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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이시영 선생은 천부경과 계연수를 언급했다
이시영 선생과 김구 선생

이시영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가 항주(抗州)를 거쳐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까지 피난했을 때 우연히 중국인 황염배(黃炎培:1878~1965)가 1933년 쓴 『조선』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황염배는 나중에 중국공산당 시절 부총리를 역임하는데, 한때 일본에 유학했던 관계로 한국사에 대해 아주 그릇된 관점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보고 분개한 이시영 선생은 『감시만어』에 부제로 ‘황염배의 잘못된 한국사관을 논박한다’라고 썼다. 황염배가 일제 식민사관에 물들어 한국사를 비하하는 것을 논박한 것이다.

『감시만어』 에 책에서도 환단고기의 편저자인 계연수 선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1920년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과 1921년의 단군교의 잡지 『단탁』 등 뿐 아니라 1930년대에도 계연수 선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천부경과 함께 계연수라는 이름 석자가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을 이시영 선생의『감시만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시영 선생은 단재 신채호 선생같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 역사적 소양을 갖추고 있는 분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어떠한 마인드와 역사적 가치관을 가지고 항일항쟁에 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글이 바로 『감시만어』 다.

[原文] 韓族 言語 文字 及 道敎.
 出典 : 感時漫語 (省齋 李始榮 著)

韓族言語. 三國分鼎前後. 大體統一. 而土語小有不同. 滿淸乾隆云. 金源滿洲, 高麗. 根本相同. 而各方土話. 吳有不同. 三韓官制之稱. 新羅中葉以前. 用以韓字. 陳壽三國志. 以牛馬六畜紀官. 非以鳥紀官之例也.. 譯音之際. 傳會侮辱大矣. 中國以文化先進之國, 而湯以前. 屬之神話. 湯而後始有信史. 我韓亨國. 有四千餘年. 而三韓以後. 始有信史. 繼而有異族嶊殘之禍. 寧非可痛可羞之事乎. 歷代經籍文字之禍. 非止一二. 一厄於燕綰之亂. 箕史湯然無存. 在厄於唐將李世勣. 三厄甄萱之變. 新羅舊史經籍.  付之一炬. 四厄於忽必烈之刪削麗史. 五厄於日本之禍. 禁遏古書. 而贋換眞. 至於神誌秘詞. 大辨說. 朝代記. 周南逸士記. 誌公記. 表訓天詞. 三聖密記. 道證記. 動天錄. 壺中錄. 地華錄. 書雲觀秘記. 安含老元董仲三聖記. 多失其本. 且高興之百濟史. 李文眞之高句麗史. 居染夫之新羅史. 以及渤海史等. 但存其名. 東方最高文藝. 如神誌所撰秘詞. (檀君時掌書契) 字形奇異. 意旨深奧. 讀者難解. 高句麗大弘英譯以漢文. 幷書註譯. 有九變震檀圖. (九變國都之變遷. 震檀朝鮮之謂也)

韓人文字. 自土古有之. 女黃帝東自靑邱(韓). 親受三皇內文於紫府仙人. 事屬神代. 不可究悉. 然柳文化譜王文(扶餘朝)所書之法. 似篆類符. 又平壤法首橋古碑. 南海島嚴所刻之書. 惑疑徐市之跡. 而旣非秦篆. 又非梵字. 明明是韓人古字. 又三國史. 憲康王三十二年. 實露國自黑水國通和於新羅也. 有水片古字. 且李太白全書玉塵叢談云. 渤海國有書於唐國. 擧朝無解之者. 惟李白能解而答之. 高麗光宗時. 張儒以接賓使著名. 初避難到吳越錢氏. 有好事者. 刻東部寒松亭曲於琴底. 漂送海波. 月人拾得. 不解其辭. 適遇張儒. 拜間其辭. 儒卽席以漢詩解之曰『月白寒松也.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鴟』. 琴底所刻之文(鄕札). 卽韓之古文也. 至若保世長民之眞倧大道. 與夫敎化嫡髓之國仙, 皂衣, 仙人, 花郞, 風月主等之獨特無二之史. 在杜佑通典. 冊府元龜. 隨唐新書. 略擧其名. 而不載其實. 遂使强毅死節之風. 仁厚普博之美. 高潔穆遠之跡. 只有零零片鱗. 檀朝時代所撰. 天符經. 後世無傳. 新羅人崔致遠. 得古碑. 譯以漢文. 因跋數十字於後. 刻留妙香山石壁. 四千二百五十年丁巳. 該地人桂延壽發見於叢林中. 印模傳世. 凡九行九字. 共八十一字. 分章析句. 爲三編. 九章. 七十六句. 義奧難解. 本文如下.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太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近有序而釋之者曰. 此經首敍一理之極致. 中散萬事萬物. 末復合于一理. 宇宙傳遞悉載於此. 空界隱秘之森羅萬象. 浩刼變幻之成住壞空. 韓人罹此奇禍奇恥. 尙不暇乎自悔自艾. 矧敢論人長短. 且進而誇眩故事. 以招世人之譏乎. 常念中國文化早開. 政敎發達. 善察隣國之事. 遠在戰國之前. 奈之何中古以來. 觀察隣政. 如霧中看花. 處乎至近至密之地. 一切事情. 不思究解. 豈非可異之事耶. 二十四代史. 諸家記述. 尙未熟讀細考. 固難遽下忘評. 然擧其所知而論. 中國人之韓國觀. 多出於捃摭途說. 疎漏不精. 無深究熟考之跡. 其不失眞義. 較近事實者. 如漢書司馬相如謂漢武曰. 陛下謙讓而不發. 契三神之懽是也. (三神卽上帝也)東方神檀史曰箕子東來. 欽敬神理. 譯讀敎經. 建祠於阿斯達山. 以紫檀木造三神位. 選賢良二百人. 虔祀春秋. 三神一曰桓因. (古語天父)二曰桓雄天師. 三曰桓儉. 皆天君之稱也. 箕子三八政. 三日祀. 是報本追遠之義也. 『桓』 『韓』東語大也. 滿洲之稱汗. 與韓同音. 『儉』君之稱. 桓儉. 或稱王儉. 其義一也. 明人王弇洲續宛委餘編云. 東方檀君首出. 以神聖之化. 敎民厚勤. 濟濟爲强族. 敎名在扶餘曰代天敎. 在新羅曰崇天敎. 在高句麗曰敬天敎. 在高麗曰王儉敎. 皆祀三神. 每歲十月. 拜天. 檀君開天建國. 幷在十月三日也. 遼史神策元年. 建廟於木葉山. 東向設天神位. 廟庭植檀木. 名曰神樹. 皇帝親祭. 出師必先告廟. 乃立三神位. 金史大定十二年十二月. 禮崇以興國靈應王. 昌明四年十月. 復冊爲開天弘聖帝. 前淸滿洲誌. 詳述拜天敎之事. 韓儒李星湖丁茶山有記述倧敎. 三神說.   (原任) 成均館 副館長 友山 李相吉 提供

한족(韓族)의 언어는 삼국이 분립되어 있던 시대를 전후해서 대체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나 土話는 통일하지 않은 말이 조금 있었다.

  만주의 청나라 건륭황제(1711~1799)는 『滿洲源流考』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금(金)나라의 근원은 만주와 고려이며 근본은 서로 동일한 것이다.  각 지방에 土話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있으나 삼한(三韓 :馬韓⋅辰韓⋅弁韓)의 관제일칭(官制 一稱)에는 신라 중엽 이전까지도 한(韓)의 문자를 써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진수(西晉사람 233~297)가 쓴 『삼국지三國志』(二十五史의 하나)에서는 삼한의 관제가 우마와 같은 육축(六畜)의 이름을 딴 것이 있어(例 牛加⋅馬加) 鳥類의 명칭을 딴 중국 관제와는 다르다고 했으며 발음을 음택함에 있어서 傳會와 侮辱(모욕)을 가한 점이 대단히 많다.

  중국이 문화선진국이라 하나 은나라 탕(湯)임금(BC 1600年代) 이전의 역사를 바라볼때  이는 신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탕(湯)임금 이후의 역사라야 겨우 믿을 만한 것이다. 

  우리 한국은 나라를 향유한지 4천여년이요 삼한시대 이후부터는 신빙성이 있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4천년의 悠久한 역사 속에서 외국 이민족의 침략을 계속 당하여 화를 입었으니 어찌 통한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역대의 經籍과 문자 등이 입은 화도 한, 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입은 화액으로서 연燕나라의 綰王(BC 247~?)의 난(亂)을 들 수 있는데 이 때문에「기자조선箕子朝鮮」의 역사 기록이 모두 탕화(湯火)되고 殘存한 것이 없게 되었으며, 두 번째의 화액으로서 당장(唐將) 李世勣이 고구려에 대해 저지른 것과 세 번째의 변으로서 견훤(甄萱)의 화액(禍厄)을 들 수 있는데 이때 신라의 구사(舊史)와 經籍은 한 가닥의 횃불이 되어 잿더미로 화했다. 네 번째의  變厄으로서 몽고(蒙古)의 홀필열忽必烈(1260~1294)에 의한 刪削(산삭)이라 할 수 있으며 다섯 번째의 變厄은 일본에 의한 화(禍)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온갖 고전이 금서처분되고 가본(假本)이 진본(眞本)으로 바뀌고  다음과 같은 珍籍(진적)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神誌秘詞 (신지비사大辨說 (대변설)  朝代記 (조대기)  周南逸士記 ( 주남일사기)  誌公記 (지공기)  表訓天詞 (표훈천사)  三聖密記 (삼성밀기)  道證記 (도증기) 動天錄 (동천록)  壼中錄 (곤중록)   地華錄 (지화록)   書雲觀秘記 (서운관비기)   安含老(안함노)⋅元董仲(원동중)의 『三聖記』 等 多數이다.

  또 高興이 지은  『百濟史』, 李文眞이 지은  『高句麗史』, 居柒夫(거칠부)가 지은 『新羅史』 그리고  『渤海史』에 이르기까지 여러 서적들이 단지 그 冊名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문예품(文藝品)으로 신지神誌(檀君時代의 글을 관장한 官吏)가 쓴  『秘詞(비사)』가 있는데 그 글씨 모양이 奇異(기이)하고 의미가 深奧(심오)하여 讀者가 해득(解得)이 어려운데 고구려의 大弘英이가 이 『비사秘詞』를 한문으로 번역하고 아울러 서문에 주석을 붙인  『九變震檀圖(구변진단도)』가 있다.  

한인(韓人)은 문자를 아주 상고시대부터 가지고 있었다. 저 황제헌원(皇帝軒轅)(BC 2692~2592)이 동쪽의 나라 청구靑邱(韓)國으로부터 몸소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자부선인(紫府仙人)에게서 받아 왔다고 하는데 이는 아득한 신대(神代)에 속하는 일로 더이상 仔細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문화 류씨의 족보에 쓰여 진 왕문(扶餘朝)의 서법(書法)을 보면 전자(篆字)를 닮기도 하고 부적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평양의 법수교(法首橋)에 있는 고비(古碑)나 남해도(南海島)의 암벽에 각인(刻印)되어 있는 글자가 혹시나 徐市(秦始王 때 長生不死藥을 캐러 온 사람)가 남겨놓은 흔적이 아닌가 의문도 해보지만  이미 진시왕때 쓰던 전자(篆字)도 아니오 범자(梵字)도 아님이 명명하게 밝혀졌으니 한인의 고대문자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본기』 憲康王編에 보면 헌강왕(憲康王) 12년(886)에 寶露國이라는 나라 사신이 흑수국(黑水國)을 통하여 신라에 통화를 요청하였는데 이때 나무 조각에 고문자로 새겨진 글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고 또 『이태백전서李太白全書』의 『옥진총담玉塵叢談』이란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발해국에서 당나라에 국서를 보냈는데 당나라 조정에서 이 글을 해득(解得)하는 자가 없었다.그런데 오직 이태백李太白(701~762)만이 이를 해득할 수 있어 답장을 써 보냈다.......  고려국의 4대왕인 광종光宗(949~975)시 장유張儒라는 사람은 接賓使로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처음 그는 난을 피하여 중국 양자강 남쪽인 오월(吳⋅越)지방에 사는 錢氏라는 사람 집에 묵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호사가가 있어 거문고 밑바닥에 「東部寒松亭曲」이라는 글을 새겨 海波에 표류케 하였던바 越나라 사람이 주어 그 바닥에 새겨진 문장을 해득할 수 없었다.  때마침 장유(張儒)가 그곳에 가 있었기에 越나라 사람이 그에게 이 글의 뜻을 물었더니 장유는 즉석에서 이를 해득하여 한시로서 대답해 주었다. 즉 그 내용이

   月白寒松夜 : 달빛은 교교히 외로운 소나무에 내리고
   波安鏡浦秋 : 파도조차 잠이든 경포대의 가을
   哀鳴來又去 : 지저귀는 새소리만 슬프게 오고 가는데
   有信一沙鴟 : 모래 위 수리개는 어떤 소식을 가져 왔는고

  거문고 바닥에 새겨진 글은 신라때의 한자로서 우리말을 표음식(表音式)으로 나타내던 이른바 향찰(鄕札)이었던 것이며 다름 아닌 한韓의 고문(古文)인 것이다.

  세상을 보전하며 백성들에게 교훈이 되는 진종대도眞倧大道(卽 大倧敎를 뜻함)와 교화의 眞髓(진수)할 국선國仙⋅조의선인皂衣仙人⋅화랑풍월주花郞風月主 등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독특한 역사인 것이다.

  杜佑(735~812 唐國人)의 『통전通典』⋅ 『책부원구冊府元龜』 및 『수당신서隨唐新書』 등에서는 그 명칭만을 간략하게 거론하였을 뿐 그 내용은 기재하지 않았는데 다만 강직하고 씩씩하며 절개를 위해 죽음을 아끼지 않은 기풍과 어질고 무던하며 끝도 없이 너그러운 미덕, 그리고 고결하고 그윽한 발자취들이 보잘 것은 없지만 그 편린만이라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저 단군시대에 撰述하였다고 하는 『天符經』이 후세에서 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신라 최치원이 고비(古碑) 하나를 얻어서 그 비문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거기에 발문으로 수십자를 그 뒤에 붙였는데 이를 묘향산의 어느 석벽에다 각(刻)하여 후세에 남겨 두었다.

  檀紀 4250年 丁巳年 黃海道 桂廷壽(계연수)라는 사람이 이 글을 묘향산 숲속에서 발견하여 이것을 인각(印刻)하여 세상에 전하였는데 아홉 줄로 된 아홉자의 글로 되어 모두 81자인 것이다.  모두 장을 나누고 구(句)를 끊어 3편 9장 七十六句가 되나 뜻은 깊고 그윽하여 해득하기 어렵다.

  그 글을 소개하면

  一始無始一析三極無 (일시무시일석삼극무)
 盡本天一一地一二人 (진본천일일지일이인)
  一三一積十鋸無匱化 (일삼일적십거무궤화)
  三天二三地二三人二 (삼천이삼지이삼인이)
  三大三合六生七八九 (삼대삼합육생칠팔구)
  運三四成環五七一妙 (운삼사성환오칠일묘)
  衍萬萬來用變不動 (연만왕만래용변불동)
  本本心本太陽昻明人 (본본심본태양앙명인)
  中天地一一終一  (중천지일일종일)

最近에 『천부경天符經』을 서문序文에 주석註譯을 달고 이를 해석한 사람이 있는데 말하기를

  이 『天符經』은 처음에 『하나』라는 이치의 극치를 첫 머리에 서술하고 중간에 가서는 만사 만물의 설명으로 확산하였다가 말미에 가서는 다시 『하나』의 이치로 통합하였다.

  우주(宇宙)의 전체(全體)를 빠짐없이 여기에 기재(記載)하였다.  즉 森羅萬象(삼라만상)과 우주의 은비(隱秘)를 또 成住壤空(성주양공)하고 浩劫變幻(호겁변환)과 인생본연의 성명원리(性命原理)를 그리고 도문(道門)의 비장秘藏과 원각圓覺의 묘체(妙諦)에 이르기까지 불비(不備)한 것이 없다 할 것이라고 하였다.

  통한(痛嘆)스럽도다. 한인(韓人)은 이와 같이 기이한 災禍와 기구한 치욕을 입어 왔거늘 아직도 自悔自艾(자회자예)하는데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 하물며 감히 타인의 장단점을 들먹이겠는가? 한걸음 더 나아가 고사(故事)를 과장해서 남을 현혹케 하여 타인의 비방을 초대할 일을 하겠는가!

  중국인들은 항상 자국의 문화가 일찍 개발되고 정교政敎가 발달되어 隣國까지 善察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 멀리 전국시대戰國時代(BC 402~221) 이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詳考할 수 없으나 중고시대中古時代 이래로는 隣國의 정치를 관찰하는 것을 霧中(무중)에 꽃구경하듯 하여 至近至密한 터에 있는 우리에게 대하여 일체 사정(事情)을 깊이 생각하거나 연구하려 하지 않고 하였으니 이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二十四代使』를 諸家들이 기술하였는데 어찌 이를 열독⋅細考하지 않고 처음부터 어찌하여 서둘러서 망령된 평을 내리는가.

 그러나 저들이 아는 것만을 들어 논하는 것을 보면 중국인의 한국관은 대개가 길가에서 주워들은 소문所聞에서 비롯된 것이고 疏漏(소루)하고 不精한 것이어서 探究熱考(探究熱考)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 중에서 비교적 진의를 잃지 않고 사실에 가깝게 기록을 적은 것이 있는데 司馬相如(BC 179~117)가 『漢書』에서 한무제(BC 141~87)에게 한 말이다.  폐하陛下께서 겸양하시어 미처 말씀하시지 않으시오나  「삼신三神」의 환심(歡心)을 사시는 일이 오니이다(여기서 三神이라 함은 곧 「上帝」를 뜻함이다).

  또 『동방신단사東方神檀史』에 이르기를  기자箕子가 동쪽에서 와서 신의 이치를 欽敬하면서 교리와 경전을 譯讀하고 阿斯達山에 사당을 지었으며 그 사당은 紫檀木(자단목)으로 건조하고 삼신위三神位를 모시었다.  삼신三神은 첫째 桓因(고어로 天父「하느님」을 뜻한다)이요, 둘째 桓雄天師(환웅천사)요, 셋째 桓儉(환검)인데 이 모두가 天君을 일컫는 것이다.  이른바 箕子의 三八政 가운데 세 번째가 祀(제사)이니 이는 報本追遠 卽 先祖의 恩惠에 感謝 報答한다는 뜻이다.

 「韓」이나 『桓」이 모두가 우리말로는 大(큰 것)을 뜻하는데 滿洲말로는 『汗(한)」으로 일컫게 되는데 이 『汗」은 「韓」과 同音이다. 「儉」은 「君」(임금)을 뜻하는 것인데 桓儉(환검)이나 王儉(왕검)은 모두가 같은 뜻이다.

  明나라 사람 王弇洲(왕엄주)(本名 王世貞 1529~1593)가 쓴 「續宛委餘編(속완위여편)」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記錄이 있다.  東方의 檀君님은 特出한분으로 神聖한 가르침을 펴서 百姓을 溫厚하게 하고 勤勉하게 하였으며, 이리하여 堂堂하고 强力한 民族이 되게 하였으며, 檀君의 가르침을 扶餘에서는 「代天敎」라 하였고,  新羅에서는 「崇天敎」라 하였으며, 高句麗에서는 「敬天敎」라 하였고, 高麗때에는 「王儉敎」라 하였는데 이들 모두가 三神을 祭祀지내는 것이며 해마다 十月이면 하늘에 敬拜하였다.   檀君의 開天建國하심도 亦是 十月三日이다 (......하략.....)


이상과 같이 『감시만어』의 일부 내용을 알아보았다. 다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다음에 더 논하기로 한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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