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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 인정한 가야 역사연대표의 일본전시 반대한다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전시 역사 연대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가야본성 전시(2019년 12월 ~ 2020년 3월 1일)를 할 때 가야의 역사를 다룬 역사 연대표가 있었다. 그런데 같은 전시인데 부산시립박물관에서 하는 가야본성 전시에는 역사연대표를 삭제했다.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의아할 수 밖에 없다. 보통은 전시회에 그 시대의 역사 연대표를 이해를 돕기 위해서도 넣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산박물관은 이를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전시 역사연대표 전체
이는 항의받은 부분을 고칠 수 없었거나 아니면 고칠 수는 없으니 아예 빼버리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표를 아예 뺀 것은 기존 역사연대표를 고치거나 수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후에 있을 일본 전시회에 큰 문제를 안고 가는 것이다. 일본 전시회에는 당연히 가야 역사 연대표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온다고 생각하기에 뺐다고 하면 그런가보다하면 그만이지만 일본 전시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연대표를 전시하지 않으면 역사와 유물 이해도에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반드시 연대표를 전시해야한다.  지금으로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연대표가 그대로 일본 전시회로 간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럼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출처 : STB상생방송
핵심만 먼저 말하자면 일제의 침략이론인 <임나일본부설>이 그대로 인정되는 연대표이기에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 연대표가 어떻게 임나일본부설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아보자.  
 
가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10명의 <금관가야 왕 계보>가 분명하게 나온다.  이 왕들은 아래와 같다. 
 
① 수로왕(재위 42~199)
② 거등왕(199-253)
③ 마품왕(253~291)
④ 거질미왕(291~346)

⑤ 이시품왕(346~4O7)
⑥ 좌지왕(4O7~421)
⑦ 취희왕(421~451)
⑧ 질지왕(451~491)
⑨ 겸지왕(491~521)
⑩ 구형왕(521~532)입니다.

분명히 기록되고 있는 가락국의 역사다. 만약 가야의 역사를 논한다고 하면 분명히 연대표에 들어가야 할 기록이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 연대표에는 <346년 이시품왕 즉위(삼국유사)>까지 나오고 나서 이후의 왕은 일절 언급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연대표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왕의 계보를 보자
 
☞42년 수로왕 가야 건국
☞48년 허황옥,가락국 도착,수로왕과 혼인
☞199년 3월 가락국 수로왕 158세로 사망,세조 거등왕 즉위(유사)
☞253년 가락국 거등왕 사망,마품왕 즉위(유사)
☞291년 가락국 마품왕 사망,거질미왕 즉위(유사)
☞346년 가락국 거질미왕 사망,이시품왕 즉위(유사)
 
처음부터 왕들의 재위연대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5대 이시품 왕까지는 즉위 연도를 모두 빼놓지 않고 표기하고 있다. 그러다가 임나일본부설의 발단이 되는 일본서기 369년 사건이 기록되기 전인 5대 이시품왕 즉위까지만 기록하고 끝나고 만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전시 가야 역사 연대표 부분
그리고 369년조의 기록으로 들어간다. 이때에  무슨 일이 있었나?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공황후가 369년 임나(가야)를 점령해 실질적 통치를 하다가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이다. 이는 5대왕의 369년부터 10대까지의 가야왕의 연대는 임나일본부의 통치 기간이라는 거다. 6대부터 10대까지의 가야왕은 허구라고 보기에 빼버린 것이다.  가야왕의 연대는 믿을 수 없고 삼국유사의 기록은 거짓,허구이며 일본서기의 기록이 맞다는 것이다. 결국 임나일본부가 4세기에서 6세기 200여년간  한반도 남부 가야 지역을 지배하고 통치했다고 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 역사 학계는 임나일본부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줄곳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임나일본부는 "외교교섭 창구 역할에 불과하다. 외교·무역관리 기관이다.  가야 거주 왜인의 자치 행정 기관이다. 외교사절단이다" 등을 주장했다. 이런 설들이 현재 한, 일 양국의 학계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대외적으로는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해보면 알 것이다. 주류학계의 주장처럼 외교사절단이고 그들이 머무는 곳이 현재의 대사관,영사관 등의 역할이었다고 한다면 그러면 왜 가야왕을 삭제한 것인가?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가야왕은 그대로 존재해야하는 것 아닌가? 왕이 교체되거나 사라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5대 이시품왕이 재위한후에 사라지고 이후에 모든 가야 왕의 기록이 삭제되었을까? 이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가야가 멸망해야하는 것이다. 가야왕 계보가 여기에서 끊어져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 가야의 자리를 임나가 차지하고 대체했다는 것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연대표인 것이다. 
 
TVN 어쩌다 어른 중 한장면
이에 대해 가야를 전공하는 우리 역사학계 학자들은 무슨 답을 할 것인가? 무슨 반론을 할 것인가?  정말 그 반론이나 해명을 듣고 싶다. 우리나라 역사에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이번에는 전시를 통해서 드러났을 뿐이다.  왜 이런 매국적인 주장을 지금까지 줄곳 해온 것인가?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전시 역사연대표 6세기 부분은 더 심각하다. 임나4현과 기문,대사 등 일본서기의 허구적 내용들이 가득하다.
일제 식민지 해방이후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이론인 임나일본부설의 끝자락을 붙잡고 연명하고 있는 형국이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넘어가려고 하면 큰 코 다친다. 이는 식민사관 이전에 친일행위이며 나라 팔아먹는 매국행위다. 무엇을 위해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삼국에 비해서 뒤떨어진 가야 연구사업을 중요시 한 것을 이렇게 이용하고 악용해도 되는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기념 연설에서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추격자 전략이 아니라 선도하는 선도자(first mover) 전략에서는 역사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기초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행위 앞에서 이대로 무너져 내려야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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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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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녹준 2020-05-16 10:34:37

    "일본서기"는
    1869년(메이지유신)이후에 쓰여진소설책이다.
    일본서기를 일본의 역사라고,
    연구하고, 논문쓰고, 하는것은 넌센스다.(웃기는코메디다.)
    차라리 조정래씨의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연구하고론문쓰는것이훨씬값어치가있다.


    대한국인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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