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옛 글자 즉, 신대문자神代文字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일본 왕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신대문자는 한글과 그 글자꼴이 아주 유사하다. 그래서 그들은 신대문자를 아버지(親)라 하고 한글을 아들(子)이라 하여 친자親子의 관계라 하고 있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신대문자는 8세기 초의 문자이고 훈민정음은 1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문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들의 고대 최고 조상신을 모신 이세신궁에 신대문자가 보관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세신궁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의 신사일 뿐 아니라 일본의 토속신앙인 신도神道의 종주격이다. 또 7세기 후반에 있었던 임신의 난 때는 이세신궁의 신풍神風이 천무천황을 가호하여 대군을 쳐부술 수가 있었고 그로 인해 천무는 왕좌에 오르게 되면서 이세신궁은 더욱더 움직일 수 없는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이세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신경神鏡의 뒷면에 이 신대문자가 새겨져 있다.
또 신사의 위패에도 신대문자가 새겨져 있다. 다다이씨는 그의 일본 신대 문자론에서 “일본의 최고 조상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서기708년)문고에는 99점의 문헌이 있는데 시대별로 보면 고사기古事記 (서기712년),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기점으로 고다이고 천황시대 (1318~1339년)를 마지막으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다.” 라고 주장하였다.
나까노씨는 이 신대문자가 조선으로 건너가서 언문의 원형이 되었다고 했으며 아고는 “한글보다 더 오래된 고대화자古代和字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화동원년(서기708년)에 기에따노가 서명한 이세신궁에 소장되어 있는 신대문자는 어떻게 풀 것인가? 이세신궁이 있는 미에현은 오사카 동부 시마반도에 위치한 인구 10만의 종교 도시이자 한해에 수백만 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한국과는 정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한글과 유사한 문자가 보관되어 있을까?
그것은 이세신궁의 내력을 신라 때 멸망한 이서국伊西國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의문이 풀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서국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백곡동에 성을 두었던 고대 부족국가였다. 삼국유사 권1 이서국조의 기록에 의하면 “이서국이 신라 노례왕 14년(서기 297년)때에 신라를 정벌하고자 금성을 침공한 적이 있는 무력을 갖춘, 세력이 강력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후 신라와의 전쟁에 패한 후 낙동강을 따라 밀양 영남루를 지나서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일본으로 망명한 이서 국왕이 훗날 이세 신궁에 모셔져 있는 일본 최고最古의 조상신인 천조대신의 부모였던 것은 아닐까? 그 후예들이 뒷날(화동원년 서기708년) 융성하여 크게 국가를 세우고 고다이고천왕 (1318~1339년)에 이르기까지 그 맥을 이어온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의 어원 연구의 대가인 가나자와 쇼오자부로오 박사는 일본 신화시대에 나오는 여러 이름들을 언어학적으로 고증하였다. 그 중에서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의 부모의 이름이 이사나기노미꼬도(伊邪那岐命)와 이사나미노미꼬도(伊邪那美命)인데 이사나기는 이사の아기란 뜻이며 이사노아기의 발음이 줄어서 ‘이사나기’가 되었고 이사の아기의 아기는 사내, 사나이의 뜻이니 이사나기는 이사의 사나이 즉 이서에서 온 사나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사나미는 이사の아미로서 이사노아미의 발음이 줄어서 이사나미가 되었으며 이사の아미의 아미는 어미의 뜻으로 이사의 아낙네 즉 이서에서 온 아낙네라는 뜻이다.”라고 풀이하였다.
그렇다면 이서란 과연 어디일까? 그는 이서라는 지명을 찾아보았더니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 이서라는 지명이 있는데 그곳은 옛날에 이서국이라는 나라가 있던 곳이었다. 이서는 일본발음으로 이사나 이세로 밖에 될 수 없으니 이 이서국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일본민족의 조상들은 한국에서 건너온 부족임에 틀림이 없고 그 우두머리가 바로 한국의 이서라는 지방의 출신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짐작컨대 이서국이 인접한 이웃부족과 싸우다가 패배하자 망명하여 현해탄을 건너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일본 땅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딸이 천조대신이 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서라는 지명은 전라북도 완주군의 이서면과 경상북도 청도군의 이서면이 있는데 청도군의 이서면에 이서국이 있었다. 따라서 이세라는 발음은 이서의 변음變音이며 이세 신궁은 바로 이서신궁의 변음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세신궁의 신대문자는 바로 신라에게 멸망하여 일본으로 망명한 이서국의 왕이나 그 유민이 가지고 간 문자가 아니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세 신궁에 보존되어 있는 신대문자가 일본으로 망명한 이서국의 왕과 측근들이 그곳에 터를 잡고 다시 이서국을 재건하여 사용했던 단군때의 가림토문 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의문은 한꺼번에 풀려 버리는 것이다.
지금 이세 신궁이 있는 그 곳이 옛날에 이세국 또는 이소국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단군세기』에도 “일본에 옛날에 이국伊國이 있었으니 이세伊勢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또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나중에는 결국 아고씨도 고조선의 가림토문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신대문자 일 것으로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였다. 그 후 일본이 이 신대문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고의 이론을 받아 드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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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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