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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철의 『한국인의 근원을 찾아서』 3편 - 인간중심의 종교, 한국의 종교한국인을 알면 한국.이 보인다

한국인의 종교는 높은 뜻을 가르치는 인문학이다

한국인을 알면 한국이 보인다. 정말 그렇다.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현상이 모두 한국인이 만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을 설명하는데 극단極端이란 단어만큼 확실하고 쉽게 풀 수 있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종교와 사상 철학적인 면에도 극단이란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인은 극단을 수용하기도 하고, 넘나들기도 하고, 부분해체를 통한 재통합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종교에서는 어떤 점이 극단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은 종교의 시장이라 할 만큼 세계종교가 들어와 있다. 지금 세계 3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교․불교․기독교가 안착하고 있는 세계에서 드문 사례의 나라다. 근대 들어서 여러 종교가 한 나라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럽과 북남미는 기독교, 중동은 이슬람교, 중국은 종교의 자리가 거의 없다. 일본은 기독교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종교로서 성숙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신사가 있다.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기독교가 있지만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나라는 쪼개지고 아직도 분쟁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유교, 불교, 기독교가 공존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종교는 인간에게 위안이면서 종교적인 신념으로 싸우고 있어 인간에게 해악을 주고 있다. 선과 악의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종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종교가 다 들어와 있으면서도 화합하고, 소통하며 동시에 인정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한 집안에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다. 할머니가 불교를 믿고 어머니는 천주교를 믿고, 아들과 딸은 기독교를 믿는 집안도 있다. 여기에 우리의 전통인 정안수를 떠놓고 비는 문화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종교인 천도교, 증산도, 대순진리회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현상이다. 한 집안에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렇다. 또한 우리는 다름은 받아들이는 능력이 탁월해서 서로 융합하고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기도 한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면 기독교를 믿으면서 유교적인 예의를 지키고, 불교를 믿으면서 제사를 지낸다. 천주교도 제사를 지낸다. 천주교를 믿는 신도가 제사를 지내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없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용인한 것이다. 성당에 나가 기도하면서 점도 본다. 우리는 다름을 배척하려 하지 않고 끌어안으려는 특성이 있다. 극단적이지만 다른 극단을 수용하는 놀라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극단을 품어 안는다. 그래서 극단의 수용과 융합으로 종교도 품어 안아서 종교분쟁이 없는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인의 전래종교는 유불선儒彿仙으로 대표된다. 유교는 사람이 인仁을 실천하면 군자가 되고 다시 한 단계 올라가면 성인이 된다. 불교는 사람이 깨달음을 얻으면 각자覺者가 된다. 부처다. 그리고 선교는 사람이 도통道通하면 신선이 된다.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우리의 종교다. 반면 기독교는 인간보다는 신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신이 인간세계를 관할한다. 한국의 전래종교는 유불선으로 인간 중심의 종교라면, 기독교는 신의 역할이 큰 신 중심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종교다. 그럼에도 분쟁이 거의 없이 다종교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전통종교는 종교宗敎라는 한자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마루 종宗에, 가르칠 교敎다. 종은 높다는 뜻이거나 근원적이란 말이다. 결국 근원적인 것을 가르치거나, 높은 뜻을 가르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각성과 성찰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종교다. 서양의 종교처럼 절대적인 신이나 내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양과 대륙이 만나듯 서로 다른 극단을 끌어안는 문화

불가의 선종에서는 부처가 길을 막으면 밟고 넘어가라고 한다. 부처가 우상으로 보이면 태워버리라고 한다. 교주를 밟고 넘어가라는 것은 기독교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불교의 선종에서는 교주가 인간과 상대적인 관계지만, 기독교에서는 교주가 세상을 창조하고 이끌어가는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종교인데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같은 종교 내에서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죽이고, 살인을 하는 야만을 저지른 것이 역사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불선과 기독교가 분쟁 없이 안착하게 된 걸까. 다른 생각에 자유롭고, 다른 사상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한국인이다. 다른 것을 수용하는 기질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해결하려는 노력이 아주 강하다. 해결하지 못하면 절박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문화가 발원하는 곳이다.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으로 대륙문화와 해양문화라는 거대한 이질적인 환경의 한 복판에 있고, 수시로 변하는 계절적 요인과 일 년에 일모작이라는 특수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것이 호기심과 함께, 호기심을 기어이 해결하려는 악착같은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대륙문화와 해양문화의 만남의 장소가 한국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보면 우리는 반도국가로 바다로 나가는 출발지다. 동해와 남해를 거쳐 거대한 태평양과 만난다. 해양문화로 나가는 전초기지다. 반대로 바다에서 보면 대륙으로 들어가는 부두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대륙과 대양이 만나는 지점이 한국이다. 이를 제대로 살린 사람이 역사 속에서도 있었다. 장보고다. 장보고 선단은 한중일을 잇는 교역로를 만든 인물이다. 지금의 중동지역까지 물물교류를 한 통 큰 사나이다.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주는 예다.

또 하나는 사계절을 가지고 있어 변화에 익숙해야 하고, 변화에 대응해서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해내야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더위와 추위를 함께 극복해야 했다. 농사는 오뉴월에 파종해서 시월에 거둬들인다. 농사짓는 기간이 불과 5~6개월이다. 일 년 중 반년을 일해서 한해를 살아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여기에 태풍, 가뭄, 병충해 같은 것이 수시로 찾아왔다.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해결해야 한다. 가뭄이 오면 물을 지어 날라서라도 물을 대야 한다. 물을 못 대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를 망치면 절망적인 상황이 온다.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으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결국 일을 시작하면 밤이고 낮이고, 가족 구성이 모두 나서서 매달려야 한다.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아야 하는 성격이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강해야 했다. 우리의 끈질김은 상황적인 절박함에서 왔다. 또한 우리의 탐구심은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에서 왔다. 머리를 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해서 일을 시작하면 암팡지게 매달린다. 기어이 해결하고야 만다. 다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탐험심이었고, 모험이었다. 그리고 기어코 문제를 해결하고야 만다.

한국인은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여 내면화하고 사회화 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이 한민족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을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고 다른 것은 배척할 것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는 또 다른 생각이고 방편이 될 수 있었다.

▲ 신광철 작가, <극단의 한국인 극단의 창조성>의 저자. 시인-작가며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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