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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대사탑비의 오역을 통한 임나 악용를 바로잡아야임나와 가야'를 둘러싼’ 진경대사탑비의 본문 해석 문제

강수열전의 강수의 본(本)과 임나가랑 기록에 대한 오역(誤譯) 발생 근본 이유가 사료원문에 대한 이해 부족인 것으로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예는 진경대사탑비(眞鏡大師塔碑)의 오역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 『大師諱審希俗姓新金氏其先任那王族草拔聖枝每苦隣兵投於我國遠祖興武大王鰲山稟氣蝶 水騰精据文符而出自相庭携武略而高扶王室▩▩』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 寶月凌空塔碑

대사의 이름은 심희(審希)요, 속성은 신(新)김씨이고 그 선조는 임나(任那) 왕족 초발성지인데 매번 주변국 병사들에게 괴로움을 받다가 우리나라의 먼 조상 흥무대왕에게 투항하였다. (흥무대왕)은 오산의 정기를 받고 동해의 정기를 타고서 문부를 쥐고 재상의 집안에 태어나 무략으로 왕실을 높이 떠받들었으며...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심희의 탑비로, 원래 경남 창원 봉림사지 있던 것으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석은 아래와 같다. 

 * 대사의 이름은 심희(審希)이고, 속성은 신(新) 김(金)씨이다.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요, 초발(草拔)의 신성한 후예였는데, 매번 이웃 나라의 군대에 괴로워하다가 우리나라에 귀의하였다. 먼 조상인 흥무대왕(興武大王)은 오산(鼇山)의 정기를 받고 접수(鰈水)의 정기를 타고 났다.

각주) 초발(草拔) : 임나의 왕족[任那王族]과 초발의 신성한 후예[草拔聖枝]가 대구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초발은 금관국의 시조와 관련되는 이름으로 생각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현재 학계는 가야와 다른 나라인 임나의 왕족 `초발성지`를 잘못 해석하여 가야의 후손 김유신을 엉뚱하게 임나왕족의 후예로 오인하는 실수를 하고 있다. 또 가야의 옛 땅 김해를 임나로 잘못 확정하고 있다.) 

어쩌다 김유신장군은 일본 식민지 임나왕족의 후예로 둔갑해 버렸을까? 식민사학의 폐해가 이렇게 무섭다. 

그동안 진경대사탑비에 기록된 내용은 조선총독부 시기로부터 한반도 내 임나 존재의 증거로 인용되며 진경대사는 신김씨新金氏로서 선조는 임나왕족(任那王族)이며 김유신을 먼 조상(遠祖)으로 해석하였다. 김유신이 금관가야 왕족이기에 곧 "임나는 금관가야(일본서기 남가라)"라고 규정짓다시피 번역하여 임나의 위치비정과 가야와의 관계를 주장하는 자료로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진경대사와 김유신 가문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연구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밝혀진 바대로 신김씨인 진경대사와 김유신과는 아무런 관계설정이 되지 않는다. (이현태, 「新羅 中代 新金氏의 登場과 그 背景 (한국고대사학회, 2006)이현태는 삼국사기 기록을 분석한 결과 김유신은 신김씨를 사용한 적이 없기에 김유신 가문과 신김씨와 연결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삼국사기 기록의 김유신 가문은 신라 중, 하대에 걸쳐 김씨만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이해되어 신김씨는 김유신 가문과 연결시키기 어렵다"

그는 일본제국주의 학자들과 한국사학계가 한반도 임나존재 증거의 사례 중 하나로 인용하여 온 경대사와 김유신 가문과의 관계 설정을 명백히 끊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기간 동안 가야와 임나를 연결 짓는 논거가 진경대사탑비임을 의식했던지 신김씨와 금관가야의 왕족들을 연결하여 신김씨를 사성賜姓 받은 성씨로 추정했다. 이러한 논지는 현 사학계의 가야와 임나가 동일하다는 주장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입장을 대변해 준 모순된 논리이다. 

금관가야 김씨는 곧 김유신의 김씨와 동일 성씨인데 다르게 볼 근거가 없으며 신라역사 기록에 가락국의 왕족들이 신김씨로 사성 받은 역사가 없기에 그런 논리는 근거가 없다. 금석문으로 기록된 신김씨에 관한 몇 가지 사례 (* 奈麻 新金季 △ 「황복사비편皇福寺碑片」 ;赤位 大奈麻 臣 新金賢雄; 靑位 奈麻 臣 新金平矜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 만으로 금관국 왕족 김씨와 연결시키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

원조遠祖는 '먼조상'이 아니라, '창업군주' 김유신 뜻으로 해석되어야

여기에 본고에서 간단히 논하는 바이지만 그동안 김유신과 진경대사와의 연결고리 끈으로 번역된 “원조(祖)"란 개념도 "먼 조상”이 아니라 용어 자체가 명사(名詞)로서 원조란 개념은 아래 세 가지로 파악됨을 제시코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탑비의 내용은 다시 정역(正譯)되어야 한다. 

원조(遠祖)의 첫 의미는 국가 창업군주 칭하는 용어로서 정의할 수 있다.

* 『其百濟遠祖都慕王者 河伯之女感日精而所生』

백제의 원조(遠祖) 도모(都慕, 동명성왕)는 하백(河伯)의 딸이 일정(日精)에 감응하여 태어났다. <<續日本紀 권40, 今皇帝桓武天皇 延曆 8년(789년) 12월 任子>>

속일본기에 등장하는 "원조"의 의미는 동명성왕을 백제의 기원으로 본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각 성의 기원, 뿌리를 의미하는 원조(祖)이다.

* 『遠祖諱日磾 自龍庭歸命西漢仕武帝』

원조는 일제(日磾)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서한(西漢)에 투항하시어 무제(武帝) 아래서 벼슬하셨다.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

* 『공의 휘는 명회 자는 子濬이요 한씨는 本淸州의 大姓이요 遠祖의 휘는 蘭이니 高麗太祖를 도와서 삼한공신에 봉하고 대대로 그 미덕을 간직하다 諱康이란 분은 高宗朝에 벼슬하여 太常禮議院事가 되고 諱射奇란 분은 僉議右諫議大夫요 諱渥이란 분은 三韓三重上黨府院君이요...』 <<上黨府院君忠成韓公諱明澮神道碑 譯)>>

대당고김씨부인묘명, 상당부원군충성한공한명회신도비문에 사용된 원조遠祖의 의미는 성씨의 뿌리나 기원이 되는 인물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종법제도가 시행되면서 고조부 위의 분들을 호칭할 때 원조를 사용한 것이다. 종법제도에서 선대를 표현하는 용어로 비조鼻祖, 원조遠祖, 태조太祖, 열조烈祖, 천조天祖, 고조高祖, 증조曾祖, 조祖, 부父 등이 있다. 

위의 세 가지 원조(遠祖)라는 용어 사용 예를 통해 본다면 진경대사탑비의 진경대사와 김유신과의 관계를 '먼 조상'으로 해석한 것은 원문 자체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온 오역으로 볼 수 있다. 

속성(俗姓)으로 신김씨(遠祖金氏)를 사용한 진경대사는 임나왕족의 후손이었는데 선조가 통일신라의 창업군주격으로 평가된 흥무대왕(김유신)에게 투항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강수열전의 임나가랑과 같이 진경대사탑비의 임나는 오히려 가야와 연결 지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기초사료로 평가될 수 있다. ​

<이완영 , <<삼국사기> 강수열전 정역正譯을 통한 임나가랑의 위치 비정> 논문 중에서 발췌>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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