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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의 디테일과 실수-고려 국경

글 : 박덕규 


드라마 디테일

드라마에서 강감찬 장군의 갑옷에 새겨진 꽃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꽃은 나라를 지킨 개선장군의 머리에 꽂혔었다.

강감찬이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개선하여 포로와 노획물을 바치니, 왕은 친히 영파역(迎波驛)까지 나와 영접하였다. 비단을 누각에 묶고 풍악을 준비하여 장군과 병사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고, 금으로 만든 꽃 8가지를 몸소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고려사』 강감찬 열전)
 

드라마의 실수

고려와 거란의 경계는  '원산만에서 흥화진'이라는 식민사학을 그대로 따랐다.

Q. 고려의 국경은 어디인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고려 국경선-천리장성의 위치는 쓰다 소키치의 작품이다.

일본인 식민사학자였던 쓰다 소키치는 고려 국경을 '원산만에서 흥화진까지'라고 주장했다.

『고려사』에서 전하는 고려 국경은 압록이었다.

여기서 '압록'은 어디일까?

보통 지금의 압록강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려 때 쓰여진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압록은 요수 즉, 지금의 요하이다


그 사방 경계는 서북은 당(唐)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 무릇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고려사』 志 권제10 지리1 지리서문

살펴보면, 고구려 때의 도읍은 안시성(安市城), 일명 안정홀(安丁忽)로서 요수(遼水)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요수는 일명 압록(鴨淥)으로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권제3 순도조려
 

고려 국경에 대한 실증자료

1. 거란은 자신들의 땅에 탑을 쌓았다. 요탑이다. 

따라서, 요탑의 분포를 조사하면 거란의 경계를 알수있다. 거란 요탑에서 가장 동쪽의 탑은 요양시였다. 요양이 거란의 동쪽 경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2. 천리장성은 허구다

쓰다가 천리장성으로 표시한 곳은 산악지대가 이어진다. 굳이 험난한 산이 연이어 있는 곳에 성을 쌓을 이유가 없다. 또한, 천리장성 밖이라는 곳에서 거란의 유적이나 유물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3. 고려 기록에 나오는 고려국경

거란이 세운 요나라, 동쪽 변경 파수병의 현황을 기록한 『대요사적』에서 말하는 고려와 거란의 경계도 지금의 요하일대다. 
 

미국 하와이대 동아시아 역사 교재에도 고려말~조선초 북쪽 경계를 이렇게 표시하고 있다.


​참고 및 인용: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고려북계 연구 자료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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