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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죽음질병과 병의 고통 앞에 황제가 아닌 평범한 나폴레옹이 되었다.

5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군인으로 황제로 그리고 유배인으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가장 낮은 자리까지 추락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이다. 그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었고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였다.

또한 그는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삶의 시작은 하급 귀족이었고 황제로서 삶의 절정을 찍었고 그의 삶의 마지막은 쓸쓸한 유배인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대혼란의 시대에 그의 재능으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유럽에 있는 주요 강대국을 굴복시키고, 황제가 된 인물이다. 

(참고 : 나폴레옹은 샤를마뉴(742년~814년) 이후 프랑스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또한 유럽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신성로마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도 나폴레옹에 의해서 1806년 문을 닫게 된다. 전술, 전략의 천재였으며 군인들의 훈련, 조직, 의복, 포상 제도를 선진화 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근대법의 근간이 되는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었고,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의 끝에 위치한 샤를 드골 광장에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을 세웠다. 

개선문은 대부분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나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문이며 당시 에투알 개선문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개선문으로 프랑스가 거둔 모든 승전보들과 지휘관들의 이름을 새겨놨다.

현재 나폴레옹 관련 그림들은 많이 남아 있지만 오늘은 나폴레옹의 가장 위대한 순간인 '나폴레옹의 대관식(Le Sacre de Napoléon)'을 살펴보겠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당대 최고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렸으며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해서 그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그림의 크기(6.21m x 9.79m)에 압도 당한다.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교황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폴레옹이 교황인 비오 7세에게 대관식의 주재를 의뢰하였고, 교황은 황제와 화해를 위해 대관식의 주재를 승낙하였다. 

대관식 당일 교황이 황제의 관을 나폴레옹에게 씌우려하자, 관을 직접 들어서 스스로 관을 쓰고 교황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로 만들었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자크 루이 다비드가 함께 있었고 그는 이 상황을 잘 대처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을 그리게 된다.

나폴레옹은 교황 비우7세가 관을 씌워주려는 그때 관을 받고 돌아서고 스스로 머리에 월계관을 쓴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였던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 주며 나폴레옹 자신의 대관식이 끝난 후 황후인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그림을 그렸다. 

①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② 조세핀 드 보아르네 ③ 마리아 레테치아 라몰리노(나폴레옹 어머니) ④ 루이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동생) ⑤ 조제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형) ⑥ 나폴레옹 샤를 보나파르트 (루이스 보나파르트의 아이) ⑦ 왼쪽부터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사 보나파르트, 폴린 보나파르트, 캐롤라인 보나파르트 ⑧ 샤를 프랑수아 레브런 (제3통령) ⑨ 장 자크 캉바세레스(나폴레옹 측근으로 제2통령) ⑩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나폴레옹의 참모총장) ⑪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나폴레옹의 외무장관) ⑫ 조아킴 뮈라(나폴레옹 친척이며, 최측근 군인 ⑬ 교황 비오 7세 ⑭ 자크 루이 다비드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이러한 상황은 이미 상당수의 유럽을 정복했고 전 유럽을 정복, 지배하고 싶어한 나폴레옹의 거만함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파리의 화려함과 나폴레옹의 복장에서 로마의 장엄함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황제의 관이 아닌 월계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를 로마 황제와 동일하게 생각 했다는 의미이다. 

이런 나폴레옹에게도 큰 고민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는 만성 질병이다. 만성적인 위 장애와 배뇨 장애가 있었으며, 신경성 피부염이 있었다. 

나폴레옹의 군의관인 알렉산드르 우르방 이반은 "황제는 매우 신경질적이었고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그럴 때마다 위와 방광의 경련을 일으켰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폴레옹은 배에 통증이 생기면, 상의의 단추를 풀고 손을 넣어 통증이 있는 부위를 손으로 만졌다. 

나폴레옹의 이러한 모습은 현재에도 '나폴레옹의 초상'이라는 작품으로 남아 있고 지금은 이 모습이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포즈로 되어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배에 통증이 생겼을 때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포즈였으며 유럽을 손바닥 안에 넣었던 나폴레옹도 질병 앞에서는 어떠한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 원정 때는 편두통과 발열, 치질로 고생을 했으며 방광에는 여러번에 걸쳐 염증이 생겼고 간질 증상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치사율이 높은 질병보다 다소 가벼운 질병을 갖고 있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된 사인으로는 그를 오랫동안 괴롭힌 만성적인 위 장애가 발전한 위암 또는 위계양이라는 의견이 있다.

황제의 지위와 권력, 스스로 관을 쓸 정도의 거만함도 질병과 병의 고통 앞에서는 나폴레옹을 순종하도록 만들었으며 황제 나폴레옹을 평범한 나폴레옹으로 만들었다.

1821년 그의 나이 51세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나게 된다. 

 

현오 기자  yanogu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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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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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서 2020-09-06 21:37:07

    옷이 너무 쫄려서 숨쉬기 힘들고 불편해보여서 단추좀 풀어주고 싶은 맘이드네요 -   삭제

    • 원시반본 2020-09-06 20:51:55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삭제

      • 2020-09-06 20:19:00

        권력욕심 안 냈음 영웅으로 남았을까요?
        참...허무하네요 ㅠㅠ   삭제

        • 최해주 2020-09-06 08:16:55

          그 누구도 걷지 못한 위대한행보를 보였지만 그 역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네요
          대관식 그림을 자세히 풀어주셔서 넘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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