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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문화유산』 [고구려] 칠성문 (七星門)

▷지정번호 :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8호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에 있는 칠성문은 옛날 평양성의 북문으로, 보통문과 함께 평안북도 의주 방면으로 통하는 성문이었다. 칠성문이라는 이름은 ‘북두칠성(北斗七星)’에서 ‘칠성’을 따서 지은 것으로, 북문이라는 뜻이다. 칠성문루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서평양 일대와 보통강구역 일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문루는 규모가 작은 편이나 구조가 간결하면서 밑 부분의 복잡한 구조와 잘 어울려 위엄있게 보인다.

칠성문의 창건 연대는 고구려 장안성의 축조 당시로 추정되며 현재 남아있는 축대는 922년(고려 태조 5년)으로 추정된다. 칠성문의 문루는 1711년 혹은 1712년(조선 숙종 38년)에 개축되었다.

칠성문은 다른 성문들과 다른 일련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성벽과 일직선상에 문을 내지 않고 주위 지형을 이용하여 좌우 성벽이 성문에 의하여 한번 꺾인 듯이 문을 낸 것이다. 그리하여 성문은 성벽과 같은 방향으로 나 있으며 동쪽은 성벽이 북으로 뻗고 서쪽은 둥그렇게 배를 내밀고 돌아간 옹벽을 쌓았다. 그 다음 남으로 성벽이 뻗었는데 돌은 네모낳게 다듬어서 정교하게 쌓았다. 이처럼 칠성문은 무지개형의 성문 통로와 옹벽 그리고 성벽을 쌓은 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곡선미를 느끼게 해준다.

축대는 다듬은 돌로 정연하게 쌓고 거기에 홍예문길을 냈다. 축대 위에는 성가퀴를 쌓았고 문루를 세웠다. 문루는 정면 3칸(7.38cm), 측면 2칸(4.36m)이며 문루의 바깥쪽으로 돌아가면서 세운 흘림기둥은 가운데칸을 넓혀 중심을 강조하였다. 칠성문은 양쪽 성벽을 조금 어긋나게 쌓고 성벽과 직각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운 것이다. 이렇게 성문을 놓는 것은 고구려식 성문의 특색 중 하나이다. 그리고 건물에는 화려한 모루단청을 입혀 품위를 높였다.

1010년 고려에 침입한 거란군들이 칠성문 앞에서 타격을 받은 적이 있으며, 임진왜란시기인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전투 때에 우리나라 군사들과 의병들이 제일 먼저 쳐들어가 왜적들을 격멸하고 승리한 곳이 바로 칠성문이다.

칠성문은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지난 6·25전쟁 시기에 심각한 피해를 받았으나 1955년 8월에 지붕에 기와를 새로 올렸고, 1960년대에는 대보수를 한 뒤, 1962년에는 단청을 하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아름다운 모란봉의 풍치에 어울리는 소나무를 심었다. 이처럼 칠성문은 보존 관리가 잘되고 있다. (정은형)

<참고문헌>
정호섭, 2016, 『남북공동문화유산 현황 자료 조사』 1,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성물질문화유물보존사업소, 1963, 『우리나라 주요유적 1』, 군중문화출판사/ 동북아역사재단, 2013, 『평양지역 고구려도성 유적』, 동북아역사재단

by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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