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K-culture 역사
가야 건국 1세기를 부정하는 학계와 언론 카르텔

아래 글은 이덕일 역사TV 유튜브 채널의 <가야건국 1세기를 부정하는 학계와 언론카르텔> 영상 전문이다. 

이덕일 역사 TV_이덕일의 한국통사 https://youtu.be/uy2JupoIBVw 

『삼국유사』의 「탑상조」에서 파사석탑에 대해 쓰고 있는데, ‘아유타국에 허황후 허황옥이 가져왔다’라고 하면서 연대를 정확하게 48년에 가져왔다고 하고 아름답고도 무른 재질로 봐서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일연一然 스님이 이미 『삼국유사』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가야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가야라고 하면 보통 사료가 많지 않죠. 그래서 흔히 수수께끼 왕국 또는 철의 왕국 그런 별명으로 부릅니다. 왜 사료가 많지 않냐면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 신라 고구려 백제, 이 세 나라만 서술을 했기 때문에 체계적인 사료가 없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삼국사기』에 전혀 나오지 않는 건 아니고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와 가야가 싸웠다라는 형태, 전쟁을 했다라든지 하는 그런 형태로 단편적인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계적인 기록으로는 이제 『삼국유사』 의 「가락국기」가 있습니다.

가야의 건국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2개를 들 수가 있는데 첫째는 고려의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가락국기」가 있고 또 하나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의 김유신의 계통, 가게에 대해서 써놨는데 그 두 가지를 둘 수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김수로 왕이 서기 42년에 가야를 건국했다 이렇게 써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것이 가야 건국을 알려주는 가장 이른 기록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김부식이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도 정확하게 가야는 수로왕이 서기 42년에 건국했다 라고 『삼국사기』에 쓰여져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보다 약 130~40년 뒤에 나온 역사서죠.

『삼국유사』보다 130~40년 전에 나온 『삼국사기』도 똑같이 가야를 수로왕이 서기 42년에 건국했다 라고 이제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가야의 건국을 서기 42년으로 말하는 문헌 기록들이 김부식 때나 일연 때나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야는 문헌 기록으로 서기 42년에 정확하게 건국했다고 연도를 표기하고 있는 것이죠. 가야사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남한의 강단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엄청나게 큰 괴리가 있습니다. 

먼저 건국 시기의 문제인데요. 일반 국민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대로 가야는 김수로 왕이 서기 42년을 건국했다 이렇게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대 국사 교과서나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가야는 3세기에 건국했다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써놓고 있습니다.

사료에 나와 있는 것과 다른 이야기로 할 때 그 배경을 찾아보면 거의 100% 십중팔구 조선총독부의 역사 왜곡에 가 닿게 돼 있습니다.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인데 가야 건국이 서기 42년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 아무도 의심한 사람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면 김수로 왕이 신라 김유신의 12세 선조라고 몇 세까지 정확하게 기록을 했기 때문에 그걸 아무리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서기 48년에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허황후, 허황옥이라고 이름까지 다 정확하게 나와 있죠. 허황옥이 파사석탑을 가지고 왔는데, 그 파사 석탑이 김해의 수로왕릉 앞에 전시되어 있었죠. 그런데 일연이 『삼국유사』 「탑상조」에서 파사석탑에 대해서 쓰고 있는데, 아유타국의 허황옥이 가져왔다라고 하면서 연도를 정확하게 48년이라 쓰고 아름답고도 무른 재질로 봐서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일연이 이미 『삼국유사』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이 파사석탑의 재질를 가지고 분석해본 결과 우리나라산이 아니다 라고 정확하게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강단사학하고 일본 극우파들은 3세기에 가야가 건국되었다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거죠.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특별전시중 파사석탑 전시공간을 신화라고 하고 그 다음 공간부터 역사라고 바닥에 써놓았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이런 엉뚱한 주장을 하느냐. 바로 임나일본부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겁니다. 임나일본부란 서기 369년부터 562년까지의 일본에 있던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그곳에 임나일본부라는 이제 식민통치기관을 설치했다라고 주장하는 그런 학설인데요. 바로 이 학설이 정한론의 실체죠. 그래서 메이지 시대 때 한국을 점령하는 논리라는 정한론을 펼칠 때 바로 이 주장을 가지고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369년 조를 가지고 주장을 했는데요. 이 주장은 다른 말로 가야 임나설이라고도 합니다. 가야가 곧 임나라는 주장이죠.

가야 땅을 고대 야마토왜가 지배하고 식민지로 삼았다라고 하는 주장인데, 이 주장에서 또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삼국사기』 불신론이에요. 결국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둘 다 불신하는 건데, 왜 이런 것들이 계속 연속적으로 나오냐면 서기 369년에 야마도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식민지를 설치했다라고 하는 주장은 성립 자체가 될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가짜로 몰기 시작하는데, 특히 조선총독부에서 주도적으로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데 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1932], 쓰다소키치[津田左右吉, 1873~1961], 쓰에마스야스카즈[末松保和, 1904~1992] 등 총독부에서 소속되어 있었거나 식민사학에 경도됐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주장하는 핵심 이유가 뭐냐 하면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면 서기 369년에 야마르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를 설치했다라고 하는 것이 입론 자체가 설 수 없기 때문에 가짜로 몬 것이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조선총독부 역사학이 계속 주류, 정설의 지위를 차지한 결과 국사 교과서 라든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야는 마치 3세기에 건국한 것처럼 그렇게 서술해놓고 있는 겁니다.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특별전시에서도 3세기에 가야가 시작되었다고 설명문에 적혀 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 본성’이라는 가야 전시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 가야 전시를 할 때 가야 유적·유물들이 여러 군데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박물관들에 있던 걸 갖다가 다 한군데 모아가지고 전시를 했습니다.

전시를 하면 대부분의 언론 문화부 쪽에서는 호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야 전시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에서 처음에 엄청 공격을 했어요. 공격한 핵심들을 보면 조선일보 논조와 한겨레 논조가 똑같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특별전시에 전시된 파사석탑과 토제방울, 방울은 항의를 받은 후 안쪽 구석으로 전시 위치가 바뀌었고 설명글도 수정되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서 동시에 비판하는 공통 논지가 뭐냐면 파사 석탑을 마치 역사인 것처럼 전시했다는 겁니다. 그 파사 석탑은 역사예요. 그 유물이  그대로 있고 그다음에 『삼국유사』에 기록이 명확하게 나와 있는 역사 사실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거북 무늬가 새겨진 물방울 형태로 생긴 토기가 나왔는데, 「구지가」 하고 『삼국유사』에 보면 수로왕이 내려올 때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아니 내놓으면 구워 먹으리’ 하는 「구지가」가 있는데 그 「구지가」를 연상시켰다라고 엄청 비판을 하는 겁니다.

일반 국민들이 볼 때는 파사석탑을 전시하고 거북무늬의 토기를 전시한 게 왜 비판에 대상이 되는지 잘 이해가 안 가실 거예요. 왜 그걸 갖다가 비판을 하냐면 그것을 인정하면 가야가 서기 42년에 건국했고 그 다음에 허황후가 서기 48년에 왔다는 걸 인정하게 되니까 자기 자신들은 일본 극우파들하고 남한 강단사학자들, 이들을 보호하는 언론 카르텔들은 가야가 3세기에 건국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립박물관에서 그 부분을 갖다가 전기를 하니까 가야가 1세기 중엽에 건국됐을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을 전시회하니까 아주 강하게 비판한 것이죠. 그런데 그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들을 들어가 보면, 가야 전시가 일본 극우파 논리에 따라 대부분 설명이 되어 있어요. 

물론 유물은 아니죠. 유물은 가야에 찬란했던 그런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데, 그 유물을 놓고 설명하는 건 일본 극우파의 정치선전政治宣傳. 핵심은 가야를 고대 야마토왜가 점령하고 식민지를 설치했다라고 하는 “임나일본부설”란 말만 안 써놨지 『일본서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서술해놓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바로 우리 국민들이 가야사를 인식하는데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핵심은 서기 42년에 건국해서 결국은 서기 562년까지 경상도 지역에 존재했던 그런 나라로 보면 큰 대강인데, 이 사람들은 건국연대부터 3세기라고 자기네 마음대로 끌어내리는 거예요. 가야가 서기 1세기 중엽에 있었다라고 하는 이야기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고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도 나오고 또 『삼국사기』에 보면 서기 77년에 신라와 가야가 전쟁한 기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또 신라 토기와는 다른 가야 토기가 서기 1세기 때 이미 낙동강 유역에서 다 나타나요. 그러니까 문헌 사료를 보나 고고학 유적·유물로 보나 가야가 1세기 때 존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게 되는데, 유독 이러한 역사학의 상식이 남한에만 오면 통용이 안 되는 거죠. 

남한에만 오면 3세기에 건국했다. 이건 논리가 뭐냐? 그럴 리가 없다는 거예요. 가야가 어떻게 1세기에 있을 수 있냐. 그러니까 이건 학문이 아닙니다. 그냥 일본 극우파가 이야기하는 정치 선전을 그대로 반복하는 건데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학자들은 그렇다고 치고 이걸 갖다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3세기에 건국했다고 주장하면 그 근거가 뭐고 반대하는 쪽에 논리는 무엇인지 보도해야 할 언론까지 한통속이 되어서 마치 가야가 서기 1세기에 건국했다고 하면 대한민국이 대단히 큰일 나는 것처럼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바로 우리가 가야사를 볼 때 가야는 임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남한 학계의 정설이예요.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야를 임나라고 주장하려면 사료 근거들을 대야 되는데, 가야가 임나라고 주장하는 것만 하면 서기 369년에서 562년까지 가야를 일본 고대 야마토왜가 지배했다라고 하는 그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직접 그렇게 주장하기 힘드니까 말을 조금 바꿔가지고 가야에 고대 야마토 왜의 외교 기관이 있었다는 둥 교역 기관이 있었다는 둥. 온갖 말장난을 해 가면서 가야를 왜인들이 사실상 지배한 것으로 둔갑시켜 놓고 있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바라보니까 앞뒤가 안 맞아요.
 
예를 들어 369년에 고대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 7국을 설치했다 라고 하면 그때 가야 왕통이 바뀌어야 됩니다. 그런데 『삼국유사』를 보면 그 당시 가야의 이시품왕이 369년 이후에도 계속 왕위에 있다가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죠. 

그러니까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시각으로 보면 고대 야마토 왜가 가야를 점령한 사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만약에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대로 200여 년 동안 일본 고대 야마토 왜가 가야를 점령했으면 『삼국사기』의 「신라본기」나 「백제본기」에 그 사실이 안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200여 년 동안 그 지역을 지배했으면 뭔가 충돌이 벌어지고 싸워야 되는데 그런 사실이 전혀 안 나타나고 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냥 『삼국사기』에 딱 한 번 나와요. 강수强首가 ‘신은 본래 임나 사람입니다’라고 하는데 이때 말하는 임나가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조선의 안정복安鼎福(1712~1791) 같은 실학자들은 강수가 충주로 비정하는 중원경 쪽 사람이기 때문에 옛날에 임나는 충주에 있었다라고 주장을 했었죠. 

그런데 그런 안정복의 주장은 또 전혀 안 받아들이죠. 왜냐하면 이 사람들의 핵심은 바로 가야가 임나라는 데 핵심이 있기 때문에 줄기차게 그 주장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저희 부모님들이 평안도에서 내려 오셨는데, 그러면 신은 본래 평안도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 그게 자고나란 곳은 다 여기인데 우리 조상이 평안도에 살았다라는 이야기인지, 부모님은 평안도지만 제가 충청도에서 자랐는데 그렇게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충청도가 평안도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것하고 마찬가지인 거죠. 

그러니까 뭔가 해석을 하려면 정확하게 딱 한 구절 200여 년 동안 지배했다 그러면 『삼국사기』의 「신라본기」나 「백제본기」에 여러 기사가 나와야 하는데 한 번도 안 나오는 것은 도외시하고 딱 「강수열전」에 신은 임나 사람이라는 이야기 하나만 끄집어내서 주장을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 주장으로 이 사람들이 기를 써서 다 찾아낸 사료들이 두 세가지 있는데, 그 사료의 의미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임나는 가야다 이렇게 전제를 해 놓고 우기고 있는 것인데요.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이 한반도 북쪽은 한사군이 있었고 한반도 남쪽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북쪽에 한사군이 있었다는 논리를 비판하는 동안에 임나일본부가 다시 다 들어왔어요.

이 사람들이 총론으로는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면서 각론에 들어가면 전부 다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그런 형태로 임나일본부설을를 대폭 끌어들여서 가야가 임나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들이 지금 한국 학계의 널리에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국의 학자들도 임나를 가야라고 주장한다는 걸로 임나일본부를 되살리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찬화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