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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백제가 일본의 왕족 가르친 교육 시스템, 고려대 최재석 교수 밝혀

[한국통사] 백제가 일본의 왕족과 귀족을 가르친 교육 시스템 고려대 최재석 교수 밝혀

https://youtu.be/VvRJJB7x88s

오늘은 백제가 야마토왜를 후국으로 경영한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문정창 선생의 일생 및 식민사학자들의 비판
 

문정창文定昌(1899~1980) 선생이 『백제사』를 쓰셨는데 이분은 일제 강점기 때 군수를 하셨어요. 해방되고 난 다음에 ‘아 내가 알고 보니까 인생을 잘못 살았다.’라고 생각해서 나머지 전 인생 전 재산을 바쳐서 한국사연구에 몰두해서 일본의 식민사학을 아주 초기 시작부터 다 논파하는 많은 글을 쓰시고 쓸쓸하게 돌아가신 분이죠. 그런데 식민사학자들은 일제시대에 군수를 했다고 이분을 엄청 비판해요. 군수를 했지만 사과를 하고 그 다음에 자기 나머지 인생을 속죄의 인생으로 한국 고대사 역사를 바로잡는 인생을 살았죠. 

이에 반해 이병도李丙燾(1896~1989), 신석호申奭鎬(1904~1981)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에 근무했고 해방 이후에는 한국의 주요 대학과 국사편찬위원회를 다 장악해서 총독부 역사관을 계속 지속적으로 전파한, 어떻게 보면 이완용보다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는 친일파인데 친일파는 칭찬하면서 과거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평생을 한국 역사 연구에 바친 분을 엄청 비판하죠. 비판하는 이유는 뭐냐.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니까 욕을 하는 건데요. 

문정창 선생의 『백제사』
문정창 선생의 『백제사』를 보면 여기에도 똑같이 일본 열도를 백제의 식민지로 묘사해놨어요. 이분이 활동했을 당시에 북한의 김석형金錫亨(1915~1996)의 글을 봤을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는 다른 부분이 꽤 있지만 ‘고대 야마토왜는 백제의 식민지였다.’ 또는 ‘제후국이었다.’ 라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사료를 공부하다 보니까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겁니다.

식민사학자들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불신론
그런데 일본 극우파 역사학자들하고 남한의 강단 사학자들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불신론이란 게 있어요. 핵심은 전부 다 임나일본부설입니다. 한국 고대사 인식을 가로막는 제대로 된 인식을 가로막는 모든 뿌리에는 임나일본부설이 있어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시각으로 보면 임나일본부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가짜다. 이렇게 주장한 걸 지금의 남한의 강단 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삼국유사』 불신론을 주장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논문 쓸 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앞부분을 인용해서 쓰면 그 자체 논문이 통과 안되는 게 남한 강단사학계 현실이죠. 

백제사를 누락함으로서 왜곡된 김부식의 『삼국사기』
그런데 『삼국사기』는 거짓말은 안 썼는데 김부식이 백제사는 안 쓴 게 많아요. 그래서 사실은 김부식이 특히 백제사 같은 경우는 안쓰는 걸로 사실을 왜곡했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거죠. 단재 신채호申采浩(1880~1936) 선생도 지적하셨던 부분인데요. 한 가지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백제의 12대 임금이 계왕契王(?~346)입니다. 계왕에 대한 기록은 보면 즉위했다는 기사와 그 다음 3년에 사망했다는 기사 딱 두 개에요. 19대 구이신왕久尒辛王(?~427)도 즉위했다는 기사와 8년에 사망했다는 기사 2개에요. 그럼 3년(계왕), 8년(구이신왕) 동안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즉위했다가 8년 후에 떠났다고 역사서가 그렇게 돼 있었겠느냐 하는 이야기죠. 물론 김부식은 신라의 사관들이 정리한 삼국사를 보고 썼기 때문에 이게 김부식이 삭제한 것인지 신라의 사관들이 삭제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백제사가 많이 삭제된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 극우파의 시각으로 탄생한 『역주 일본서기』
그런데 그 많은 사실을 삭제하면서도 일부를 남겨놨기 때문에 일부 기사에 대해서 신빙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데 일본 극우파들하고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삼국사기 불신론이라고 해서 그것마저도 가짜로 몰고 있는 형편입니다. 남한 강단사학자들의 카르텔이 어느 정도냐면 예를 들어 일본서기 번역본기가 있어요. 『역주 일본서기』라고 이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번역한 건데요. (5:36) 이 『역주 일본서기』는 완전 일본 극우파 시각으로 3권짜리로 번역을 했습니다.

일 고대관계사의 중심인물 최재석 교수
그런데 고대 백제와 야마토왜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기신 분은 고려대 명예 교수셨던 최재석(1926~2016) 교수님이죠.

최재석 교수님의 책(『일본서기』의 사실기사와 왜곡기사)을 보면 이분은 일본서기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 사람입니다. 이런 식의 학술 저서를 30권 이상 내셨고 그 다음에 학술 논문을 300편 이상 쓰셨습니다. 한일 고대관계사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소위 한일 고대 관계사 연구하는 지금 남한 내의 모든 학자를 다 모은 것보다 이분이 10배 더 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에요.

최재석 교수의 논리를 거부하는 강단사학자들
그러면 『역주 일본서기1』을 냈을 때 당연히 최재석 교수의 책이나 논문이 인용이 돼야죠. 그런데 이름도 없어요. 전부 다 일본인 것만 다 인용해놓고 우리 입장에서 사료를 가지고 연구한 최재석 교수님 책 자체는 인용자체를 안했습니다. 최재석 교수님이 필생을 들여서 300편의 한일 관계 학술 저서와 300편 이상의 학술논문을 썼으면 최소한 인용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러나 최재석 교수를 투명인간 취급했죠. 그랬더니 최재석 교수님이 이 책에다가 이병도씨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에 대해서 실명 비판을 했어요. ‘난 이렇게 보는데 당신은 왜 일본식으로 보느냐. 답하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하고 현재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는 노태돈盧泰敦(1949~) 교수에게 기자가 물어봤습니다. ‘최재석 교수가 이렇게 하는데 답변 안 하시겠습니까?’ 하니까 ‘그분은 학계 원로라 자기가 답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라고 하니까 최재석 교수님이 ‘학계 원로 대접하지 말고 답변하시라.’고 그래도 끝내 안했죠. 답변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최재석 교수님이 만든 논리가 워낙 탄탄한 그런 논리죠.

『일본서기』의 문제점
최재석 교수님이 쓴 책이 여러 개가 있는데 백제의 대화왜와 백제의 야마토왜와 일본화 과정 책도 있어요. 백제가 야마토왜를 후국으로 지배했다라고 하는 이야긴데요. 일본서기는 백제에 관한 이야기가 무수히 많아요. 『일본서기』에는 백제삼서라고 불리는 백제 관련 책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죠. 그러나 『일본서기』의 문제는 황제국이었던 백제를 제후국으로 격하시키고 제후국이었던 야마토왜를 황제국으로 바꿔서 서술했습니다. 어떤 내용들이 있냐면 『일본서기』 무열왕이라고 있는데요. 그 때 보면 ‘백제의 의다랑意多郞이 죽어서 고전 언덕에 장사지냈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의다랑이란 인물은 기록을 보면 백제의 왕자도 아니고 왕족도 아닌 겁니다. 백제 사람이 세상 떠난 걸 일본서기에 적을 정도면 백제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거죠. 

김현구 교수에 의해 왜곡된 백제사
이런 기록들 또 『일본서기』에 보면 백제의 지진원이라는 백제계 여성이 나오죠. 그런데 김현구(1944~) 고려대 명예교수는 백제에서 처음에 지진원 적계여랑 여성들을 갖다 백제의 왕녀들을 야마토왜에 인질로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라고 써놨어요. 그런데 『일본서기』 웅략조에 보면 지진원이 다른 남성을 만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웅략이 지진원을 불태워 죽였다고 나와요. 옛날에 인질이라는 것은 사기를 번역하다 보면 질(質)자를 질이라고 읽을 때가 있고 지라고 읽을 때가 있어요.(서로 대등한 관계의 인질이냐 아니면 대등하지 않은 관계의 인질이냐에 따라서 발음을 다르게 읽음.)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런데 김현구씨는 지진원을 불태워 죽였더니 백제에서 실례했다고 하고 그다음에는 남자 왕족들을 인질로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 이렇게 써놨어요. 김현구씨가 의다랑, 마나군馬那君, 사군 등의 왕자 곤지昆支(?~477)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왕족들을 야마토왜에 인질로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고 자기 책에 그렇게 써놨어요. 그런데 의다랑이고 마나군, 사군이고 왕족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김현구씨 머릿속에는 백제라는 나라는 야마토왜에 왕녀와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하는 신하 국가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사료 조작까지 하는 겁니다. 심지어 『일본서기』까지도 왜곡해가지고 ‘백제에서는 왕자 곤지라든지 의다랑, 마나군, 사군 등을 인질로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 ‘지진원, 적계랑 이런 여성들을 왕녀로 야마토왜에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했다.’ 이렇게 써놓은 거에요. 그리고 지진원과 적계여랑은 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둘로 써놨어요. 백제에서 여러 왕녀를 갖다가 인질로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한 걸로 조작해야 되니까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이름 써놓은 거죠. 『일본서기』에 ‘지진원은 적계여랑이다.’라고 나오는데 그걸 무시하고 ‘누가 일본서기 하나하나 다 따지겠냐.’라는 심보로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나눠놓고 지진원에 대해서는 『일본서기』에 채녀(궁녀)다. 궁녀라고 나온 것 갖다가 백제의 공주인 것처럼 조작해가지고 백제를 야마토왜의 제후국, 제후국도 보통 제후국이 아니라 왕자와 공주들을 보내서 천황을 섬기게 하는 제후국이고 ‘왕녀를 야마토왜의 웅략이 불태워죽였더니 백제는 항의 한 마디도 못하고 그 다음에 실례했습니다.’라고 해서 ‘남자 왕족들을 보내 천황을 섬기게 했다.’라고 쓰고 있는 그런 형편인 겁니다.

최재석 교수의 시각으로 바라본 백제사 1
-  제후국인 야마토왜에 파견한 오경박사와 장군
그런데 최재석 교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백제와 야마토왜가 보이는 겁니다. 최재석 교수님이 『일본서기의 사실기사와 왜곡기사』를 다 정리해놓으셨는데 이분은 뭐는 사실이고 뭐는 왜곡이고 어떤 거는 주어를 이렇게 봐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예를 들어서 『일본서기』에 일왕 중에 계체[繼體게이타이, 450?~531]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때 백제에서 오경박사 단양이를 파견했다는 그런 구절이 있어요. 그런데 그 3년 후에는 오경박사 단양이를 한고안무로 교체했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최재석 교수님은 ‘백제에서 제후국인 야마토왜에 오경박사를 파견해서 야마토왜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오경을 가르치던 시스템이 있었구나.’ 이렇게 해석을 했는데 그게 맞는 거죠. 단양이를 파견할 때 『일본서기』에 ‘장군 저미문귀姐彌文貴하고 주리즉이洲利卽爾를 파견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마치 제후국이 상국(황제국)에다가 바친 것처럼 써놨는데 장군을 제후국에서 상국에다가 왜 바치겠습니까? 이것은 최재석 교수님 시각대로 백제에서 제후국인 야마토왜에 군사를 관리하기 위한 장군들을 파견했다라고 하는 거죠.

최재석 교수의 시각으로 바라본 백제사 2
-  제후국인 야마토왜를 관리하기 위한 사신 파견

『일본서기』에는 일왕 흠명[欽明긴메이, 509~571)이라고 있어요. 백제의 성왕聖王(?~554) 때 일본의 왕으로 나오는데 흠명천왕이 『일본서기』에는 ‘백제에게 의박사(의학), 역박사(역학), 력박사(달력) 등을 순서에 의해서 교체하라.’는 말이 나와요. 그리고 ‘색인(전문기술자)들도 교대할 때가 되었으니까 사신 편에 교대하라.’ 이렇게 나오고 ‘백제에다가 점치는 복서, 그다음에 력서, 그리고 각종 약물을 보내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을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백제의 성왕이 자기네 제후국에다가 의박사, 역박사, 력박사를 다 보내주고 그다음에 전문 기술자들도 보내주는데 최재석 교수님 시각에서는 이게 파견을 할 때 기한이 있다는 겁니다. 기한에 따라서 자기 제후국을 관리하러 보내는데 예를 들어 누구는 3년, 누구는 5년 동안 근무하고 다시 복귀하는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는 거죠. 야마토왜가 황제국이고 백제가 제후국이면 무슨 황제국이 없는 게 그렇게 많아요. 의박사도 없고 역박사도 없고 점치는 복서도 없고 력서도 없고 의학, 약물도 없어가지고 전부다 제후국에서 갖다 바치라하는 게 말이 되냐 하는 이야기죠.

백제궁, 무령왕릉 지석에서 찾은 고대 야마토왜가 백제의 제후국인 증거

그래서 나중에 『일본서기』의 서명조를 보면 야마토왜에서 궁을 지었습니다. 궁의 이름이 백제궁이에요. 그 궁 옆에 흐르는 강이 있어요. 그 강의 이름이 백제천입니다. 왕의 시신을 빈자를 쓰는데 왕이 세상 떠나니까 백제대빈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옆에 절을 새로 지었어요. 그 절의 이름은 백제사. 고대 야마토왜는 그냥 백제의 일부다. 백제의 한 제후국이다라고 보면은 정확한거죠.


그 예들이 1960년에 공주에서 무령왕릉이 발견되지 않습니까? 무령왕릉의 지석을 보면 백제인들은 스스로 무령왕릉 지석에 붕(崩)자라고 써놨습니다. (황제의 죽음을 표시할 때는 붕(崩)자를, 제후의 죽음을 표시할 때는 훙(薨)자를 사용) 김부식이 이걸 『삼국사기』에서는 훙(薨)이라고 제후국의 죽음으로 낮춰서 기술한 겁니다. 김부식은 낮추면 낮췄지 없는 얘기 만든 역사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조작해서 신라사, 백제사, 고구려사를 높였다라고 거꾸로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도 일본도 백제의 담로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무령왕릉의 관이 발견됐는데 일본산 적송으로 짠 관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은 황제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제후국인 야마토왜에서 관의 목재를 갖다가 바친 겁니다. 그래서 중국의 『양서(梁書)』를 보면 ‘백제는 도성이다.’ 임금이 거주하는 도성을 고마(固麻)라고 하고 중국의 군현과 같은 것을 담로(簷魯)라고 하는데 ‘22개 담로가 있어서 왕의 자제나 종족들이 거주하면서 다스린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담로, 백제식의 제후국이라는 표현이 바로 담로인데 그 담로가 ‘중국대륙에도 있고 산둥반도, 양자강유역, 일본도 야마토왜도 백제의 담로 중에 하나였다.’라고 해석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가는 그런 문제입니다. 그래서 백제는 반도백제가 있고 그다음에 대륙백제가 있고 일본열도백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김부식은 여기에 주로 반도백제 위주로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저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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