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조선총독부· 국사편찬위원회의 삼일운동 통계에 분노

삼일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삼일혁명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동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일단 일반적으로 알려진 ‘삼일운동’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삼일독립운동은 기미년 1919년 한해에만 무려 1,542회에 걸친 만세 시위운동이었다. 일제의 탄압이 가혹했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결국 전국에서 7,600여 명이 사망하게 되었고 1만6,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4만6,000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2019년 삼일절 백주년 기념사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인 202만여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고, 7천500여명이 살해됐고, 1만6천여명이 부상당했으며, 체포·구금된 숫자는 4만6천여명”이라고 연설했다. 이 내용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 제101주년 삼일절 기념식 축사 전문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66 

그런데 놀라고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일본이 이에 대해서 즉각 항의한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주일 한국대사관에 사망자 수치에 대해 "다툼이 있는 숫자"라며 "한·일 간 견해가 일치하지 않은 것을 공적인 장소에서 발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NHK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왜 사망자 숫자에 논란이 있고 다툼의 여지가 있는데 대통령이 확정해서 국민들에게 발표를 하냐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항의가 아닐 수 없다. 사망자에 논란이 있다? 그 논란이 있다는 내용을 들여다 보면 당시 조선총독부 집계가 있다. 그들은 삼일운동 사망자가 553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 측 사망자 수치와는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수치다. 

우리 측의 사료는 세 가지가 있다. 1919년 9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회가 상해에서 펴낸 『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이 있다. 이 책은  국제연맹회의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청하기 위해 편찬한 관찬서 자료집이다. 여기에 적힌 삼일운동 사망자 수는 6,821명이다.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이 1920년에 발표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는 서울에 있는 통신원의 기록을 토대로 “창으로 찌르고 칼로 치는 것이 마치 풀 베듯 해서 즉사한 사람이 3750여 명이고, 중상을 당해 며칠 후에 죽은 사람이 4,600여 명”이라고 전하고 있다. 사망자는 총 7,509명이다. 

그리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김병조 선생이 1920년에 쓴 한국독립운동사략 (韓國獨立運動史略)가 있는데 여기에 기록된 삼일운동 사망자 수는 6,670명이다.

이와 같이 우리 측의 여러 조사를 종합해보면 사망자는 약 6,500명에서 7,500명 사이다1만명이상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략의 사망자 숫자는 7,000명 전후가 된다.

이에 비해 조선총독부는 삼일만세시위에 조선인은 총 106만 명이 참가하여 진압 과정에서 553명이 사망, 12,000명이 체포되었다고 공식 집계를 기록해놓았다. 사망자를 553명이라고 축소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사망자를 애써 축소한다는 것은 여러 사례가 있다. 1923년 관동대지진 학살자 수를 상해임시정부에서 발간하는 독립신문에서는 조사 결과 6,661명이라고 하였으나 일본 사법성은 233명, 내무성 정보국은 231명이라고 축소했다, 한국인 약 1만명을 태운 우키시마호의 침몰 사망자 수를 한국인 희생자 측의 8천명이 사망했다는 주장과 달리 일본은 524명이 사망했다고 축소 발표했다. 이런 전력을 보아도 삼일운동 당시 조선총독부의 사망자 수치는 너무나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조선총독부 통계가 아니다. 당대의 기록인 『한일관계사료집』,『한국독립운동지혈사』,『한국독립운동사략』등의 결과를 모두 무시하고 조선총독부의 사망자 수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 국사편찬위원회의 통계 수치다. 우리 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전국 및 국외 포함한 삼일만세시위 사망자는 최소 725명에서 934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533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 국사편찬위원회는 우리측 주장이 담긴 모든 사료를 무시하고 조선총독부 주장과 192명 밖에 차이나지 않는 통계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실증이라는 명목하에 일본 주장이 맞다고 손들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국사편찬위원회의 주장은 유수 언론을 통해서 확산되기도 했다. 이는 마치 국가가 매긴 공식 통계처럼 백주년이 되는 해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결국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대통령의 기념사는 잘못되었고 일본 외무성의 항의는 적절했다며 우리 국사편찬위원회가 일본 측 손을 들어준 격이 되었다. 어떻게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삼으며 피해자,사망자의 수를 숨기고 축소하여 남겨놓은 기록과 명단을 그대로 믿고 추종할 수 있는 것인가? 

이처럼 국사편찬위원회가 일제 식민사관을 모두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은 역사 관련 사건이 있을 때마다 대두되고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 제기된 삼일운동 사망자 수치만 보더라고 국사편찬위원회가 아니라 일본사편찬위원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다. 광복후 1946년 신석호는 지금의 국사편찬위원회의 전신인 국사관을 창설했고 1949년에 국사편찬위원회가만들어졌는데 역시 신석호가 사무국장으로 그 총괄을 맡았다. 특히 《국사편찬위원회사(1990)》는 신석호의 재임기간을 1929년 4월~1961년 1월 21일이라고 적어 놓고 있는데 이는 신석호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촉탁, 수사관보, 수사관을 지낸 시기를 포함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계승했다고 당당하게 밝혀놓은 셈이다.  

한마디로 조선사편찬위원회(1922) → 조선사편수회(1925) → 국사관(1946) → 국사편찬위원회(1949)로 계승되어 온 것이다. 신석호와 이병도는 해방 후 서울대 등 주요 대학 사학과와 국사편찬위원회를 장악하여 조선총독부 일제식민사관을 역사학계의 정설과 통설로 만들었다. 그래서 국사편찬위원회가 심의를 하는 지금의 국정,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식민사관의 특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지금까지도 듣고 있는 것이다.  

조선총독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삼일운동 사망자 수치가 비슷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유감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만들어진 왜곡된 역사관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남기는 것이 제2의 삼일운동,역사광복 운동일 것이다. 100주년을 넘은 삼일운동의 또 다른 과제다. 

출처 : 월간 대한사랑 3월호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