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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현도군에서 나오지 않았다 ― 북부여에서 시작된 정통성「고구려 기원에 대한 결정적 반론: 고구려후 고진과 북부여」
  • 박찬화 전문기자
  • 승인 2026.02.10 15:10
  • 댓글 3
기사 댓글 3개
  • 김범수 2026-02-12 02:05:48

    한서 지리지 보면 현도군은 3개현이고 그 중 하나가 고구려현이다.
    낙랑군은 25개현인데 그 중 하나가 조선현이다.
    인구는 현도가 22 만명. 낙랑이 40만명이다.

    그러니까 조선현은 대강 2만명.
    고구려현은 대강 7만명 정도이다.

    침고로 당시 중산국은 60 만명이었다.

    조선현이나 고구려현은 붙잡아 온 포로들이 살았던 곳일 확률이 높다.   삭제

    • 김범수 2026-02-12 02:00:44

      동북공정의 핵심은 기자국과 위만국의 위치다. 낙랑과 현도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둘을 섞지 말기 바란다.
      기자국은 기자의 무덤가에서 찾을 일이고
      위만국은 그 근처에서 찾을 일이다.
      그 두 나라를 왜 한반도에서 찾나.
      그리고 왜 이름에다 조선을 붙여 억지로 조선과 연결하는가. 기자국이 조선일리가 없고 위만국이 조선일리가 없다.
      그건 화족이 작전상 만들어 낸 단어일 뿐이다.
      번조선과 하등 관련 없는 나라이다. 한서 지리지 보면 많은 국과 군이 같이 존재했다. 중산국도 수십개의 국 중 하나이다.   삭제

      • 이형우 2026-02-11 16:25:26

        고구려가 현도군의 고구려현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동북공정의 논리이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이런 견해를 따르지 않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고구려현을 영릉진고성에 비정하며, 졸본은 환인에 비정한다. 두 곳은 다른 장소다.
        현도군 고구려현의 이름이 句驪의 이름을 따서 治所로 삼았다는 논문을 보더라도 원 고구려에서 고구려현의 명칭이 나온 것이다.
        환단고기 북부여기가 그려내는 역사상은 그냥 소설일 뿐이다. 그 소설로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없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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