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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미륵의 미간에 황금빛이 돌아왔다

관촉사에는 은진 미륵이 있다. 관촉사라는 이름도 은진미륵의 스토리에서 온 것이다. 은진 미륵부처님 동상의 미간의 백호(白毫)에서 찬란한 빛이 발하여, 중국 송나라에 까지 이어져, 그곳의 지안이라는 고승이 빛을 따라 찾아와 배례한 뒤 "마치 촛불을 보는 것 같이 미륵이 빛난다"라고 하면서 사찰 이름을 관촉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출처 : 지역 N 문화

고려 광종19년(서기968) 조성을 시작하여 목종9년(1006) 완공된 은진미륵은 둥그런 미간 가운데는 커다란 백호(白毫)가 있다 백호는 수정 같은 보석을 끼워 넣는 부분이다.  지금 이 백호에는 황금색의 수정이 박혀 있다. 그 전에는 청동이었다라고 하는데 언제 바뀐 것일까? 

은진미륵 백호에 관해 떠도는 이야기로 “원래 황금이 박혀 있었는데 도둑들이 은진미륵 뒤의 나뭇가지를 타고 건너와 관위에 있던 금 불상과 함께 이마에 금덩이도 훔쳐갔다. 그래서 청동으로 보수 했는데 그 녹물이 불상의 안면으로 흘러내려 1960년대 초에 수정으로 다시 보수했다.” 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원래의 황금색이 돌아왔다. 황금 색으로 된 수정과 같은 무엇인가를 이마에 박았다. 

은진미륵불상의 백호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글이 있어서 발췌한다

글 : 류제협 논산문화원 고문, 놀뫼신문 2019-03-20

....은진미륵 이마의 백호는 원래 은진미륵이 조성될 당시인 1,000 여 년 전 고려 초에 천연수정을 구형으로 가공하여 감입(嵌入-구멍을 파고 끼워 넣음)하였다. 이후 오랜 세월 바람에 깎이고 빗물에 씻겨(風磨雨洗풍마우세) 1521년 자연적으로 떨어져 바닥의 바위에 부딪쳐 세 조각으로 파손되었다. 당시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보석으로 다시 만들지 못하고 청동 원반형의 백호로 보수했는데 1960년 12월 이 청동 백호를 교체하기 위해 제거했을 때 이 원반형 청동백호의 뒷면에 正德十六年四月(정덕16년 4월-1521년 4월)이라는 먹으로 쓴 기록이 나와 지금부터 대략 500여 년 전인 조선 중종 때  원래의 백호가 탈락 파손되어 청동으로 교체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파손된 백호는 관촉사 벽장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당시 주지스님의 친지(親知)로 경남 울산군 온양면에 살며 부산 동아대학에 적을 둔 서 모씨가 고시 준비차 관촉사에 머물고 있었다. 이 사람이 평소 골동품수집에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군대 영장이 나와 집으로 갈 때 벽장에 있던 이 수정 백호를 가지고 갔다. 그 뒤 이 백호의 분실 사실이 신문에 크게 보도 되자 겁을 먹은 서모씨는 1961년 2월 15일 백호를 직접 반환하였다. 반환된 백호는 수사를 위하여 강경경찰서에 임시 보관됐었으며 이후 문교부에서 사찰에 계속 보관할 경우 전례에 비추어 보관을 소홀히 할 것이 우려된다며 충청남도에 지시하여 국립박물관 부여분관에 보관토록 조치하여 최종적으로 부여박물관에 보관되게 되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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