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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전후 이유립의 삼육회(三育會) 조직 활동은 사실

1911년 다섯 권의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편찬한 『환단고기』의 편저자 운초 계연수 선생의 제자로 『환단고기』를 전수받아 이를 대중화시킨 한암당 이유립 선생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조직 활동사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1924년 4월 삭주읍 보통학교 3년에 입학, 그해 2학기에 4학년으로 진급, 1927년 3월에 6년제 졸업했다. 그런데 재학중에 천마산대의 소년별동대격으로 표면 삼육회(三育會)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김병선(金炳善)과 함께 매일 오후 방과 후 두 시간씩 역사와 상식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는 한편, 학생들의 윤번토론을 실시하며 매일요일과 휴학기간의 근로작업 및 학교림(學敎林)의 정기 식수(植樹), 또는 체육경기대회 개최, 『디딤돌』 등사발행이 있었다. (이때 고문 백윤한(白潤漢) 훈도)  (이유립평전(상생출판) 144쪽)

이유립 평전 백년의 여정 144쪽

이때의 이유립의 삼육회(三育會)  활동에 대해서는 김병선(金炳善)과 백윤한(白潤漢) 훈도에 대해서 알아보면 검증이 될 것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백윤한은 양시공립보통학교(1915,16,17,18) 신의주공립보통학교(1919) 청성공립보통학교(1920) 남시공립보통학교(1921,22) 용암표공립보통학교(1923) 의주공립보통학교(1924)를 거쳐서 삭주공립보통학교(1925) 삭주보통학교(1926,27)에서 부훈도, 훈도(訓導) 관직을 맡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검색화면

이유립은 1924년 삭주보통학교에 편입하여 1927년에 6년제를 졸업하게 된다. 그 사이에 삼육회의 고문이었다는 백윤한 훈도는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삭주보통학교의 훈도(訓導) 관직을 맡았으므로 이유립 선생의 주장에 부합하게 된다.

또한 삼육회를 함께 했던 김병선의 경우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1925년 삭주군 김병선으로 검색되어 나온다. 조선총독부 관보 제3808호에 나오는 허가증 무효 명단에 김병선이 있다. 시간대와 장소가 같고 이름의 한자가 정확히 같으므로 삼육회를 함께한 김병선이 확실해보인다. 

이상과 같이 18세에서 21세까지의 이유립은 삭주읍 보통학교를 다니면서 삼육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매일 역사와 상식 과목을 강의하고 토론 , 근로작업, 체육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 제3808호발행일 大正14年 4月 28日기사제목 許可證無效 작성자 朔州郡 작성일 1925년 04월 22일 삭주군 김병선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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