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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순국 103년 만에 현충원에 부인과 합장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부부 합장식'이 1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됐다. 지난 1920년 최재형 선생이 러시아에서 순국한지 103년 만이다.

국가보훈부는 14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백 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최재형 선생 부부 합장식을 거행했다.

1920년 일본군이 연해주 우수리스크를 급습했다. 일명 ‘4월 참변’을 일으키면서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제일 먼저 즉결 처형했다고 전해진다. 최재형 선생의 시신은 암매장으로 인해 찾지 못했다. 최재형 선생은 가족의 안전을 우려해 “내가 도망하면 너희 모두 일본군 당국에 끌려가 고문당할 것이다. 나는 살아갈 날이 조금 남았으니 죽어도 좋다! 너희는 더 살아야 한다”라며 자진해서 일본군에 끌려갔다고 다섯째 딸 올가 씨가 증언했다. 

현충원은 묘 주인의 유골이 없이는 묘지 복원을 할 수 없었으나 지난 7월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면서 안장 대상자의 배우자 유골이 있는 경우 합장하는 형식으로 묘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부인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골이 다행스럽게도 중앙아시아 키르키스스탄에 남아 있어서  키르키스스탄에서 최 여사의 유골을 수습해 지난 7일 국내로 모셔오게 된 것이다. 유골 수습과 국내 봉환에 든 비용은 국민모금과 후원을 통해 어렵게 마련되었다고 한다. 

최재형 선생의 유해를 아직도 찾지 못한 상태지만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가 고국의 묘에 함께 모셔지게 되었다.  


1860년 함경도 출생의 최재형 선생은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뒤 생전에 사업가로서 축적한 부(富)를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과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썼다. 

또 부인 최 여사는 1897년 최 선생과 결혼한 뒤 8명의 자녀를 두고 독립운동을 내조했으며, 특히 안중근 의사 순국 뒤엔 그의 남은 가족들도 보살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진 = 대한사랑 김석원 국장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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