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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 오래된 역사병> 비판
김인희의 <치우, 오래된 역사병>을 읽었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황제와 치우에 대한 기록은 춘추전국시대 이후부터 나타나는데 신화인지 만들어낸 역사인지 불분명하다.

동이족이 세웠다는 상나라 갑골문에 '치'와 '우'는 '불행, 탐욕' 등 안좋은 뜻으로 쓰였고, 역시 동이족 강태공의 제나라 팔신제에서 치우를 병주로 모셨지만 치우를 비난하는 기록이 있다. 자기 조상이라면 왜 비난하겠는가

지난 수 천년동안 치우는 천자인 황제에게 반역한 불경스런 제후이자 백성을 형벌과 공포로 다스린 나쁜 군주로 기록되어 왔다. 황제는 무도한 악인 치우를 징벌함으로써 천도를 실현한 한족 최초의 제왕이 되었다.

묘족은 치우가 전쟁에서 패한 후 남쪽으로 이주했다고 하지만, 치우는 원래부터 장강 이남에 살던 남만 묘족의 수장이었다. 산동성, 치우, 묘족, 구려가 동이족이라는 근거는 없다. 중국은 묘족을 중화민족으로 끌어안기 위해서 치우를 동이족으로 만들었고, 중화인민의 조상으로 편입시켰다. 흔히 치우로 상징하는 귀면와는 당나라때 한반도로 전해진 것으로 치우를 우리 조상으로 여긴 흔적은 아니다. 등등..
 
한국조폐공사의 치우천왕 메달
반론:
김인희는 '묘족은 동이족이고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묘족 전문가답게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썼다. 지난 날 자신의 잘못된 과오도 반성하고 이덕일 교수의 원문해석 실력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치우라는 역사병, 배타적 민족주의가 우리를 망칠 것이라는 경고도 실감나게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금방이라도 한중전쟁을 일으킬것 같다.
 
그런데..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환단고기에는 치우천왕이 헌원을 징벌해서 신하로 삼았다고 했지 패배했다고 쓰지 않았다. 따라서, 남쪽으로 이주한 묘족 이야기가 없고 당시 산동에 있던 구려는 묘족이 아니라 소호족이다.

그녀가 치우와 묘족이 장강을 근거지로 했다는 근거는 춘추시대에 진나라에서 '치우를 물뱀으로 묘사'했다거나 '중국의 구리 광산은 남쪽에 많이 분포해 있다'는 것인데, (본인이 썼다시피) 남쪽 묘만과 대립하던 진나라의 입장에 불과하고 기록에 나온 갈로산의 위치 비정은 왜 무시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환단고기에 따르면 반역에 가담한 신농족의 유망이나 산동성에 있던 소호국이나 탁록의 헌원이나 모두 동이족 출신인데, 치우를 비방하고 안하고의 차이로 동족을 구분한다면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철천지 원수로 봤으니 이민족이라는 주장과 다를게 무엇인가.

사마천은 공자의 존화양이 춘추필법을 따라서 한족의 역사를 재편하고 자신들의 조상 헌원을 황제로 추존하여 역사적인 제왕의 첫머리에 두었다. 맥락에 맞게 정리하면 그의 주장은 여기저기 모순을 드러낸다.
 
황제가 치우를 죽이고 제왕이 되었다면 왜 치우상을 그려 숭상하고, 북쪽 탁록의 백리 땅에서 전전긍긍하며 살다 죽었고, 치우에게 천도를 배웠으며 3대의 천제에서 그것도 성스러운 제기에 치우를 새겨놓았을까.

상나라 갑골문에 나온 '치'와 '우'가 불행과 탐욕을 상징한다고 '치우'를 연결시키고 가공의 이미지와 똑같지 않냐는 주장은 억지스럽다. 갑골문의 이가 죽은 시신을 뜻한다거나 흉노는 흉악스러운 노예이니 중국인들의 지배를 받았으리라는 주장과 다를게 무엇일까.

전후 맥락을 고려해서 탁록대전의 경과를 설명한 정경희 박사의 논문이나 관직명에 근거해서 누구의 반역이었는지를 추정한 박병섭박사의 논문이 내게는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자세한 내용은 곧 만들 영상으로 대신한다.
 
역사학자 박덕규 선생 글입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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