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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기념, 홍범도 다큐 7일 방영
STB상생방송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일인 6월 7일을 맞아 수천 수만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 봉오동ㆍ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여천 홍범도 장군(1868~1943) 다큐를 7일(일) 오후1시, 밤9시 방영한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홍범도·최진동·최운산·안무 등이 일본군 157명을 사살한 독립전쟁사의 기념비적 전투로 청산리전투, 대전자령전투와 함께 독립군 3대 대첩으로 꼽힌다.
 
 일제는 ‘조선군’ 제19사단 소속 남양수비대의 1개 중대와 헌병경찰 중대로 독립군을 추격했다. 그러나 이 추격군은 삼둔자의 서남방에 매복해 있던 최동진의 군무도독부 소속 독립군에게  격퇴당했다.  연달아 참패를 당한 일제는 약 250명의 병력으로 ‘월강추격대’를 편성 6월 7일 봉오동으로 진군해 왔다. 
 
봉오동은 최진동·최운산,최치흥 형제가 1909년경부터 터를 닦고 둔전(屯田)을 통해 군사를 양성하고, 체코군의 무기를 구입하여 일전에 대비해온 곳이다.  월강추격대 소식을 사전에 입수한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및 안무가 이끄는 국민회군이 통합하여 조직한 대한북로독군부군(大韓北路督軍府軍)과 이흥수가 이끄는 대한신민단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출처 : STB상생방송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군 통합부대는 마치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지형의 봉오동 골짜기 안으로 일본군 추격대를 유인하여 격파했다.  일본군 사망자 157명, 중상 200여 명, 경상 100여 명을 내고,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 4명, 중상 2명으로 경미했다. 대승이었다.
 
한편, 정부의 한 소식통은 2일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 유해를 이르면 8월, 늦어도 하반기 중에는 국내로 모셔오는 방안을 외교 채널 등으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안장 장소는 대전 국립현충원이 검토되고 있다.
 
또한 7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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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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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연 2020-06-06 19:44:38

    역사의 진실이 지금이라도 알려져서 너무기뻐요^^
    홍범도장군 유해가 빨리 대한민국땅으로 도착하길 바래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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