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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박사의 『유목민 이야기』 여섯

유럽인이 된 아시아 유목민 알란족

 

4세기 후반 로마의 국경인 다뉴브 강 너머 만족의 영역에는 다양한 족속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한 것은 알란족이었다. 그들은 주변의 족속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복하여 알란족에 통합시켰다.

4세기 로마의 군인이자 역사가인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가 남긴 역사서는 네르바 황제의 등극(96)에서부터 발렌스 황제의 아드리아노플 전투(378)까지 기록한 책이다. 모두 31권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6권부터 31권까지이다. 갈루스 황제 시대인 353년부터 25년간의 역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후기 로마 제국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훈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31권에 훈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물론 훈족을 직접 목도한 것이 아니라 전해들은 바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훈족에 대한 그의 기록 모두가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훈족이 서진하면서 가장 먼저 훈족의 공격 대상이 되었던 것이 알란족이었다. 암미아누스에 의하면 알란족은 초가집도 없고 쟁기도 사용하지 않으며 오로지 고기와 많은 젖을 먹고 살아간다. 그들의 집은 수레 위에 설치한 이동식 가옥이다. 목초지를 찾아 떠돌다가 적당한 곳을 찾으면 수레들을 원형으로 배치한다. 암미아누스의 표현으로는 알란족은 수레에 그들의 도시를 싣고 다녔던 것이다.

알란족은 가축 가운데 말을 가장 소중히 여겼다. 어릴 때부터 말 타는 것에 익숙하였던 터라  말 밑에서 걷는 것을 알란족 체면을 구기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알란족의 외모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대부분은 키가 크고 잘 생겼다고 한다. 또 모발은 노랑색이었으며 시선은 무서울 정도로 맹렬하였다. 이는 눈이 움푹한 것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알란족은 페르시아인들과 같은 인도유럽인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어 행동이 민첩하였다. “음식과 생활방식이 좀 더 세련된 것을 제외하면” 알란족은 훈족과 거의 모든 면에서 유사하였다. 전쟁과 위험을 무릅쓰기를 좋아하여 전쟁에서 생명을 잃는 자는 행복하다 하였다.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없었다. 죽인 적의 두피를 벗겨 장식품으로 말에 자랑스럽게 매달고 다녔다. 전쟁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이들은 칼을 숭배하였는데 칼을 땅에 꽂는 장엄한 의식을 행했다. 암미아누스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신전이나 사당은 없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점칠 때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갖고서 주문을 외며 점을 쳤다고 한다.

알란족이 사는 땅은 하천이 많아서 토질이 좋았다. 가축을 위한 꼴도 풍부하였고 과실수도 있어서 식량 부족 걱정은 없었다. 알란족에게는 그리스, 로마인들에게는 당연한 존재였던 노예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고귀한 가문 출신이라 노예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376년 고트족이 로마 영토 내로 쇄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이 서로마 제국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게르만족 이동’의 첫걸음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고트족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땅을 버리고 허겁지겁 로마제국과의 국경선인 다뉴브 강변으로 몰려들게 만든 것은 알란족을 앞세워 진격한 훈족이었다. 물론 알란족은 훈족에게 패하여 훈족 연합군의 일환으로 편입이 되었던 것이다.

알란족은 30년 뒤인 406년 12월 31일 반달족, 수에비족 같은 게르만족들과 함께 다시 훈족에 쫓겨서 이번에는 얼어붙은 라인 강을 넘어 갈리아 지방으로 쇄도하였다. 훈족의 경우 453년 아틸라 왕의 사후 내분에 휩싸여 흑해 북안의 땅으로 퇴각하였지만 서유럽 땅으로 들어온 알란족은 갈리아를 거쳐 에스파냐 땅에도 정착하였다. 갈리아를 거쳐 에스파냐 땅으로 침략한 이들 세 족속들은 제비뽑기로 스페인 땅을 나눠가졌다고 한다. (휘다티우스의 연대기에서 알란족은 루시타니와와 카르타기넨시스 지방을 차지하였다고 나온다. 루시타니아 속주는 오늘날의 포르투갈, 카르타기넨시스 속주는 카르타헤나를 수도로 한 스페인 동부 지역이다) 심지어 일부 알란족은 반달족과 함께 북아프리카로 넘어가 그곳을 점령하였다.

프랑스인들 이름 가운데 ‘알랭’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알라노스’에서 온 것인데 알란족이라는 뜻이다. 훈족을 연구한 영국의 고故 톰슨 교수는 442년 로마의 실권자 아에티우스 장군이 당시 갈리아와 에스파냐 땅을 휩쓸던 ‘바가우데 반도叛徒’를 견제하기 위해 알란족을 오를레앙 근처에 정착시켰다고 지적한다. (p.139) 아시아에서 기원한 유목민 알란족이 유럽인을 형성하는 데에도 한몫을 한 것이다.

참고서적
Ammianus Marcellinus, The Roman History (tr. by C. D. Yonge, 1894)
E. A. Thompson, The Huns (Blackwell, 1996)

김현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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