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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태일의 『한문화 산책』 - 한 철학과 인식론

 철학에서 인식론이라 하면 참과 거짓을 밝히는 분야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리관이다. 철학으로서 한은 인식론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점을 정리해 본다.

 먼저 한은 진리의 기준을 ‘상대성 원리’에 두고 있다. 전체적인 큰 하나라는 관점으로 양극으로 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서구철학의 인식론처럼 합리론(合理論)이나 경험론(經驗論)처럼 이분법적 입장이 아니다. 즉, 모든 진리는 상대적인 원리에서 앞과 뒤를 다 살펴야 완전한 진리가 파악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상대적 진리관에는 현실세계처럼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두 개로 보지 않는다. 있고 없음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에 의해 불가피한 일시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있음에 치우치면 없음을 보지 못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있고 없음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란 것이다.

 ‘한’ 철학은 삶과 죽음도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본다. 살아 있음은 죽음의 유예이고, 죽음도 끝이 아니라 저 세상에로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한 철학의 부정일치(否定一致)의 진리관을 본다. 사람이란 무한한 공간 속에서 수많은 시간적 변화를 겪고 있는 숙명적 존재로 보는 관점이 ‘한’ 철학의 중심내용이다.

 용강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살았을 때와 꼭 같은 생활을 한다. 그런가 하면 측실 벽화에는 부부의 영혼이 살고 있는 방을 따로 마련해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같은 생사일여관은 ‘한’ 철학에서 말하는 상대성 진리관을 설명하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수서(隨書) 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 풍속 중 사람이 죽어 장례 시에 가무(歌舞)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사람이 죽으면 저 세상으로 가는 여정을 송별하기 위해 큰 소리로 울면서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환송했다는 것이다. 이런 풍속은 신라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전한다.
 
 죽음도 삶도 하나로 보고, 있음도 없음도 같은 것으로 보는 점이 한 철학의 상대적 진리관의 중심내용이다.

 반면, 절대적 진리관은 서구 철학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많은 사상가들이 영원히 변함없는 절대적 진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 진리와 법칙을 밝히려고 연구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500년을 경과한 오늘까지 아직도 절대적 진리나 체계를 밝힌 학자는 없고 누구도 자기 학설이 절대적임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 철학은 이런 절대적 진리관을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절대적 진리관은 신(神)의 영역일 뿐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존재이므로 절대적 진리를 소유할 수 있지만 인간은 시간적, 역사적으로 제한된 존재임으로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진리관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언어 속에도 독특한 ‘한’적 인식론을 찾을 수 있다. 우리말에 일인칭 ‘나’와 이인칭 ‘너’는 같은 자음으로 시작되고 다만 모음에서만 ‘ㅏ’와 ‘ㅓ’로 차이가 날 뿐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은 주객(主客)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즉, 나와 너는 어원상 같은 줄기이다. 영어의 같은 낱말인 I나 You처럼 전혀 별개의 어원들인 것과는 다르다. 독일어나 일본어 등도 별개의 어원임은 마찬가지다. 한국어에는 나와 너의 구별이 없고 소유격인 내것과 네것일 때는 거의 발음상의 구별이 어려워진다.

 또한 나에 대한 타인을 의미할 때는 ‘남’이 된다. 이것은 음으로만 분석하면 나에서 나왔다(生)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은 나에서 난 존재이다. 한국인의 심성으로는 나와 남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려 애쓰기 이전에 생리적으로 하나로 인식해 왔던 것이다. 여기에 단군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민족 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아울러 나와 우리도 구별 짓지 않은지 오래다. 일본인들이 이런 한국인을 비웃으며 ‘엽전’이라고 비하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한번 싸우면 평생 원수로 살지만 우리 경우는 저녁에 싸우고 아침이면 화해할 수 있는 것은 독특한 ‘우리’라는 인식 때문이다.

 종종 ‘우리’ 의식이 빚어내는 불편함도 있지만 객관을 주관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상대적 인식론이 ‘한’적 인식이다. 이런 인식을 화이트 헤드는 과정철학에서 ‘개혁된 주관주의’라 명명했다.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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