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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 23대 왕 무정의 귀방 공격과 단군조선의 관계

단군조선과 은나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중국의 역대 하나라,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도 초기까지 우리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문화 교류를 하면서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단군세기」 여러 곳에 나와 있다. 그중 은나라 23대 무정 왕의 귀방 공격이 눈에 띈다.

출처 : www.doopedia.co.kr/

은나라 왕 무정, 귀방을 정벌하다 (BCE1291년)

은나라 23대 왕 무정이 군사를 일으켜서 귀방을 물리치고 삭도와 영지 등을 쳐들어왔다가 소태 단군에게 대패하고서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21세 단군 소태) 재위 47년 경인(단기 1043,BCE1291)년에 은나라 왕 무정이 전쟁을 일으켜 이미 귀방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삭도,영지 등의 나라를 침공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대패하여 화친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다. [단군세기]

BCE 1291년 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을 쳤다는 기록이  「단군세기」 에 남아 있는데,  갑골문에 은나라의 귀방 정복 사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국내에서 갑골문의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90년 이후이다. 이유립 선생이 갑골문 소식을 듣고 환단고기에 기록을 넣었을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초기 갑골문 기록에도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와 신빙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갑골문 외에도 「역경(易經)」, 「시경(詩經)」, 「상서(尙書)」 「죽서기년(竹書紀年)」 등 선진(先秦) 문헌은 모두 귀방(鬼方)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귀방鬼方 : 지금의 중국 산서성 북쪽 내 몽골의 음산 산맥 일대에 살던 족속이다 은나라 대는 빈 지역에 살던 주나라 조상인 고공단보가 이들의 침략을 피해 기산 남쪽 위수 지역으로 옮기기도 했다. 

욕살 고등, 귀방을 멸망시키다 (BCE 1289년)

이어서 단군세기는 2년뒤의 역사도 전하고 있다.  2년뒤 욕살 고등이 귀방을 멸망시켰다는 기록이다. 이는 은나라 왕 무정이 정벌한 귀방을 다시 회복했다는 뜻이다. 

BCE 1289년 개사원 욕살 고등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鬼方)을 공격하여 멸망시키자 일군국(一群), 양운국 사신이 조공을 바쳤다. 이때 고등이 대군을 장악하고 서북지방을 경략하니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다. 고등이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우현왕 되기를 주청하였다. 임금께서 꺼리시며 윤허하지 않으시다가 거듭 청하므로 윤허하시고 '두막루'라 불렀다. [단군세기]

2년후에 멸망시켰다는 것을 보면 은나라 무정 왕이 귀방을 정벌할 당시에는 멸망까지는 가지 않은 것이다. 혹은 은나라가 2년전 정벌하여 다스리고 있던 영토를 다시 회복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체는 욕살 '고등'이라고 단군세기는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죽서기년>에는 
무정 32년에 귀방을 정벌했다
무정 34년 왕의 군대가 귀방을 이겼다(克) 
氐羌来宾 저족(氐)과 강족(羌)이 내빈하였다. 

<사기(史記)>의 내용을 보면

상(商)의 무정(武丁)은 귀방(鬼方) 과 강방(羌方)을 정벌하였고 남쪽의 형만(荊蠻)도 공격하였다 하고 귀방(鬼方)과 강방(羌方)은 서북쪽에, 형만(荊蠻)은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주역>을 보면 
九三은 高宗이 伐鬼方하여 三年克之니 小人勿用이니라 

<후한서 서강전> 의 내용은
 무정(武丁)에 이르러 서융(西戎)·귀방(鬼方) 을 쳐서 3년 만에 이겼다. 그래서 『詩經』에는 “저족(氐族)과 강(羌)에 이르기까지 모두 와서 왕으로 섬기네.” 『詩經·商頌』 「殷武」 “昔有成湯, 自彼氐羌, 莫敢不來享, 莫敢不來王”라고 하였다. 

<단군세기>의 기록을 요약하자면 
소태단군 47년 경인년 (BCE 1291)년에 은나라 무정이 귀방을 공격하다.
소태단군 49년 임진년((BCE 1289)년에 욕살 고등이 귀방을 멸망시키다. 
그러자 일군국(一群), 양운국 사신이 조공을 바쳤다.

위 도표를 비교해서 살펴보자

"3년만에 이겼다"는 3년은 <죽서기년>으로 보면 무정 32년 그리고 무정 34년의 두번의 역사기록의 기간을 연속선상으로 본것이고 <단군세기>로 보면 소태단군 47년과 49년의 역사사건을 연속선상으로 본 것이다. 결국 중국 문헌은 3년간의 두번의 귀방공격을 같은 은나라 왕 무정이 벌인 공격으로 보았다. 

그러나 <단군세기>로 보면 다르다. 첫번째 귀방공격은 무정이 쳐들어온 것이었다. 그때 귀방은 무너졌고 무정이 또 다른 지역 삭도,영지를 정벌하려다 단군조선의 공격을 받고 화친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2년후에는 욕살 고등이 귀방을 공격하여 멸망시킨 것이다. 

중국 문헌은 '저족'과 '강족'이 은나라에 머리를 조아렸다는 내용이 뒤따른다. 이 부분은 단군세기에서는 일군국과 양운국 사신이 조공을 바친 것으로 나온다. 

중국사고지도집의 서진 시기 형세도 지도다. 이를 보면 9천여년 전의 12환국 중 몇개 나라의 명칭이 서진시대까지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몇개 중에 소태단군 시절 조공을 바친 것으로 나오는 양운국과 일군국이 지도에 보인다. 이 두 나라의 이름과 흔적이 계속 이어져 내려감을 보여주고 있다. 

저족과 강족은 문헌상 양운국과 일군국과 비교해볼 수 있다. 

氐族 저족
저족(氐族)은 지금의 칭하이 성(靑海) 주변에 거주하였던 민족으로 기원전 2세기경 칭하이 지역에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근처에는 강족(羌族)이 있었다. 파(巴) 지역에 살던 저족을 파저족(巴氐族)이라 부르기도 한다.

羌族 강족 : 양토템 족 羊穜也。羊人也。牧羊人也
상(商)왕조 시기에 이르러 “峚”인은 길들인 양을 우호의 표시로 상(商)왕조에 보냈는데 상나라 사람들은 “峚”이 보낸 양의 생김새를 보고 새로운 한자 “羌”을 만들어냈고, 이로써  “峚”족 사람들을 “강인(羌人)”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군국 一羣國) 羣 : 輩也。从羊君聲。渠云切〖注〗臣鉉等曰:羊性好羣,故从羊。양

앞에서 본 은나라 무정시의 귀방 공격 내용은 은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다. 이렇듯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은 중국 문헌만으로 찾을 수 없는 우리 역사를 찾게 해준다. 중국이 자신들의 패배를 숨기거나 거꾸로 승리로 만들어놓았던 기록들의 실체과 사실을 알게 해준다. 오히려 이런 점이 우리의 역사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도 제대로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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