 되는 사료와 유물은 무엇입니까? 

<질의 8> 지난 5월 3일 호남권 국회의원 25인 전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천년사’에 담겨있는 ‘왜곡 기술된 부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대국민 소통에 소홀했던 편찬위원회 처사를 ‘불통과 편파의 수준을 넘어 국민에 대한 횡포’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의회를 비롯하여 전남 기초단체장 전원도 ‘천년사’ 기술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18개 단체 ‘성명서’는 오만방자하게도 호남지역 정치인들과 언론, 그리고 불교계에서 발표한 입장과 견해를 ‘진위를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이를 주장하는 선동에 동조’한 것으로 폄하했습니다.

귀 단체는 우리 사회 여론 주도층이 제기한 이러한 우려와 요구를 무엇 때문에 ‘비난과 선동’이며 ‘위력을 통한 압박’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까닭을 밝혀주기 바랍니다.

그동안 소수 학자들이 전유하던 사료와 정보들이 온 누리에 공개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역사 연구는 이른바 ‘학계’만이 해야 하고 학계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에서 벗어난 지 오래입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뒤흔드는 판국에 역사든 문화든 예술이든 관심과 실력이 있다면 누구나 연구할 수 있고 그 성과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른바 강단사학계와 대학 연구 집단이 스스로 해당 분야 권위자로 자임하면서 주권자 시민들이 하는 연구 작업을 ‘사이비’니 ‘유사’니 하는 오만한 언사를 써서 깎아내려 왔습니다. 이러한 작태는 학문할 자유 권리, 학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처사로서 진실과 진리를 찾아 치열하게 경쟁하고 협력하는 학문 세계에서 제 손으로 제 발을 묶는(자승자박) 난처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독일 문호 괴테가 말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는 지금도 의미 있습니다. 

우리 겨레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바르게 기술하여 우리 겨레 다음 세대에게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은 민족정기를 함양하고 상처 많은 우리 겨레 얼을 살려내어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과업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리건대, 역사 문화 예술 연구와 교육이 대학 강단에서만 이루어지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런 점에서 ‘천년사’ 사태와 관련하여 5월 31일에 발표한 ‘입장문’에 이름을 올린 24개 역사 관련 학회나 그에 부응한 ‘성명서’를 내서 시민 역사 운동을 비난한 18개 호남지역 문화 연구 단체들은 이 시대 학계가 감당해야 할 도전과 과제를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 여덟 가지 질의에 대하여 귀 단체가 표방한 설립 정신과 학자가 지녀야 할 양심에 비추어 기탄없이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3년 6월 20일

역사 정상화 전국연대 

(전화번호 : 010-5294-9808, 전자우편 : truehistory2333@naver.com)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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