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사본 환단고기에는 저 두 기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등사본 환단고기 이후에 이유립이 역사집략(1905 김택영) 등을 보고 추가하여 넣었다. 역사집략에는 저 기사는 (기자)조선기에 실렸다. 이유립은 (기자)조선기의 기사를 어떤 기사는 <단군세기>에 집어넣고, 어떤 기사는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에 집어 넣었다. 그냥 엿장수 마음대로다. 위조의 확고한 증거를 진서 증거라고 우기면 되는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