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오십한번째'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불통이 자연스런 시대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수직주의적 예문화 전통 - 쿨투어(Kultur)가 나투어(Natur)로

전통이나 관습, 제도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고, 생각의 크기와 방식을 결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보통, 기존의 생각과 가치에 ‘갇히기’, ‘같이이기’ 쉽다. 같음에 같기는 쉽고 다르기는 어렵다.

이런 전통이나 관습, 제도와 맞물려, 가정이나 학교, 군대나 교회, 일터나 백화점, 전시회나 지하철, 방송국이나 극장 등에서 기존의 작은 소통과 만남의 방식들이 연습되고 길들여진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방송국에서든 직장에서든, 바름, 예의, 착함, 합리, 정의 등의 이름을 붙이고 보이면서, 한 쪽은 말만 하고 한 쪽은 듣기만 하거나, 한 쪽은 결정을 주도하고 다른 한 쪽은 주도 되거나, 양 쪽 모두 말하기와 듣기를 ‘잘’ 못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용인되고 쉽게 반복된다.

소통이 불통으로 될 때, ‘이익 보는’ 쪽도 ‘손해 보는’ 쪽도 있다. ‘손해 보는’ 사람들도 자율로든 강요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동의(同意)하는 가운데 이의(異意)를 생각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않으면서 이런 소통문화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수직소통 질서를 스스로 떠맡으려는 ‘주체(Subject)의 구성’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작은 소통 질서 속에서 작은 소통들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길들여질 때, 이런 작은 소통문화는 ‘자연스런 것’으로 굳어진다. 쿨투어(Kultur, 문화)가 나투어(Natur, 자연)로 되는 순간이다.

이런 비자연의 ‘자연화’ 속에서 ‘다른 생각’은 싹트기 어렵고, 다른 생각과의 소통은 어렵게 된다. 이런 소통문화 속에서 ‘같은 생각’이 강요되고 선호되면서, 같은 생각은 더욱 강화되고 다른 생각은 그만큼 생길 자리, 설 자리를 잃는다.

에머슨(Emerson, 1803~1882)에 따르면, ‘태양은 성인에겐 눈 표면을 비출 뿐이지만, 어린아이에겐 눈과 심장을 뚫고 들어가 비춘다.’ 페스탈로찌(Pestalozzi, 1746~1827)는 ‘모든 인간타락의 중심에는 심장의 경화가 있다.’라 한다. 여기서 ‘심장’은 다른 생각들에 열려 있는 자연스런 인간본성과 이어진다고 할 것이다.

같은 생각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다수나 윗사람들이 하는 생각이기 쉽다. 다수나 위의 생각이 같음, 바름이기 쉬우며, 소수나 아래의 그것은 다름, 틀림이기 쉽다는 뜻이다. 제도와 관습에 젖어 윗사람들 혹은 다수가 주도하는 말하기에서, 같음과 다름 사이 혹은 위와 아래 사이의 ‘합리적인’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위와 아래 사이의 작은 소통크기는 같음과 다름 사이의 소통크기도 작게 하기 쉽다. 또, 같음과 다름 사이의 작은 소통크기는 다시 위와 아래 사이의 소통크기를 작게 할 수 있다.

힘을 한 쪽에 몰아주는 수직적 제도와 전통, 관습에 힘입은 ‘힘 있는 사람들’이 나누며 함께하는 사회적 삶의 방식을 중심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 주변의 ‘힘없는 사람들’의 관심은 소홀해지기 쉽다.

개인들의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것을 저해하는 문제들을 드러내고 풀어내고 넘어서는 결정인데, 일정한 관습과 제도에 힘입어 ‘윗사람’이 결정하여 ‘지침’으로 통보, 하달하고 ‘아랫사람’들이 이를 ‘따르는’ 소통방식 혹은 사회 구성방식 속에서 절대다수인 아랫사람들의 권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되는 유가들도 ‘절대 다수’의 삶 크기가 작은 곳에서 ‘절대 소수’의 삶 크기가 홀로 클 수 없음을 누누이 말해왔다.
 
다름과 아래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함께의 의지를 예라 부르든, 사회정의라 부르든, 인권이라 부르든,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사는 것, 다 같이 사는 것, 다 잘 사는 것, 다 더 잘 사는 것을 생각하고 실천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통장크기, 가방끈 길이, 점수크기, 지위높이, 미모크기 등과 상관없이 다 같은 입을 가진 다 같은 사람이니까...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