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화 기자는 열하일기에 없는 내용을 기사에 썼다.
왜 아무 응답이 없나? 허위 정보를 썼으면 해명하고 정정하는 게 올바른 도리 아닌가?
그냥 쌩까고 말 건가? 진짜 사이비 소리 듣고 싶은가? 반드시 해명해라. 삭제
이형우2026-02-25 15:29:45
이 기사와는 별도의 얘기지만 한마디하지 않을 수 없다.
매림 이완영이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호섭이 2016년 요서 답사에서 "점이라도 찍어와라 이 뭐뭐들아"라고 했다는 말 녹취가 있다고 했다.
이완영은 그 요서 답사에 가지 않았다. 이덕일이나 문성재나 황순종이나 누구든 녹취가 있다면 공개해라. 이 말을 꼭 전해다오,
이덕일이 약장수 만능통치약 팔듯이 떠벌인 세월이 10년이다. 진상을 보여다오,
녹취가 있으면 공개해라. 나는 이덕일의 취중담이거나 착란이라고 본다. 반드시 공개해라. 삭제
서북지리연구소2026-02-25 10:04:40
박찬화가 나는 물론 개왜놈 이형우에게 속절없이 비난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역사지리 지식이 잘못 인식되어 있고 동시에 일본놈이 조작한 지리를 맹종하기 때문이다.
즉 교치 군.현 기록을 원래 설치 기록이라 잘못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는지 지금의 평안도 용강이나 하북성 창려 등의 지리가 고대부터였다는 일본놈의 조작질을 수용하는 극히 우습기 짝이 없는 지리 인식을 가지고 있다.
결국 지금의 요녕성 전체 지리는 일본놈이 1875 년부터 동쪽으로 이동.위작한 지리이기 때문에 낙랑군은 쌍산자 부근이고 교치 지점은 당산인 것이다. 삭제
이형우2026-02-25 07:19:13
박찬화 기자는 점제현 신사비의 화강암 생성 연대, 비석이 발견된 용강군 일대(마영, 오석산 등)의 화강암 생성 연대를 측정한 방법이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 방법이라고 썼다.
그런데 북측에서 낸 책에는 <핵분열 흔적법>을 사용하였다고 나온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 방법>은 탄소를 이용한 것이고, <핵분열 흔적법>은 우라늄을 이용한 것이다.
박찬화 기자는 왜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하는가? 이런 오류는 박찬화 기자가 AI를 이용하여 기사를 작성한다고 의심하게끔 한다. 삭제
이형우2026-02-24 22:55:09
약 4km라면 10리 거리가 아닌가?
낙랑군이 어디인가 삼국사기를 보자
「高句麗本紀」대무신왕 27년
“秋九月, 漢光武帝遣兵渡海伐樂浪, 取其地爲郡縣, 薩水已南屬漢”
27년(44) 가을 9월에 한나라의 광무제가 병력을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 이남이 한(漢)에 속하게 되었다.
// 2,000년 전 낙랑 시대에 해당 지역은 해수면이 지금보다 높아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거나 얕은 바다였다. //
그렇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그 자리에 패총이라도 발견되었는가? 아니면 규조류라도 채취가 되었는가?
강 하구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퇴적물의 영향도 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 수치라도 제시를 하든지, 이건 뭐 누가 뭐라 카더라 하면 자기에게 유리하면 다 맞다고 가져다 쓰는 거 아닌가 말이다.
해안가에서 약 4km 떨어진 지점이라면서. 진짜 거기가 갯벌이나 바다였을까? 삭제
이형우2026-02-24 22:44:31
// 손 교수는 일제가 배로 비석을 실어오다가 내륙 깊숙이 운반하지 못하고 해안가에서 멀지 않은 곳(약 4km 지점)에 비석을 방치하거나 급하게 세운 것이 현재의 위치라고 설명했다. //
용강에 살던 주민들에게 그 비석의 존재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전설도 있다. 손보기 교수의 혼자 상상일 뿐이다. 박찬화 기자는 왜 팩트체크를 하지도 않고 무가내로 기사를 쓰나? 삭제
이형우2026-02-24 22:35:26
// 1910년대 일제 고적조사단이 비석을 고정하기 위해 시멘트를 섞은 콘크리트를 타설한 흔적 //
정확한 판단이다. 단 중간에 <비석을 타지에서 옮겨와> 세웠다는 표현은 억측이다. 2000여년 전에 시멘트라는 게 있었나? 삭제
이형우2026-02-24 22:28:13
// 일제가 낙랑군의 위치를 조작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유물을 이입했으며... 평양 일대에서 출토된 봉니(封泥) 등도 조작되거나 타지에서 가져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
윗글은 박찬화 기자가 문성재의 주장을 받아쓰기한 것이다. 특히 <조직적으로 유물을 이입>했다는 건 관야정 일기를 이용하여 문성재가 처음 제기한 주장이다.
문성재는 관야정일기의 원문을 변조해서 저런 주장을 했다. 그 순간 문성재는 사이비가 된 것이다. 사이비는 다른 게 아니라 속임수를 쓰는 게 사이비이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