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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임나 지명을 한반도 가야라고 우겨서는 안된다

 국가의 구성은 영토, 사람, 주권이다. 영토와 사람은 있는데 주권이 없으면 식민지라 할 수 있다. 식민지의 영토 이름마저 빼앗기면 그 국가는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우리가 독도의 지명을 독도라 부르고, 가야의 지명을 가야라고 불러야 한다.  그래야 영토도 살고 역사 주권도 함께 사는 것이다.  

정한론을 펴며 호시탐탐 조선침략을 목표로 삼았던 일본 제국주의 육군 참모본부는 1882년 ‘임나고고’ 와 ‘임나명고’라는 책에서 한반도의 가야를 임나와 동일시하며 야마토왜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4세기에서 6세기 200여년간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땅을 점유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폈는데 한반도의 가야가 임나라는 주장이 그 바탕이며 일본서기를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신라 내물왕 이전은 믿을 수 없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게다가 쓰다소키치를 비롯한 일제 관변학자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왕후의 가야 공격 기록이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는다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만들어 고구려는 2세기 고이왕,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신라는 4세기 내물왕에야 국가가 형성된 것처럼 우리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했다. 해방후에 변한 것이라곤 백제는 4세기가 아닌 3세기 고이왕부터라고 100년 당긴 것 뿐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그대로 존재했다. 

거기에 더해 김수로왕의 42년 건국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고 가야도 역시 3세기에 와서야 등장하는 것처럼 가야 역사를 왜곡하여 겉으로는 500년 역사라고 하면서 300년 가야사로 축소하고 있다. 

120일이 넘는 기간동안 일본의 가야 전시를 철회하라고 시위했던 1인 시위 푯말

작년 10월부터 일본 지바현 국립역사민속박물관,큐슈 국립박물관에서 연속으로 개최되고 있는 가야 유물 전시는 가야의 역사를 3세기부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엄연히 실존한 AD42년 건국한 가야사를 축소하여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가야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야를 임나와 동일시하는 국내 주류역사학계와 일본학계의 속내로 보면 임나사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 일본박물관 전시에서 일본측이 가야를 임나와 동일시하고 있음이 그들의 가야전시 해설 영상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일본서기>의 속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진실이 다 드러난다. 일본서기 숭신(崇神) 65년에 임나국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숭신 65년은 서기전 33년으로서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건국하기 70여 년 전이다.  임나는 가야 건국이전부터 존재한 명칭이다. 그러면 임나와 가야는 완전히 다른 정치체가 된다. 임나와 가야는 건국 시기도 다르고 멸망시기도 다르다. 이를 왜 동일시하여 임나일본부설 악용을 자초하는지 한국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일본서기 숭신(崇神) 65년조는 임나의 위치를 최초로 명확히 소개한다임나는 축자국(큐슈북부)에서 2천여리 떨어져 있고 북쪽이 바다로 막혀있고 계림의 서남쪽이라고 한다. 이 세 조건이 맞는 지역은 대마도 뿐이다. 그래서 임나의 초기 위치는 대마도라는 주장이 우리 민족사학계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이병선 교수는 대마도에서 임나 관련 지명을 수십개나 발견했다. 이런 논문은 학계에서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이를 통해서 보면 일본 학계가 그토록 악용하고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의 400년에 광개토태왕이 공격했다는 ‘임나가라’는 ‘금관가야’가 아니라 대마도가 된다. 금관가야는 530년까지 이후에도 130년을 더 지속했는데도 금관가야가 광개토태왕의 공격이후 거의 사라진 것처럼 주장한다. 

게다가 국내문헌이나 지명에는 가라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가라는 열도에 나타나는 용어다. 남가라도 금관가야가 아니다. 일본서기의 남가라는 금관가야가 532년에 신라에 항복한 때보다 수년전에 이미 멸망당한다.  남가라와 금관가야도 역시 다른 정치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렇듯 일본서기 내용만 조금 살펴보면 그 실체가 다 드러난다. 

삼국사기,고려사,신증동국여지승람,함안군읍지,동국통감,대동지지 등 국내 10여개 문헌에 의하면 아라가야는 신라 법흥왕 재위시기인 540년 이전, 정확히는 538년에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런 명확한 기록은 무시하고 일본서기에 있는 안라를 아라가야라고 주장한다. 538년 아라가야가 멸망한 후에도 일본서기의 안라는 계속 등장한다. 역시나 아라가야는 일본서기의 안라가 아니다. 아라가야는 한반도의 함안에 있었고 안라는 일본열도에 있는 국명이다. 안라 지명은 일본열도에 수십 개가 있다. 이 안라만 보더라도 안라가 포함되어있는 4세기 임나7국, 6세기 임나10국등이 모두 한반도에 위치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광복 78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본서기> 지명을 가야에 적용하고 있는 곳이 강단사학자의 논문, 박물관, 언론, 인터넷, 정부지자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다른 분야에서는 일제잔재 청산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큰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역사학계는 거꾸로 식민사학자의 주장·논리를 그대로 수용·답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역사학계는 한술 더 떠 합천을 <일본서기> ‘다라국‘으로, 남원을 <일본서기> ’기문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알고 ’남원 시민연대‘ ,“가야사바로잡기 전국연대“등 여러 시민단체의 항의와 요청을 문화재청에서 받아 들였고, ’다라국‘을 ’쌍책 지역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기문국’을 ‘운봉고원 일대의 가야 정치체’로 바꿔 2022년 4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 보낸바 있다. 

이제 우리 역사학계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일본서기>는 기본적으로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일본 역사책이다. 년대와 내용의 조작이 많고 허구가 있음에도 고대 일본열도로 건너간 가야·고구려·백제·신라 세력의 활동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 가야 땅에 식민지 이름 임나라는 지명을 뽑아 버리고, 일본열도에 가야세력이 활동한 지명부터 찾고 복원해야 할 것이다. 땅, 사람, 주권이 바로선 가야 역사를 연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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