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K-culture 역사
단군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 중국을 9년홍수에서 구하다

초대 단군왕검 재위 50년 (BCE 2284년) 대홍수가 나고 극복하다

왕위에 오르신지 50년째인 정사년(BCE 2284년)에 고조선에 큰 홍수가 발생했다. 초대 단군왕검께서는 대홍수를 다스리시기 위해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으시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재위 50년 정사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었다. 왕검께서 풍백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다. 우수주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가 남아 있다 "(단군세기)

“재위 51년 무오(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이 곧 그것이다.”(단군세기) 

요순 시절 9년 대홍수와 부루태자의 도산회의 소집

요임금 시절에 9년 홍수(실제는 BCE 2288년 ~ BCE 2267년)가 발생했다. 요임금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적임자를 찾았고 곤(鯀)이라는 사람이 중책을 맡았다.  그러나 9년이 지나도 범람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는 곤을 대신해 순을 등용했다.

요임금을 이어 즉위한 순임금은 책임을 물어 곤을 귀향보내고 그 아들 우가 직책을 잇게 했다. 우는 13년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으며 불철주야 토목사업에 매진해 ‘아홉 산의 길을 열고 아홉 강의 물길을 이끌어’ 마침내 지긋지긋한 홍수피해로부터 황허 유역을 살려내고 새로운 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재위 67년 갑술(BCE2267)년에 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순이 보낸 사공과 도산에서 만나게 하셨다태자께서 오행치수지법을 전하시고 나라의 경계를 살펴 정사히니 유주 영주 두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어 다스리실 때 우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  (단군세기)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를 낭야성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에서는, 태자부루는 도산에 이르러 일들을 주관하였으며, 번한을 통하여 우사공에게, "나는 북극수정자이니라"하는 말로 시작하여 천부왕인(天符王印), 신침(神針), 황구종(皇矩宗)이라는 치수에 필요한 3가지 보물을 주면서, "천제자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하였고, 이에 우가 "천제자의 명을 게으름없이 행하겠다"  하면서 태자부루로부터 금간옥첩을 받으니 치수의 요결이다라고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를 낭야성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태자가 도산에 도착하여 주장의 자격으로 회의를 주관하실때 번한왕을 통해 우사공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북극수의 정기를 타고한 아들이니라. 너희 임금이 나에게 수토를 다스려 백성을 구해주기를 청원하니 삼신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

천자국의 문자로 된 천부와 왕인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차면 험한 곳을 다녀도 위험하지 않고 흉한 것을 만나도 피해가 없으리라. 또 신침 하나가 있으니 능히 물이 깊고 얕음을 측정할 수 있으며 그 쓰임이 무궁하니라. 또 황구종이란 보물은 모든 험한 물을 진압하여 오래도록 잔잔하게 할 것이니라. 이 세가지 보물을 너에게 주노니 천제자(단군왕검)의 거룩하신 말씀을 어기지 말아야 가히 큰 공덕을 이룰 수 있으리라"

우사공이 삼육구배하고 나아가 아뢰었다.
"삼가 천제가의 어명을 잘 받들어 행할 것이요. 또 저희 우순께서 태평스런 정사를 펴시도록 잘 보필하여 삼신상제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도록 지극한 뜻에 보답하겠사옵니다"

부루태자로 부터 금간옥첩을 받으니 곧 오행치수의 요걸이었다. 태자께서 구려를 도산에 모아놓고 우순에게 명하여 조공바친 사례를 보고하게 하시니 오늘날 이른바 '우공'이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중국 문헌의 왜곡

사공 우가 금간옥첩을 받아간 것과 관련된 기록은 [오월춘추],[역대신선통감],[응제시주],[세종실록],[동국여지승람],[동사강목],[묵자] 등에서 확인된다

중국이 중화주의 사관으로 쓴 [오월춘추]는 부루태자를 '창수사자'라 말하며 은인의 실체를 감추었고 또한 창수사자가 우의 꿈에 나타나 비법을 알려준 것으로 기록하여 우가 순전히 자신의 현몽으로 국난을 해결한 것으로 왜곡하였다.

▶禹乃東巡, 登衡嶽, 血白馬以祭, 不幸所求.... 因夢見赤繡衣男子, 自稱玄夷蒼水使者... 東顧謂禹曰 欲得我山神書者, 齋於黃帝巖嶽之下三月 ... 禹退又齋三月, 庚子登宛委山, 發金簡之書, 案金簡玉字, 得通水之理.   9년 홍수를 다스리던 우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형산에 이르러 백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하여 성공을 빌었다. 그랬더니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스스로 ‘현이의 창수사자’ 라 칭하면서 우에게 ​“신서가 있으니 재계하고 이를 내어 보라” 하므로 우가 그렇게 하여 금간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의 이치를 알았다 (<오월춘추> 월왕무여외전)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현이의 창수사자> 부분을 이렇게 풀었다. 

현이(玄夷)는 당시 조선의 동 ·남 ·서 ·북 ·중 오부를 남 (藍) ·적(未) ·백 (白) ·현 (玄: 黑 ) ·황 (黃 ) 으로 별칭했는데, 북부가 곧 현부(玄部) 이니 지나인이 현부를 가리켜 현이(玄夷) 라고 한 것이요, 창수(蒼水)는 곧 창수(擔水)이고, 주신 (州愼 ) ·숙신(肅愼 ) ·직신(稷愼 ) 혹은 식신(息愼 ) 으로 번역되었으니, 주신은 곧 조선을 가리킨 것이다.

옛 기록의 부루는 오월춘추 (吳越春秋)의 창수사자이니, 이때 지나에 큰 홍수가 있었음은 여러 가지 옛 역사가 다 같이 증명하는 바인데, 단군왕검이 그 수재를 구제해주려고 아들 부루를 창해사자(滄海使者)에 임명하여 도산에 가서 하우를 보고, 삼선오제교 (三神五帝敎) 의 일부분인 오행설 (五行說: 水火金土木)을 전하고 치수의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므로 우(禹)는 왕이 되자 부루의 덕을 생각하여 삼신오제의 교의를 믿고 이를 지나에 전포 ( 傳布 ) 하였으며, 정전과 율도량형도 또한 지나의 창작이 아니라 조선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꿈에 창수사자를 만났다. ’고 하였는가? 신성 (神聖)을 장식하여 사실을 신화화함이니, 이는 상고에 흔히 있는 일이다. 

중원 측의 기록인 <오월춘추>는 부루 태자를 ‘현이의 창수사자玄夷蒼水使者’ 라고 바꾸어서 말할 뿐 나머지는 <단군세기> 내용과  다른 데가 없다. 우가 현이의 창수사자에게 오행통수의 이치를  전해받아서 치수에 성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꿈이라고 했지만 이정도의 변형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유추하는데 있어서는 다행한 일이다. 물론 중국 문헌에는 이보다 더 추상적인 내용으로 바꾸어놓은 기록이 많다.

송미자세가 홍범구주편에는, "우가 치수를 맡으니 하늘(天)이 우에게 홍범구주등을 내리어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라고 적고 있다. 

서경(書經)에는 우(禹)가 치수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주어 이륜이 베풀어졌기 때문이라고 기록했다. 

[書經 第四篇周書 洪範第六] 天乃錫禹洪範九疇 彛倫攸敍 (천내석우홍범구주이륜유서)
하늘(天)은 우에게 홍범구주를 내려 일정한 윤리가 베풀어 졌다.

<서경>‘홍범’ 에서는 “하늘이 우에게 홍범구주를 주셨다(天乃錫禹洪範九疇)” 라고 하여 부루 태자를 이번에는 ‘하늘(天)’로 바꿔 말하고 있다.

 꿈 속 창수사자 이야기나 하늘로 표현한 것이나 모두 상국上國을 숨기려는 기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조선을  ‘하늘’ 같은 나라라고 여긴 것은 좋으나 고조선이나 단군왕검,부루태자라고 명기되어있지 않고 숨긴 의도는 명확하다고 할 것이다. 

국내 문헌의 왜곡 : 사건의 주객 전도
조선시대의 [응제시주]와 [세종실록지리지]는 ‘우가 도산에서 제후들과 회동할 때 태자 부루를 보내 조회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고조선이 오히려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게 기록하였다. 

▶『응제시주應製詩註』 
단군은 비서갑(非西岬) 하백(河伯)의 딸을 맞아 아들을 낳아 부루(夫婁)라 하였다. 그가 곧 동부여의 왕이다. 우(禹)임금이 도산(途山)에서 제후를 모아 맹세를 할 때, 단군은 아들 부루를 보내어 조회하였다.

▶고려 말 안향(安珦)이 지은 시 〈충선왕을 시종하여 연경에 가는 감회〉에도 부루가 도산에서 우 임금에게 옥 폐백을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갑술년(하우 18년) 아들 부루를 하에 보내 조회하게 했다. (이때 우가 제후들과 도산에서 회맹했는데 , 단군이 부루를 보내서 조회하게 했다 ) (홍만종,동국역대총목 단군조선)

▶9년 홍수를 당해서 팽오에게는 높은 산과 큰 강을 정하게 하고 우수에 이르러 백성들이 살 터전을 정했다. 단군은 수천년을 살다가 마쳤고 아들 부루가 섰는데 갑술년에 도산에서 하우씨와 회맹했다. 부루 이후에는 세계와 연보를 잃어서 전하지 않는다. 
(이종휘,수산집 동사본기)

단군왕검이 우(禹)에게 전한 홍범구주 
우는 아버지 곤이 치수에 실패하여 순임금에게 처형당한후 그 뒤를 이어 나라의 치수사업을 맡아보던 사공 신분이었다. 우는 순을 대신하여 도산회의에 참석하여 고조선의 태자 부루에게서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았고 이 비법으로 홍수를 해결하고 인심을 얻어 나중에 하나라를 열게 되었다. 

▶송미자세가 홍범구주편에는, 우가 치수를 맡으니 하늘(天)이 우에게 홍범구주등을 내리어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箕子ㅣ 乃言曰 我聞호니 在昔鯀이 陻洪水하야 汨陳其五行한대 帝乃震怒하샤 不畀洪範九疇하시니 彛倫의 攸斁니라. 鯀則殛死ㅣ어늘 禹乃嗣興하신대 天乃錫禹洪範九疇하시니 彛倫의 攸叙ㅣ니라. 기자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옛적에 곤(하나라 우임금의 아버지)이 홍수를 막으면서 五行을 어지러이 펼치니 帝가 진노하여 곤에게 홍범구주를 주지 않으시니 이륜이 무너졌다.
곤이 귀양가서 죽자 禹가 이어서 일어나시니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구주를 주시어 이륜이 펼쳐지게 되었느니라.

낭야성에 감우소 설치

9년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때 감우소를 낭야성에 설치하여 구려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낭야산(琅邪山) 구글 지도 검색 : 지금도 낭야산,낭야구 등 낭야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번한은 치두남이 세상을뜨자 아들 낭야가 즉위하였다. 이해 경인(BCE 2251)년 3월에 가한성을 개축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가한성은 일명 낭야성이라고 하는데 번한왕 낭야가 쌓아서 낭야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낭야성은 지금의 산동성 제성현 동남에 있다. 원명은 가한성. 번한의 2세 낭야왕이 개축하였다. 일찍이 오늘의 산동,안휘,강소,절강성 일대에 진출하여 살던 동이 조선족을 나누어 다스린 단군조선 분조의 수도였다 (최종 조선상고사 참조)

우임금 “나를 회계산에 묻어다오‘

우임금이 “내가 죽은 뒤에 나를 회계산에 묻어다오.”  吾百世之後에 葬我會稽之山하라.  (『오월춘추』「월왕무여외전越王無余外傳」)

하나라의 창업자는 바로 회계산에서 단군조선의 부루태자로부터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아 치수에 성공한 사공 禹다. 9년 홍수를 해결한 덕에 인심을 얻어 夏나라를 연 우임금은 조선의 은혜를 잊지 못해 죽을 때 회계산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현재 우임금의 왕릉은 회계산에 있다.

우(禹)임금의 대우릉(大禹陵)은 회계산에 있다.  대우릉 풍경구의 진입로 입구에 회계산이란 큰 표지석이 서 있다.  
출처 : blog.daum.net/cheonjiinmunhwa/4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화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