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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개선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

작년 오늘, 벨기에 국왕의 식민지배에 대한 깊은 유감 표시
우리 사회 내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도 중요


2022년 오늘은 필리프 벨기에 국왕이 민주콩고를 방문하여 지난 식민지배에 대해 유감을 표하였다. 2년 전인 2020년 민주콩고를 방문하여 유감을 표한 이후 다시 방문해  "많은 벨기에인이 당시 진정으로 콩고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도 식민 체제는 착취와 지배에 근거한다."며 “식민 지배는 가부장주의, 차별, 인종차별로 점철된 불평등한 관계 중 하나로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유감을 표하게 된다. 

하지만 2년 전 유감 표명 그 이상의 사과는 없었기에 나름 성의를 보였다고는 하나 민주콩고 국민의 일부는 “왜 그를 초대했느냐?”며 이를 비판하는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1865년 벨기에 국왕에 오른 레오폴드 2세는 영국 출신의 미국 언론인이며 탐험가인 헨리 스탠리를 고용해 브라질의 아마존 다음으로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지인 ‘이투리’가 있는 아프리카 중앙부의 콩고민주공화국을 식민지로 만들게 하고 헨리 스탠리는 이 땅을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영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하여 개인적 영지로서 지배했던 첫 23년 동안 민주콩고인 1천만 명이 살육과 기근,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할당된 고무수확량을 채우지 못해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게 된다. 특히 손목이 잘리는 학대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원자재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그 중심에 고무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오폴드 2세는 잔혹한 식민 통치를 하며 채취한 고무를 팔아 현지 구매가격 보다 거의 700배에 달하는 이익을 남김으로 해서 엄청난 부를 형성하게 되며, 벨기에 수도에 공원과 궁전 등 여러 건물을 짓게 된다. 사람들은 페오폴드 2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명명하기도 하고 그를 건축왕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레오폴드 2세의 만행은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세상에 폭로되었으며 이후 언론을 통해 '콩고의 학살자'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벨기에의 민주콩고 식민지배는 지난 1885년부터 1960년까지 이어졌다. 

어찌되었던 지난 2022년 오늘, 필리프 벨기에 국왕의,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국을 방문하여 당시 선조의 잘못된 행동과 결과들에 대해 특히 식민지배의 불합리한 모습들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당시의 식민지배 자체를 인정하는 모습이 우리와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경향신문 1994년 8월 14일자 기사

진정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개선은 일본의 경우 이에 대한 참회와 반성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짐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단, 우리가 잘 알 듯 독일과 프랑스는 나치에 관여한 사람들의 옷을 다 벗기고 그 죄를 단죄했다. 그러나 한국은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되려 고문하고 그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패악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후 친일파의 후예들은 한국의 기득권층이 되어 지금의 주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우리 사회 내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 또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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