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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 흉상 이전 백지화해야

글 : 박덕규 (대한사랑)

국방부 브리핑에서 대변인은 '홍범도 장군이 소련에 낸 이력서에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정말 홍범도 장군이 직접 기술했냐고 묻자 대변인은 "네, 이력서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확인해주었다. 잠시후에 다른 기자가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독립군을 살해했다고 말한게 있다는거냐"고 묻자, 대변인은 그런 뜻의 발언은 아니라면서 취소했다. 

 홍범도 장군이 낸 이력서에 자유시 참변에 관한 내용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만약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이념 논란도 없었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자필 이력서에는 짧게 "혁명 활동"이란 말이 쓰여있다. 국방부에서 이 문구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혁명 활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한 것인지 모른것 같다.

1922년 소련 입국신청서에 홍범도 장군이 쓴 직업은 '의병'이고, 입국 목적과 희망은 '고려독립'이었다. 여기에 어떤 주의나 목적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굳이 홍범도 장군이 말한 혁명 활동이 무엇인지 설명한다면, 1890년대부터 시작한 일제에 대항하는 반봉건, 반제국주의 의병 투쟁 활동이다. 
홍범도의 의병 투쟁을 북한에서도 '평민 출신의 의병투쟁'으로 비교적 높게 평가하지만, 공산주의 활동에 대해서는 한 줄의 기록도, 평가도 없다. 다시말해 홍범도의 혁명활동은 구한말 의병투쟁을 말하는 것으로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다. 


 홍범도와 자유시 참변을 연구한 논문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근거는 없으며, 사건 당일 현장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독립군의 석방을 위해서였고 소련 공산당 입당 이력만으로 공산주의자라거나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오점이 있다면, 평생을 일관되게 항일 투쟁에만 전념하면서 지금처럼 의도치 않게 이념 다툼에 휘말려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이 된 것뿐이다. 그것은 홍범도의 잘못이 아니라 홍범도를 이용했던 '주의'의 잘못이다.

자유시 참변은 독립군 부대 간의 주도권 싸움이 아니었다.
홍범도 부대를 비롯한 독립군 부대들이 자유시로 집결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청산리 대첩 이후 피비린내 나는 보복과 독립군 토벌작전을 벌이던 일본군에게 밀렸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러시아에서 무기와 군수 물자를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서였다. 
러시아는 적군(붉은 군대)과 백군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적군은 전투 경험이 많은 한인 독립군을 필요로 했다. 독립군들이 레닌의 적군 편에 섰던 이유는, 반대편의 백군이 일본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군과의 전선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적군은 더 이상 한인 독립부대가 필요없어지게 되면서 처리를 놓고 고민하게 되었다. 당연히 무기와 군수물자를 지원해주겠다는 약속도 저버렸다. 
이런 상황을 눈치챈 일본은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의 어업권을 놓고 러시아 국경안에 들어와있던 한인 독립군 부대의 무장해제를 밀약 받았다. 무장 해제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독립군 부대들을 적군 29연대와 그 예하 오하묵의 자유대대가 공격하면서 자유시 참변이 시작되었다. 주목할 점은 자유대대를 이끈 오하묵이 한인 2세로 볼세비키였다는 점이다.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운 이들의 주장

1. 2021년 8월 유튜브 LGs-TV 전광훈 목사 
"일본군하고 싸웠다고 하지만, 공산주의자 편에 서서 오히려 애국지사들을 죽인 공산주의자" 

2. 2021년 8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위원장 김문수 
"독립군 수백명을 학살한 공산주의자"

3. 2022년 10월 국정조사 국민의 힘 신원식 의원 
"봉오동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나, 그 뒤 내용은 자유시 거기에서 거의 1천 5백 명 되는 우리 독립군의 씨가 마르는데 주역이었습니다." 

이들은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서 독립군 애국지사 수 백 명을 학살하고 독립군의 씨를 말렸다고 주장했다. 아무 근거도 없는 거짓말이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자유시에서 독립군 부대의 통합 지휘권을 놓고 같은 독립군끼리 싸우다가 참변이 일어난 것이라면, 수백, 수천명이 학살되고 몰살당하는 전쟁이 남의 나라 땅에서 가능하다는건지, 그러는 동안 러시아 군대는 수수방관 하고 있었다는건지,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연합하여 생사를 함께 했던 부대의 몰살을 홍범도 장군이 지시했다는건지, 스스로 무장해제한 홍범도 부대가 어떻게 기관총과 장갑차까지 구해서 공격 했다는 건지, 기본적인 사실관계 하나 성립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언비어를 믿고 2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독립군 최고의 영웅'에서 천고의 배신자, 권력 투쟁에 미친 빨갱이로 만드는게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일사적선 필수장'
해군에 있을때 가장 많이 봤던 문구였다. 조선시대 황자총통에 쓰여진 "귀함(거북선)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龜艦黃字 驚敵船必水葬)"라는 글귀에서 따온 말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는 손원일 제독이다. 1945년 11월 11일 해군을 창설하고 해군사관학교와 해병대까지 창설한  손원일 제독은 모든 해군의 감사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해군은 그 뿌리를 이순신장군에 두고있다. 
"해군의 다짐,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젊은 날의 가슴을 뜨겁게했던 해군의 다짐은 충무공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선언하며 시작한다. 
호국 영웅의 영예는 그 후예들이 붙이고 높이는 것인데 홍범도 장군은 왜 있는 업적마저 짓밟히는가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는 1909년 이토를 사살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1910년 강제병탄 후에 의병과 대한제국군 출신들이 다시 모여 결성한 천마산대 최시흥, 신흥강습소를 설립한 이회영,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서로군정서 총주석 이상룡, 의열단장 김원봉, 의열단 김상옥, 나석주, 박재혁, 대한독립군 홍범도, 북로군정서 김좌진, 통의부 오동진, 광복군 창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한인애국단 윤봉길, 이봉창, 국내 진공작전을 맡은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광복군을 창설한 김구 주석이다.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제막한 독립운동 영웅 5인의 흉상 표지석 (홍범도장군,지청천 장군,이회영 선생,이범석 장군,김좌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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