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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꽃 ‘무궁화’ 의 무궁한 역사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동요 ‘무궁화’)
“무궁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동요 ‘무궁화행진곡’)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무궁화 하면 떠오르는 동요들 그리고 애국가다. 누구나 익히 들어본 노래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무궁화 노래가 익숙하다. 하지만 무궁화가 그리 흔하게 주변에 보이는 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무궁화를 알면서도 무궁화를 모르고 있다. 무궁화에 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궁화는 어떤 꽃?

무궁화(無窮花)의 뜻은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 Hibiscus는 무궁화가 이집트의 신 히비스를 닮을 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뜻한다. Syriacus는 무궁화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원산지를 시리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양에서도  ‘샤론의 장미’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무궁화의 영문 표기가 바로 ‘Rose of Sharon’이다. 고대 수메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숭상하던 꽃도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다. 수메르 문명과의 연관성을 꽃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  

무궁화는 7~10월 사이에 핀다.  국내외 원예학자들이 대표적인 여름꽃이라고 인정하는 무궁화는 수 천 송이의 꽃을 한여름에 피운다.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지는데 한 나무에서 여러 꽃송이가 번갈아 꽃을 피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궁화 꽃은 그 형태에 따라 각기 이름이 다르다. 많은 종류가 있다. 무궁화의 꽃 색깔은 순백색과 그 이외의 꽃으로 나눌 수 있다. 순백의 하얀 꽃은 '배달계'라고 부른다.  '아사달계'는 꽃잎 가장자리에 무늬가 있는 것을 말한다. 순백색 이외의 무궁화는 전부 꽃의 중앙부가 붉은색을 띄고 있다. 이것을 단심(丹心)이라 부르는데 꽃잎의 색깔이 흰색 바탕일 경우 백단심(白丹心), 분홍과 붉은색 바탕일 경우 홍단심(紅丹心),  청색 바탕인 것을 청단심(靑丹心)이라고 부른다.  무궁화의 수명은 보통 40~50년 정도다. 꽃말은 ‘일편단심’이다. 

나라꽃 무궁화의 역사 

무궁화에 대한 기록은 고조선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9천년전 환국시대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했음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상고시대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무궁화를 근수(槿樹), 환단고기에서는 환화(桓花), 천지화(天指花)로 표현하고 있고, 특히 단군세기에는 무궁화에 대한 좀더 많은 기록들이 있다. 

환인께서 환화 아래에 돌을 쌓고 그위에 앉으시니 모두 늘어서서 절을 하였다 (태백일사 환국본기)

5세 구을단군 재위 16년 정축(BCE 2084)년 임금께서 친히 장당경에 순행하여 삼신단을 봉축하시고 환화를 많이 심으셨다. (단군세기)

(11세 도해단군시 환웅의 유상이) 신단수 아래 무궁화 꽃 위에 앉아 계시니 마치 진신 한분이 원융무애한 마음으로 손에 천부인을 쥐고 계시는 것 같았다.  (단군세기)

(13세 흘달 단군 재위 20년에) 재위 20년 무술(BCE 1763)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으셨다.  미혼 소년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이라 부르셨다.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천지화랑이라 불렀다. (단군세기)

(16세 위나 단군시) 옛 사람들은 환화를 가리켜 이름을 짓지 않고 그냥 꽃이라고 하였다. 애환가에 전하는 가사가 있으니 이러하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지난해 만그루 심고 올해도 만그루 심었어라
봄이 찾아와 불함산 꽃이 온통 붉으니
하느님(천신) 섬기고 태평성대 즐겨보세 (단군세기)

그냥 꽃이라고 만해도 그것은 무궁화 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듯 아주 오래 전 상고시절부터 무궁화는 우리와 함께 했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근역(槿域),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다.  중국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君子國有薰華草 朝生模死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薰華草)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훈화초'는 바로 무궁화를 일컫는다.

 897년 신라 효공왕 때 최치원이 작성해 당나라 광종에게 보낸 국서 <사불허북국거상표>에서는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 지칭했다.

이렇듯 환화, 천지화, 근화 등 여러가지로 불리웠지만 현재 문헌상으로 무궁화라고 불린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고려 말 이규보의 동국집에 ‘무궁화’라고 처음 기록됐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장원급제한 선비에게 어사화로 무궁화를 달아주는 등 영광스러운 꽃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단군조선시절 화랑의 전신인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던 전통과 유사하다. 

조선 후기까지 우리나라 문헌에  '목근(木槿)'이란 명칭이 가장 많이 쓰였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고금주(古今注)]에서 인용한 '군자지국 지방천리 다목근화(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대목이 있고 '산림경제(山林經濟)', '본초강목(本草綱目)', '화암수록((花庵隨錄)',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동의보감(東醫寶鑑)' 등에도 목근(木槿)'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한말에는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부각돼 한반도를 가리키는 ‘근역(槿域)’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개화기 때 민족학자들이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국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갑오개혁 이후 남궁억 등은 민족의 자긍심을 위해 ‘국화’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 때 무궁화를 국화로 하자고 결의를 하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들어 무궁화는 독립군 군가와 시가 38편 중에는 무궁화가 ‘무궁화’, ‘무궁화 동산’, ‘무궁화 강산’, ‘무궁화 화원’, ‘근화’, ‘근화강산’ 등으로 언급됐다. 이 때문에 일제는 무궁화 관련 운동이나 무궁화 자체를 탄압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무궁화가 국화로 본격적으로 거론된 시기는 ‘구한말 개화기’이다. 그리고 곧 이어 만들어진 애국가 후렴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가 정해지면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국화로 인정받게 됐다. 

9천년의 역사를 함께 해 온 우리의 무궁화. 민족의 행복과 번영 그리고 아픔과 고난을 함께한 무궁화는 우리들 마음속에는 이미 진정한 나라꽃으로 자리매김되어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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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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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스타 2017-08-17 14:52:40

    맨 아래쪽 명실항부 오타같습니다. 사전에 안나와요. 명실상부 아닌지요?   삭제

    • 황명수 2017-08-17 09:25:54

      기사내용에 친일 인사 윤치호가 나오는데 구체적인 내용으로 년도를 밝히면 좋겠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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