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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수십 만권 불태운 걸 한국인이 비호하는 기이한 역사학계 상황

"사이비역사학’ 신봉자들이 흔히 퍼뜨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에서 우리 고대의 역사서 수만 권을 불태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드넓은 영토에 관한 기록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고 분통이 터진다면서, 제법 나라와 민족을 걱정해주는 척을 합니다." (박용준 역사교사)
출처 : 광주드림 2023년 8월 14일자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32020

박용준 교사는 광주드림이라는 언론 기고글에서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에서 우리 고대의 역사서 수만 권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사이비역사학 신봉자들이 퍼뜨린다고 했다. 마치 이것이 사실이 아닌 거짓인 것처럼 과격한 언사로 말한다. 

그러면서 글의 중간에는 “사이비역사학 신봉자들의 창세기라고도 할 수 있는, '조선 총독부가 우리 고대 역사서 수만 권을 태웠다'는 이야기는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조선총독부가 책 수만 권을 폐기처분한 것은 맞으니, 일부는 맞는 이야기입니다.”라고 한다.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놓는 것인지 수만권을 폐기처분한 것은 일부 맞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가 우리 역사책을 수만권을 폐기처분했다면 이를 한국인으로서  분노하고 성토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당시 인쇄술로 수만권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공정인가를 생각해보라.  아니 일부 맞다고 하면서도 사이비역사학 신봉자의 창세기라니 그런 어휘를 쓰는거 자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다.  

그리고 애매모호하게도 폐기처분이라고 한다. 일본을 자극할까봐서인지 소각이나 불태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분명히 일제는 우리 역사서를 폐기처분하는 방식중 하나로 소각을 택했다. 역사서를 불태웠다. 

우선, 조선에서 머물렀던 미국인 기자의 증언을 보자

"한국의 역사는 절대로 엄금이다. 합병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일본인은 즉시 한국의 국사란 국사는 전부 압수하여 불태워버렸다. (생략) 한국의 문화를 한자 한 획이라도 기록한 문자는 철저히 수색하여 폐기시켜 버렸다. 그리고 이런 문자는 가지고만 있어도 그 소유자는 감옥에 수감됨을 면치 못하였다.  (생략) 한국 국사는 가지고만 있어도 범죄가 된다. 나도 달포 전에 자기 조국의 역사를 본 죄로 구타를 당한후 15일 이상 30일 이하의 구류를 당한 한국인을 목격하였다." - 나다니엘 페퍼Nathaniel Peffer(1890~1964) 「독립운동의 진상」 국사박멸책에서

한국의 국사란 국사는 전부 압수하여 불태워버렸다는 기미년 삼일혁명 당시 국내에 들어왔던 미국인 기자의 증언이다. 이것만 봐도 '일본이 수많은 사서를 분서했다는 분서 사건은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산경찰서에 폭탄 의거를 벌였던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의 친구였던 최천택은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의거 전날 기념촬영사진 최천택(오른쪽) 선생과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하루 전날 찍은 사진 ⓒ 개성고등학교역사관 제공

"17세에 우리나라 역사를 먼저 알아야 되겠다고 느끼고 소장한 <동국역사(東國歷史)>를 복사 출판하고자 등사판을 구입하여 하학(下學) 후에는 자필로 원지에 옮겨 쓰고, 한 편 찍어내어 배부하였다. 이때 일본 관헌은 일한 합방 때 한국 역사에 관한 서적을 가가호호(家家戶戶)마다 수색하여 압수한 뒤 불태워 버릴 때라 나 자신도 발각되어 제1차로 경찰에 붙잡히었다.“
고등학생 신분이였던 최천택 선생은 역사서적을 수색하여 압수하고 불태울 당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직접 동국역사라는 역사책을 찍어냈다는 것이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했던 백암 박은식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이후 조선총독부가 모든 언론기관의 문을 닫고 국학문헌을 압수 소각하자 “국체(國體)가 수망(雖亡)이나 국혼(國魂)이 불멸하면 부활이 가능한데, 지금 국혼인 국사책마저 분멸(焚滅)하니 통한불이(痛恨不二)라”, “일언일자의 자유가 없으니 오로지 해외로 나가서 4천년 문헌을 모아서 편찬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국혼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개탄하고 망명을 계획하였다고 《백암박은식전집》에 전하고 있다. 일제가 우리 국사책을 금하고 불태워 멸했던 시기라는 증언은 이렇게 많다. 

일본인 사학자이자 평론가 하라타카에루原田榮의 저서 <역사와 현대>(1981)를 보면 

구로이타 가쓰미

“1923년 7월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위원회 구로다가찌미黑板勝美 고문이 대마도에 사료탐방을 하였을 때 한국과 관계있는 문서, 고기록 등 다수가 대주구 번주藩主(영주) 종백작가宗伯爵家에 있음을 알고 고문서 66,469매, 고기록류 3,567책, 고지도 34매 등을 은폐 또는 분서焚書했다.”고 밝히고 있다. 은폐하거나 불태웠다. 우리가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 학자가 발굴한 내용이다.  

대마도라는 작은 섬 하나에서도 수많은 책들을 수거하고 분서했다. 이를 전체 한반도 전체라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책들이 은폐,소각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일본인 레이타쿠대 후지모토 유키오교수는 이등박문이 조선총독부를 은퇴하고 일본으로 올 때, 조선왕실의 기증이라며 규장각 사서를 몇 수레나 일본으로 가져왔다고 했다. 

이등박문만 가져간 것이 아니다.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이 된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1852~1919)는 조선의 왕실도서관 규장각을 제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고문헌들을 통째로 도둑질해 갔는데 그것이 자그마치 18,000점 이상이다. 훔쳐간 문화재로 자기의 고향 야마구치시에 ‘데라우치문고’라는 도서관을 만들었을 정도다. 

한 개인만 해도 이 정도다. 만주와 한반도 전역을 다니면서 사서와 사료를 수거했던 일제라면 전체 20만 권이라는 주장도 적게 잡은 숫자일 것이다.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은 1954년 출간된 <제헌국회사> 추천사에서 
"일제강점기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조선의 기록문화에 두려움을 느끼고 1910년 11월부터 모든 행정력과 군경을 동원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근 1년 2개월 동안 종로 시대의 서점을 비롯한 지방의 대,소,서점,향교,서원,구가(구,양반 사대부가를 수색하여 단군조선에 관련 사료와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내용의 서적을 압수하거나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속 신익희,

문정창 선생은 1965년 <군국일본조선강점삼십육년사> 에서 신익희 선생과 같은 주장을 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1910년 11월부터 일본 헌병, 경찰, 조선인 헌병 보조원 등을 동원하여 종로 일대의 서점과 전국 각지의 서사(書肆), 향교, 서원, 구가(舊家), 양반 세가(勢家) 등을 급습하여 ……범 51종 20만여 권을 불사르고 또한 이러한 류의 서적의 판매를 엄금하며 그 소지자와 열람자를 처벌하였다."라고 말이다. 


“서희건은 <잃어버린 역사> 1권 11쪽에서 <제헌국회사>와 <군국일본조선강점 36년>이라는 책을 인용해 일제가 판매금지하고 수거한 책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밝힌 것이다.

박 교사는 기고글에서 “그렇지만 그 때 폐기된 도서 대부분은 역사서라기보다는 대개 조선의 국권회복과 독립을 지향하는 단체 관련 도서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이비역사학' 신봉자들은 없는 말을 꾸며내거나, 실제 사실에 교묘하게 가짜를 큰 스푼을 타서 섞은 뒤, 자신들 말이 맞다고 우기곤 합니다.:”라고 말한다. 

역사서라기 보다는 대개 조선의 국권회복과 독립을 지향하는 단체 관련 도서들이었단다. 1910년대 51권을 종류에 따라 분류해보면, 사상서(17권) 초중고등 교과서(10권) 지리서(5권) 위인전(5권) 역사(4권) 세계사(3권) 일어(2권) 윤리, 한문 등이다. 이는 초반에 압수된 종류의 책이다. 당시 압수된 책중에 대한제국의 역사책은 최소한 단군을 신화라고 하지는 않고 단군조선으로 한국사가 시작하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런 책들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51권이외에 공표되지 않은 책들이 있을 가능성은 정황상 충분하다. 

일제가 모든 책을 공개할 리가 만무하다. 그것은 지금 일본열도에 넘어간 우리 역사서들이 얼마나 넘치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일본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에 한국 도서가 얼마나 있는지 진짜 규모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 판결문에서 드러난 오노 외무성 과장의 진술은 '한국에게 숨겨온 도서 목록이 따로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실토한 것이니 큰 의미가 있지요." - 박상국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조선일보 2014. 7. 30 기사)

박상국 당시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日, 한국 문화재 목록 은폐] "日 궁내청에 숨겨둔 한국도서의 규모·가치 아무도 몰라" 2014.07.30.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30/2014073000227.html 

한국에게 숨겨온 도서 목록이 있다는 것이 당시 재판결과 밝혀졌다. 한국에서 사서 등 책을 가져가는데 그 모든 책을 “우리가 이런 책을 가져간다”라고 일제가 공표하겠는가? 그것도 식민지를 겪고 있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그걸 다 고지하느냐 말이다.  
 

 "조선의 고서는 다 가져왔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들은 조선에는 없는 것들이다" 

박창화&#160;선생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12년간 근무했던 박창화 선생이 일본인에게 들은 내용이라고 한다. 조선의 고서는 다 가져왔다고 일본인이 털어놓았다.

아니 일본이 모든 가지고 온 책을 공개했으리라는 생각이 순진한 생각 아닌가? 숨겨진 책들이 있을 것이고 숨겨서 일본열도로 가지고 간 책이 있을 거라는 것은 왜 생각을 못하는가? 생각을 해도 그런 주장을 하면 안되는 머라도 있는 것인가?  일본인을 대변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변호라도 해주고 싶은 것인가?

일본이 주장하는 것만 받아쓰기하면 어떻게 되는지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삼일절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7500명이 삼일혁명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그후 바로 일본 외무성에서 항의를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왜 사망자 숫자에 논란이 있는데 확정해서 발표를 하냐는거다. 논란이 있다는 그 내용을 보면 조선총독부 집계는 삼일혁명 사망자가 553명이다. 그런데 우리 쪽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러 통계에서 약 6500명에서 7500명 사이다. 1만명이상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략의 숫자는 그 정도다. 그런데 우리 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국사편찬위원회는 머라고 하는지 아는가? 만세시위에서 725명에서 934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실증이라는 명목하게 사망자 이름 하나 하나 세어서 추가하고 있는 것인지 일본 주장의 손들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일본이 533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 국사편찬위원회는 우리측 주장이 담긴 모든 책을 무시하고 조선총독부 주장과 172명 밖에 차이나지 않는 통계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주장은 언론을 통해서 확산되기도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온다. 이래도 식민사관을 모두 벗어낫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우리가 당시 공표된 것만을 믿고 51종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일제가 공표한 것을 철저하게 그저 추종하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51종을 분석하고 일제가 발표안한 책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학자의 태도에 맞다. 20만권이 맞다면 51종은 더더군다나 말이되지 않는다. 한권의 책이 4000권이 된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0만권을 주장하던 51종이 아니라 더 있다고 주장하던 그것이 한국인에게서 사이비라는 말을 들어야할 정도로 황당한 주장은 아니다.  

조선총독부는 전국에서 국내 사료의 수집과 강탈과 분서를 계속했다. 1938년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에 의하면 1923년 부터 1937년까지 15년동안 차입한 사료는 모두 4천 9백 50종이다. 거의 5천종의 사료를 모았다. 

게다가 조선 서지학(書誌學)의 권위자 후지모토 유키오 도야마대 교수가 있다. 그는 11∼19세기 일본으로 유출된 고려와 조선의 고서 5만 권의 목록을 60대 일본 학자가 35년에 걸친 추적과 조사 끝에 집대성했다. 자그마치 5만권이다. 5군데를 조사한게 그정도다. 다섯 군데가 그정도라면 조사하면 더 나올거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사서들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일까? 그리고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불태워진 것일까?

박용준 교사는“이런 이야기까지 들으면 사람들은, 아,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모조리 없앴구나! 라고 생각하겠지요.”라고 비아냥 투로 말한다. 그런데 맞다.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없애고 삭제하고 철저히 왜곡했다. 그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그 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일본외 다른 나라의 식민지 경영에도 있어왔지만 일본은 더욱 이 부분에서 철저했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16년간의 긴 시간동안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입하여 일본인에 의해 일본어로 쓴 조선사 35권을 만들어냈다. 우리 역사는 이 조선사 35권이 만든 틀과 프레임 안에서 굴러가고 있다. 과연 정말 그러한지 이를 밝히기 위해서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의 연구팀은 그 35권을 5년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모두 한국어로 완역했다. 그게 인쇄하면 수백권이 된다.  이제 그 내용을 세상에 밝혀내려 인쇄하려고 하는데 학계에서 압력을 넣었는지 발간이 금지되었다. 조선총독부 산하에서나 있을법한 출간 금지령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발동되어있는 것이다. 

 

누가 진짜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역사와 문화를 없애려고 하는 당신들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누가 일본을 옹호하고 변호하고 있는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홍위병이란 단어를 썼는데 과연 누가 홍위병처럼 나서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정체성이다. 국민들이 가난을 벗어나려 앞으로만 달려오다보니 역사왜곡된 것에 신경을 못쓰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라고 학자들을 믿고 맡겼더니 아직도 일제 식민사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틀안에서 수천편의 논문을 쓰며 그들만의 철옹성을 만들고 있는 모습에 분노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쌍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전라도 천년사,경상남도사,김해시사,부산시사 등에 담긴 역사왜곡이 있다면 시민,도민 그리고 국민들이 이를 뽑아낼 것이다. 진짜 한국인의 역사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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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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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영 2023-08-18 09:52:01

    침략자들은 침략에 성공했을 때 일단 역사ㆍ사상ㆍ문화 관련 책을 불태운다 일제가 1905년부터 교육 통제를 시작했고 병탐하자 마자 금서 목록을 발표하고 수많은 책을 불태운 게 상식이지 ㆍㆍㆍ저런 교사들이 있다는게 부끄럽다 삼일혁멍 때 일제 통계에 안 잡힌 사망자가 얼마나 많은데 ㆍㆍㆍ우리 동네에서도 만세운동하다 총 맞고 쓰러지신걸 마을 시람들이 업고 도망와 숨어 있다 돌아가셨는데 당근 일제 통게에는 안들어가 있다 일제 기록은 맞고 우리 독립운동가들 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거 아닌가?   삭제

    • 송용석 2023-08-18 08:38:11

      일제식민사관의 틀에 갇힌 역사학계
      대한사람인가 일본인인가!
      진정한 한국역사를 복원한려면 사욕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삭제

      • 진실 2023-08-18 05:36:56

        태우는 사람은 누구이고 훔쳐간 사람은 누구입니까? 훔친다는것은 기치를 인정하니 훔치는것 아닙니까?
        사료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왜 태웁니까? 태웠다면 왕조실록 승정원기 고려사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왜 남아있고 그 엄청난 규장각 도서들이 보존되어있습니까.
        지금 분서에 대한 주장은 모두 2차적 진술입니다. 직접 도서를 탈취, 분서했거다 당쟀다는 개인이나 조직의 1차적 기록이 없습니다. 그 주장이 설득력을 기지려면 총독부 기록을 조사해서 불온문서 색출 지시 공문이나 일선 파출소의 업무일지를 찾아내서 공개하면 될겁니다.   삭제

        • 중도랑 2023-08-17 20:24:45

          반드시 태워없어진 우리역사를 되살려 우리아이들이 배울수 있도록 피흘려 독립시킨 선조님들께 우리가 반드시 해드려야할일 같습니다. 이렇게 악랄하게 우리역사를 없애는데 노력한 일제에 비해 우리들의 노력은 전무했던것 같습니다. 이제 국민이 각성해서 바로 역사광복을 이루어내야할 때인것 같습니다.역사바로세우기가 국권회복이고, 국혼살리기군요. 함께하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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