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한문화 속으로 독립운동사
[팩트체크] 이유립 선생 신간회 삭주지부 발기에 참여했다. 이유립, <신간회> 삭주지부 발기에 참여했다가 강제 해산됨  

신간회(新幹會)는 1927년 2월 15일에 사회주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결집해서 창립한 항일단체로, 1931년 5월까지 지속한 한국의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단체는 전국구는 물론 해외 지부까지 두고 있는 단체로 회원 수가 3~4만여 명 사이에 이르렀던 대규모 단체였다. '민족단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조선민족운동의 대표단체로 발족했다. 사회주의계, 천도교계, 비타협 민족주의계, 기타 종교계 등 각계각층이 참여했으나, 자치운동을 주장하던 민족개량주의자들은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았다. 

창립총회에서 회장 이상재, 부회장 권동진, 그리고 안재홍, 신석우, 문일평을 비롯한 간사 35명을 선출하고, 조직확대에 주력, 1928년 말경에는 지회 수 143개, 회원 수 2만 명에 달하는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했다. 회원 중 농민의 숫자가 가장 많아, 1931년 5월 4만 9천여 회원 중 농민이 2만여 명, 54%를 차지했다.  (위키피디아 참조)

이유립 선생 신간회 삭주지부 발기에 참여했다.

"최석홍(崔錫弘), 김처원(金處元)과 함께 신간회 삭주지부를 발기하고 결성대회를 하다가 구룡포 왜경에 의해 해산을 당하자 만주로 건너가 한동안 머물렀다."

"1927년 신간회 삭주지부 최석홍,김처원 등과 함께 발기하였다가 결성대회의 해산을 당하였다" (양종현,백년의 여정 144쪽)

이런 사실의 팩트를 알려면 일단 함께 했다고 하는 최석홍과 김처원을 찾으면 된다. 지금이야 당시의 일제시대 언론이나 혹은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명단 등 문헌이 남아 있다면 다양한 경로를 통한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유립 선생이 증언하는 60년대 혹은 70년대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인물이 있는 것조차 알기 어렵다. 이유립 선생은 그저 당시에 자신의 생애를 담담히 증언했을 뿐인데 여기에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이유립이 그랬을리 없다고 주장한다. 이유립이 환단고기 전수자이기에 당하는 가혹한 매도다. 

김처원과 최석홍은 당대에 삭주 혹은 삭주 인근에 살고 있었던 인물이다. 신간회 지부 결성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이다. 

일단 최석홍(崔錫弘), 김처원(金處元)와 한자가 같아야 한다. 물론 한자는 발음만 같고 다른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동일한 한자가 있다면 이를 우선시 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 이 둘이 당시에 그 지역에 존재하는 인물인지를 살펴보자. 

김처원 (金處元) : 평북 초산군 신양송동 

出沒無常(출몰무상)한獨立團(독립단) 1924.05.22 동아일보
신양송동에는 김처원(金處元(김처원))외다섯집과 화신동에는 윤텩호(尹倜鎬(윤주호))외 두집과 건양동에는 유도경(劉道京(유도경))의집에 들어간일이 잇섯스며 십일일밤에는 고면엉풍동뎡년준(古面永豐洞...


초산군 신양송동에 사는 김처원金處元으로 한자까지 같다. 

최석홍(崔錫弘) : 평북 영변 거주

關西農民(관서농민) 運動者協會(운동자협회)
1930.10.17 동아일보
(영변))崔錫弘(최석홍) (朔州(삭주))張仁甲(장인갑)(平壤(평양))崔道行(최도행) (安州(안주))金秉一(김병일)(泰川(태천)) 第一回委員會(제일회위원회) 별항보도된 관서농민운동자협회(關西農民運動者協會(...

앞서 노동운동 뿐 아니라 농민운동에 큰 관심을 가졌던 신간회는 농민의 숫자가 가장 많아, 1931년 5월 4만 9천여 회원 중 농민이 2만여 명, 54%를 차지했다고 한다.   崔錫弘(최석홍)이 1930년 관서농민 운동자 협회 집행위원인것은 그가 농민운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것을 뜻하고 이는 신간회를 할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이유립 선생이 이때 20대 초반이라 어리다고 주장했다. 이는 어불성설이다. 당시 20대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런 여러가지를 검토해본 결과 "이유립 선생은 1927년 신간회 삭주지부를 최석홍,김처원 등과 함께 발기하였다가 결성대회의 해산을 당하였다"라는 문장은 팩트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화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