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등사본 환단고기가 나왔고 거기에 해학 이기 선생이 감수한 부분이 나왔다. 또 계연수 선생의 광명장이 공개되었다. 그렇다면 1911년 계연수 선생이 초간본으로 낸 환단고기가 있었다는 얘기가 훨씬 더 설득력 있는데 뭔 <감시만어> 이후에 성립된 문헌 타령을 하는지, 도대체 이 계산법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오는 건지 참 씁쓸하다. 삭제
이형우2026-01-04 20:52:40
이시영 선생의 <감시만어>에는 환단고기의 흔적도 없다. <환단고기>가 출처라면 밝혔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시영 선생이 가장 많이 참조한 <신단실기>와 <신단민사>에도 <환단고기>를 출처로 한 항목은 하나도 없다.
이 칼럼 필자 박찬화 기자는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하는 이들이 1979년 이전에 『환단고기』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아쉽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환단고기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환단고기는 60~70년대에 끊임없이 수정, 보완되는 과정 속에 있었다. 1979년은 출간 시점일 뿐이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