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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한사랑, 국립김해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의 역사왜곡에 항의 공문 보내

사단법인 대한사랑의 역사왜곡 대응팀은 국립박물관의 역사왜곡 현황을 조사하면서 심각한 역사왜곡을 벌이고 있는 박물관에 수정요청 공문과 항의 시위 등 역사왜곡을 시정할 수 있도록 강력한 대응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사랑 측은 국립 경주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의 역사연대표. 국립김해박물관의 임나 표기 등에 나타난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동조 등에 대해서 심각한 역사왜곡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또한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박물관이 한국의 가야, 신라 건국사를 부정하고 역사정체성을 훼손하고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왜 이러한 일이 자행되는지 사실 확인 공문을 발송하여 국립 김해박물관과 국립 경주박물관 측에 답변을 요청했다.  

만약 역사왜곡에 대한 시정요청에 적절한 대응이 없거나 무반응일 경우 시위 등 강력한 대응을 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경주박물관에 보낸 공문의 내용이다. 

경주는 신라의 천년 고도입니다. 신라는 박, 석, 김씨가 만든 건국사가 있습니다. 이를 온전히 보전하여야 우리 뿌리 역사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지금 경주의 역사 연대표나 설명글을 보면 내물왕 이전의 신라 역사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신라 역사연대표를 보면 내물왕 이전의 400년간의 역사보다 그후 300년의 역사가 5~6배나 더 많은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형적인 역사 연대표가 나올 수 있습니까?  

일제의 침략이론 임나일본부설을 위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그대로 적용되어있기 때문 아닙니까? 

내물왕 이전 신라의 역사를 침묵시킨 최초의 일본인 식민사학자는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1873~1961))입니다. 그는 그의 글에서 
“삼국사기에는 4세기 후반.. 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일본)가 가야를 근거로 신라에 당도했다’라는 명백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는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상대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쓰다 소우키치, 1919)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일본서기에 나온 임나일본부설이 삼국사기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이것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입니다.
신라에 있어서는 신라의 건국사를 부정하고 400년을 넘어서 내물왕부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마니시 류(今西龍)도  ⓵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조작되었다. ⓶ 내물왕이 신라 최초의 왕이다. ⓷ 신라 왕위계승(1-22대)은 조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스에마쓰 야스카즈도  ⓵ 신라의 내물왕(356-401)이 신라 최초의 왕이다. ⓶ 신라 왕위 계승(1-22대)은 조작이다.라고 주장 하였습니다.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역사상의 인물로 인정되는 최초의 왕은 내물왕이고 그 이전의 제왕은 모두 공상(空想)의 인물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일제 관변학자,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왜 아직도 그대로 역사연대표에 적용하고 있습니까? 

이에 왜 이런 역사연대표를 방치하는 것인지 이에 대한 답변을 요청 드립니다. 내물왕 이전의 신라 역사가 실존역사라고 보는지 박물관의 답변을 바랍니다. 

또 하나 아래와 같이 요구합니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정한 17대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있는그대로 기입하여 400년 역사를 즉각 복원하기 바랍니다. 
박, 석, 김의 신라 건국사를 복원하여야 합니다. 박혁거세의 건국, 석탈해의 등장 그리고 김알지 등 나라의 건국과 성장에 기여한 내물왕 이전의 역사와 역사적 사건들을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거하여 기입하여 기형적인 역사연대표를 바로잡기를 바랍니다. !

경주 국립박물관은 신라 역사왜곡을 즉각 시정 하십시오!  
신라의 1천년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기를 강력히 촉구 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시정 할 것인지 답변바랍니다. 
 

다음은 국립김해박물관에 보낸 공문의 본문 내용이다 

국립김해박물관의 금관가야 소개글에 대한 입장 요구 

김해는 가야사의 성지입니다. 김수로왕릉, 허왕후릉, 구지봉, 봉황대, 봉황동유적지(왕궁 추정지) 등 가야 역사의 중심지가 김해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국립김해박물관은 왜 금관가야 건국사를 부정합니까? 

김해박물관의 역사왜곡에 대해서 짚어보겠습니다. 

1) 김해박물관은 왜 김수로왕, 허왕후의 실존과 가야 건국사를 부정합니까? 
지금으로부터 1700여전? 가야는 1700년전의 역사라구요? 그럼 가야의 건국을 3세기나 4세기로 보는 것입니까? 우리나라의 정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CE 42년에 김수로왕이 가야를 건국했습니다.  삼국유사에만 있는 기록이 아닙니다. 130년이나 더 오래된 삼국사기에도 가야 건국 연대가 있습니다. AD 42년..그리고 6년 뒤에 허황옥와 결혼합니다.  허왕후에 관한 내용은 수많은 문헌과 유물, 유적으로 입증 되었습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김해가 보존하고 지켜야 할 가야의 건국사입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가야건국을 CE 42년이라고 표기하면서 앞에서는 가야는 1700년전에 성립했다는 표리부동하고 비열한 행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김수로왕의 금관가야 건국을 인정합니까? 아니면 신화나 허구로 보는 것입니까? 입장을 표명하시기 바랍니다. 

2) 김해 국립박물관은 임나일본부설 전초기지입니까? 왜 가야를 임나라고 합니까?  
일본서기에 쓰여있는 '신공왕후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출정해서 바다 건너 신라를 정벌하고, 그 뒤에 장수들을 보내 임나 7국을 평정했다'는 소설꺼리도 안되는 반역사적인 내용을 믿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의 실체라면, 임나=가야설은 '일본서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임나'가 등장하므로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일본서기는 한반도의 가야를 임나로 불렀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한반도의 가야는 임나가 아닙니다. 

일본서기 숭신(崇神) 65년에 임나국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숭신 65년은 서기전 33년으로서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건국하기 100여 년 전입니다. 임나는 가야 건국 100년전에도 존재한 명칭입니다. 그러면 임나와 가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대가야가 562년 마지막으로 멸망한 뒤에도 임나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존재하여 여러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임나는 가야 이전에 있었고 가야 이후에도 있었습니다. 가야는 임나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해박물관은 가야를 임나라고 동일시합니까? 

곳곳에 쓰여져 있는 임나, 임나가라, 가야7국, 임나10국 등은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에 설치되었다는 침략이론에 한반도 남부에 비정 되어왔습니다. 

왜 임나라는 용어를 가야에 가져오는 것입니까? 광개토태왕비문의 임나가라는 대마도 일수도 큐슈 북부일수도 있습니다. 신라 강수가 임나가라 사람이라고 할 때 강수는 최근 연구결과 성이 석씨 입니다. 석탈해는 왜의 동북쪽 다파라국에서 왔으므로 강수가 말한 임나는 한반도가 될 수 없습니다. 

진경대사 탑비의 진경대사는 임나왕족이라고 하나 원조(멀 원 조상조)의 번역문제 그리고 '신김' 씨는 김유신이 될 수 없다는 논문으로 국내문헌과 유물 속 딱 3개 임나는 논파가 되었습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200여개의 임나는 모두 일본열도에 해당 됩니다. 

조선총독부는 가야를 임나라며 고령에 <임나대가야 국성비>를 세웠습니다! 지금 임나를 가야라며 임나를 한반도에 위치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가야를 임나라고 동일시합니까? 해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김해박물관은 500년 가야를 온전히 기록하라 !
김수로왕와 허왕후의 가야 건국사, 가야초기 역사를 온전히 회복하라 ! 
금관가야 김해는 임나가라가 아니다! 임나가라를 삭제하라 ! 
금관가야는 일본서기 남가라가 아니다! 남가라를 삭제하라 ! 
박물관은 임나, 임나가라, 임나10국, 가야7국, 남가라, 안라를 모두 삭제하라 ! 

이에 대한 박물관측의 즉각적인 답변과 조치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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