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 방문객들이 많이 늘어났다. 시멘트문화에 젖은 현대인에게는 양동마을은 보기만 해도 넉넉하다. 오래된 기와집들과 녹음방초 자체로도 멋이고 풍류다.
마을 안팎에 있는 10여개의 정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는 심수정(心水亭)에 올랐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동생이 형을 대신해서 노모를 모셨다는 정자이다. 집안의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기 위해 건물을 ‘ㄱ’자로 꺾고 그 자리에 누마루를 두었다.
종손의 안내에 따라 누마루에 올랐다. 장관이 한눈에 잡힌다. 수령 백년이 훨씬 넘는 회화나무 두 그루가 담을 타고 하늘을 오른다. 청룡의 몸짓처럼 신성해 보이며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누마루는 상류주택의 가장 권위 있는 공간이다. 음풍명월을 나누는 난간이고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되는 자연통로이다. 여름에는 습기를 피하고 선비들의 조망과 휴식을 위한 절묘한 공간이다.
대청마루가 대개 한 면이나 두면이 개방된 데 비해 누마루는 3면이 개방되어 수려한 자연풍광을 집안으로 끌어 당겨주는 화폭이 된다.
다락처럼 높게 만든 누마루에는 바깥으로 돌출하도록 만든 닭다리 같이 생긴 계자난간이 있다. 아래 부분을 판자로 막고 그 중간에 ‘풍혈’이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풍혈은 누마루에 앉은 사람의 사타구니 높이에 설치하여 자연이치와 신체를 동시에 고려한 기막힌 구조이다.
눈여겨보면 한옥의 절묘한 구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마루와 온돌이 공존하는 것도 한옥의 과학성 중에서 탁월한 멋이다. 마루는 개방적인 남방문화의 소산이고 온돌은 폐쇄적인 북방문화의 산물이다. 그런데도 둘은 불편하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신통하게 화합하고 있다.
마루를 이루는 나무와 아궁이서 생기는 불은 상극이지만 조화로우면서도 지혜롭게 배치되어 있다. 겨울엔 온돌에서, 여름엔 마루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4계절이 뚜렷한 우리기후에도 적절한 안배인 셈이다.
비대칭은 한옥의 또 다른 멋이다. 심수정에서 바라보는 향단의 기와지붕들이 제각각이고 비정형적 배치가 눈을 사로잡는다.
대칭인 건물은 하나도 없다. 제 멋대로 앉은 것 같지만 무형의 질서와 오묘한 멋이 서려있다. 한 무리의 학이 자연스럽게 앉아 노는 형상이다.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는 건물배치도 뛰어난 과학성이다. 배산임수를 원칙으로 했던 것도 겨울에 찬바람을 막을 수 있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철 대청마루가 시원한 것은 뒷산에서 형성된 찬 공기가 태양의 복사열로 더운 앞마당으로 흐르는 대류현상 때문이다.
흙벽은 현대식 건물에서 사용하는 시멘트벽과 비교하면 단열효과가 3배 이상이라 한다. 습도 조절에도 탁월한 흙벽은 습기를 머금었다가 내뱉음으로써 방안습도를 조절하는 천연 가습기와 같다.
공간의 가변성도 뛰어난 장점이다. 방과 방, 방과 마루를 쉽게 분할할 수도 합쳐질 수도 있다. 분합문이 있고 들어열개문도 있다. 여름에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확산하고 겨울엔 폐쇄적인 공간으로 수렴한다.
누마루에 앉으면 시상이 떠오른다. 흰 구름이 계자난간에 기대어 먹을 갈아주고 나도 시를 읊는 선비가 된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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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장,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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