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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고대 지명(地名)은 고룡이다. 기문이 아니다

남원의 고대 지명은 고룡(古龍)이다. 기문이 아니다. 기문이라는 명칭을 남원에 비정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남원에 대한 역사와 지명이 문헌 기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로 백제 때 ‘고룡군(古龍郡)’이 최초의 이름이다. 신라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신문왕 5년(685)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나눌 때 현재의 남원 땅에 소경(小京)을 설치했다. 그리고 경덕왕 16년(757)에 ‘남원(南原)’이라 고쳤는데, 이 때부터 남원이란 지명을 처음 썼다. 

남원은 문헌상으로 보면, 고룡군(古龍郡) - 대방군(帶方郡) - 남대방군(南帶方郡) - 대방주(帶方州) - 남원소경(南原小京) - 대방군(帶方郡) - 남원군(南原郡) - 남원부(南原府) -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 등의 변천과정을 겪어왔다. 

삼국사기 三國史記

三國史記 권 제36 잡지 제5
남원소경(南原小京)은 본래 백제(百濟)의 고룡군(古龍郡)이었다. 신라(新羅)는 이를 병합하여 신문왕(神文王) 5년(685)에 처음으로 소경(小京)을 설치했다.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남원소경(南原小京)을 설치했다. 지금은 남원부(南原府)이다.

三國史記 권 제37 잡지 제6 
남원(南原) 한편 고룡군(古龍郡)이라고도 이른다.,

고려사 志 卷第十一

南原府本百濟古龍郡, 後漢建安中, 爲帶方郡. 曹魏時, 爲南帶方郡. 新羅幷百濟, 唐高宗, 詔劉仁軌, 檢校帶方州刺史. 神文王四年, 置小京, 景德王十六年, 改南原小京. 太祖二十三年, 改爲府. 忠宣王二年, 復爲帶方郡,...
남원부(南原府)는 본래 백제(百濟)의 고룡군(古龍郡)으로, 후한(後漢) 건안(建安) 연간(196~220)에 대방군(帶方郡)이 되었다. 조위(曹魏) 때는 남대방군(南帶方郡)이 되었다. 신라(新羅)가 백제를 병합하자, 당(唐) 고종(高宗)이 유인궤(劉仁軌)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史)로 삼았다. 신문왕(神文王) 4년(684)에 소경(小京)을 두었으며,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남원소경(南原小京)으로 고쳤다.  태조(太祖) 23년(940)에 부(府)로 고쳤다. 충선왕(忠宣王) 2년(1310)에 다시 대방군이 되었다가, 뒤에 남원군(南原郡)으로 고쳤다. 

세종실록 151권, 지리지 전라도 남원 도호부(南原都護府)

본래 백제의 고룡군(古龍郡)이었는데, 후한(後漢) 건안(建安) 때 대방군(帶方郡)이 되었고, 조위(曹魏) 때에 남대방군(南帶方郡)이 되었다. 신라에서 백제를 병합하고 문무왕(文武王) 2년 계해 【당나라 용삭(龍朔) 3년. 】 에,당(唐)나라 고종(高宗)이 명하여 유인궤(劉仁軌)를 검교 대방주 자사(檢校帶方州刺史)로 삼았고, 신문왕(神文王) 4년 을유 【당나라 측천후(則天后) 수공(垂拱) 원년.】 에 소경(小京)을 두었다가 경덕왕(景德王)이 남원 소경(南原小京)으로 고쳤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용성지(龍城誌)」

本百濟古龍郡 後漢建安中 爲帶方郡 曺魏時爲南帶方郡 後唐高宗 遺蘇定方 滅百濟 認劉仁軌檢校帶方州刺史 末幾新羅文武王 幷基地 神文王 五年 直小京 景德王 改令名 乃爲小京 高麗太祖 二十三年 改爲府 忠宣王 二年 復爲帶方郡 後改爲南原郡 恭愍王 九年 復陞爲府 本朝 太宗 二十三年 例改都護府 世祖朝始置鎭  

‘본래 백제의 고룡군이다. 후한의 건안년 사이에 대방군이라 하였다. 조위시대에는 남대방군이라 하고, 뒤에 당나라 고종이 소정방을 보내 백제를 멸망시키고 유인궤에게 조서을 내려 대방주 자사를 겸임토록 하였다. 신라 문무왕이 그 땅을 병합한지 얼마되지 않아 신문왕 5년 소경을 설치하였으며, 경덕왕은 남원으로 고쳤다.

건치연혁고v01[建置沿革攷v01] 1866년

南原
百濟古龍郡後漢建安中爲帶方郡

해동지도(남원부)에도 고룡(古龍)으로 기록되어있다.

해동지도(남원부) 채색필사본(영조연간) 47cm*30.5cm, 1750년~1751년 사이 제작
- 군명: 대방(帶方), 고룡(古龍), 용성(龍城) 

출처 : https://blog.daum.net/jykimtax/203

남원의 고룡서원지(古龍書院址) 

1579년(선조 12)에 방응현(房應賢) 등 유림의 공의로 노진(盧禛)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기지방(機池坊, 현 금지면)에 고룡서원(古龍書院)을 세워 위패를 모셨습니다.정유재란으로 다른 건물은 소실되고 사우(祠宇)만 보존되어오다가 1600년에 ‘창주(滄洲)’라 사액되어 창주서원으로 개칭,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습니다.

고룡서원지(古龍書院址) 출처 : 솔향 네이버블로그

디지털남원문화 대전 홈페이지에도 고룡으로 나온다.

출처 : 디지털남원문화대전 홈페이지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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