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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오십일곱번째

불통이 자연스런 시대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대신 생각해주는 전달교육 - 같은 생각하기

이 땅의 학생들은 방과 후엔 여기저기의 사설 학원으로 가서 같은 공부의 강도를 높인다. 방과(放課)는 ‘공부에서 자유로움’을 뜻하는데, 실제는 그 반대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늦은 밤에 귀가하여, 부족한 잠을 자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율학습시간에 맞추니 졸음만 엄습한다. 그래도 남들이 다 하는데, 나도 대학을 가려면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도 ‘자율’은 실은 타율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시간들의 흐름 속에 아이들, 청소년들의 심(心)과 신(身)은 지치고 병들어만 간다. 감당 못 할 부담 속에 지정의(知情意)의 전인교육은 숨을 헐떡인다.

이런 상태에서 남들과는 물론, 자신과의 소통도 잘 될 리 없다. 소화가 안 되고 잠이 안 오는 것은 기본이다. 몸은 찌뿌둥하고 정신은 몽롱하고 기분은 ‘영 아니다’. 주입식에의 집중조차 불가하게 된다. 그러는 자신이 싫어진다. 그래서 자신이 자신을 자주 거부한다. 물론, 남들도 거부하면서...

자식: ‘나 스트레스 받았거든~.’
부모: ‘네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 있냐?’
자식: ‘아, 됐어~! 신경 끄라고~!’

부모님들은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사는 자신들은 몰라도, 학생으로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냐고 한다. 몇 번씩이나 어려움을 말해왔으나 거절당해왔던 자식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짜증을 내며, 불을 끄듯, 자식을 대하는, 자신을 생각하는 ‘신경을 끄라’고 한다. 만남과 소통을 그만 하자는 뜻이다.

한쪽은 문제가 아니라 하고, 한쪽은 문제라 하는 소통의, 아니, 불통의 방식이다. 문제이고 아님을 보는 시각은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서로의 다른 시각을 서로 마주보고 대하는 방식이 자신의 것에만 굳어있다.

아빠는 자금을 대주고 엄마는 ‘입시 매니저’ 일을 하면서 암기식 공부로만 내모는 세상이다. 내몰리는 공부시간들에 치여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은 상황에서 정상적인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불쌍한 자식들이다. 그리고 불쌍한 부모들이다.

대중매체의 메시지가 부추기기도 하지만, 상당한 시간을 TV에 쏟아 붓는 가정에서도 남들과 생각을 나누고 키우기는커녕,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기회는 크게 줄어든다. 학교에서도 그러는데 큰일이다.

자신에 대해서든 남들에 대해서든, 세상과 사회에 대해서든 삶 일반에 대해서든, 자신이 스스로 묻고 생각할 기회도 남들과 함께 묻고 생각할 기회도 적다. 소수의 남이 제도적으로 생각한 것이나 생각하는 것들을 접하고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생각이든 말이든, 남이 다 해주니 우선은 편해 보인다. 나중에도 그럴까? 

TV 등 대중매체와 학교 내외의 교과서들, 선생님들이 나 대신 생각해주고 판단해준다. 이들의 남 생각들이 내 속으로 ‘그냥 들어와’ 내 생각으로 되니, 내 생각은 남의 생각과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이다.

일방적인 생각과 표현의 흐름 속에서, 자신 스스로의 생각이 ‘생길 자리’와 ‘설 자리’가 별로 없다. 교과서 혹은 특별한 남들이 생각하고 말하면, 그 생각과 말에 대해, 그 생각과 말의 대상에 대해 나도 ‘같이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시간도 기회도 별로 없다.

그러니 입시공화국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기에서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스스로 그러나 함께 묻고 생각하며 나누고 키워가는 ‘같이 생각하기’의 방식이 아니라, 정해진 생각과 지식, 정답을 끊임없이 전달하며 ‘주(注)하여 ’입‘(入)하는,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같은 생각하기’의 방식이 주(主)이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하기’는 ‘여럿이’ 그들의 생각과 판단을 ‘일제히’ 어떤 정해진 생각으로 고정하여 하나로 만들기이다. 고정과 일제(一齊) 속에서 우리들의 사람크기를 훌쩍 키워줄 수 있는 참신(斬新)하고 신선(新鮮)한 생각들과 상상들이, 활발(活潑)하고 발랄(潑剌)하게 피어날 수 있을까?

없다. 이는 여럿이 스스로의 다른 생각들을 서로 보내고 받으면서 활발하게 소통하기의 반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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