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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의 돈신록(敦信錄)

보천교의 교비 납부 장부 - 돈신록敦信錄

최근 학계에서는 “일제시대 조선의 인구 18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보천교를 신앙했다.”고 말한다. 

당시 국내 민족종교는 항일독립자금을 전달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태을교, 훔치교 등으로 불려졌던 보천교는 상해임시정부에 가장 많은 항일독립자금을 지원하고 있었으며 이를 알게 된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특명을 내려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민족종교말살정책’을 통해 보천교에 대한 억압과 감시를 더욱 강화하게 됩니다.

당시 보천교인들의 숫자는 미국 국무성의 공식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랜스포드 스티븐스 밀러 총영사는 이 보고서에서 ‘보천교는 그 신도수가 600만 명’이라고 하였다.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구국단체들에게 있어 독립자금의 지원은 당시 열악했던 재정 상황에서 ‘항일독립운동의 지속’이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구 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45년 11월 23일 김포비행장에 도착한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정읍 보천교에 많은 빚을 졌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승만 박사 역시 1946년 6월 3일에 있었던 ‘이승만 정읍 선언’을 통해서 보천교의 본소가 있었던 정읍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있다.

이렇게 항일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된 재원의 대부분이 보천교 신도들이 교비로 낸 돈신록敦信錄에 근거한다면 관련 학계에서 이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인 연구가 새삼 필요해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

돈신록 국립민속박물관

명칭    돈신록 (보천교 관련자료)
크기    세로 35cm, 가로 47.5cm
소장품번호    민속 81787

보천교의 교비 납부장부 - 돈신록;敦信錄1책 (미사용) (보천교중앙총정원경리사장, 포교54년 8월 ; 1962년, 노루지, 겹장본, 16장, 21*18.5cm, 상급)(미사용)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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