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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에 빼앗긴 대한의 천문학(2)천문학을 생활화한 한민족의 천문 유적과 유물들

■ 천문학을 생활화한 한민족

이렇게 중국이 우리문화유산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 중국이 우리나라에 문화를 전수한 종주국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독자적으로 개발, 발전시켰던 문화유산은 없는 것인가? 또한 그들에게 종속되기 이전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가. 고인돌의 왕국

전 세계 고인돌의 50% 정도가 몰려 있는 만주와 한반도는 예로부터 한민족이 터전을 마련

고인돌에 표시된 성혈(性穴)

해 살아온 곳이다. 그런데 함안 군북면 동촌리 고인돌, 포항시 북국 칠포리 고인돌 등 수많은 고인돌 유적에서 별자리로 보이는 홈이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동안 이 홈들은 생산과 풍요, 자손 기원 등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나 원시종교의 흔적, 불씨 제작에 사용된 홈이나 장식적인 표식 등으로 해석되어 성혈(性穴), 알구멍 등으로 불렸다.

장천1호분의 북두칠성

그런데 연구 결과 이 홈들이 북두칠성과 같은 대표적인 별자리를 새긴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들 별자리 문양은 고대인들의 죽음과 탄생에 대한 관념을 반영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또한 무덤 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나. 고구려의 고분벽화

이렇게 무덤에 별자리를 새기는 전통은 고구려의 고분벽화로 이어진다. 고분의 벽이나 천장에 그려진 벽화에는 별그림과 함께 별자리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현재 별그림이 발견된 고구려 고분은 24기(基)인데, 그중 서기 5세기부터 한자로 쓴 별자리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국 집안에 위치하고 있는 5세기 중엽의 고분인 장천1호분에는 북두칠성과 해와 달, 남두육성 등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별자리 벽화는 당시의 천문학 지식과 종교관, 고분 주인의 사회적 신분 등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옛 사람들의 상징세계를 구현한 의미 있는 자료이다.

다. 윷놀이

금성산성 윷판바위

삼국시대 이전부터 백성들에게 널리 유포된 것으로 알려진 윷놀이에도 천문학의 원리가 담겨

금성산성 윷판바위

있다고 한다. 윷판에 28수와 24절기 등 시간과 때의 바뀜을 밝혀 놓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생활 속에서 천문을 깨닫고 실천하며 하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한 하늘의 민족이었다.


 

■ 천문 유적과 유물들

가. 우리나라의 고대 천문관측대

천문 관측을 수행한 공식적인 장소와 유적을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제단으로 알려진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고구려의 천문대로 추정되는 평양의 첨성대, 신라 선덕여왕 때(633년경) 축조된 경주 첨성대, 개성 만월대 서쪽에 있는 고려의 첨성당, 경복궁 안에 있던 대간의대(大簡儀臺, 임진왜란 때 파손), 조선의 세종대왕 때 세워졌다고 추정되며 현재 비원 옆에 위치한 소간의대, 숙종 14년(1688)에 세워져 현재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觀天臺) 등, 그 수도 다양하다.

① 마니산 참성단(塹星壇)

마니산 참성단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고대 우주관을 따라 지은 천문관측대이자 제단이었다. 실제로 고려 시대 몽골군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천문 관측을 수행했던 점성대로 추정된다. 또 조선 시대 편찬된 《서운관지書雲觀志)에는 혜성 등의 관측을 위해 관상감 감원이 파견되었던 기록이 있다.

② 첨성대(瞻星臺)

경주 반월성 동북쪽에 있는 첨성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천문대로 그 구조는 28수, 365일, 12달, 24절기를 상징하고 있다. 첨성대는 천문대 외에 제단 및 해시계의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첨성대는 위는 네모나고 아래는 둥글며, 속이 비어있어 그 속으로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물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첨성대에서 천문을 묻고, 요사한 기운을 살폈다” (동사강목)

③ 백제의 천문대

백제에는 이미 천문관측기구가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점성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점성대는 말 그대로 별을 보고 점을 치는 곳, 혹은 별을 보는 곳이라는 뜻이다. 백제는 삼국 중에서 유일하게 중앙행정부서에 과학기술부라고 할 수 있는 '일관부'를 둘 정도로 각별하게 천문학에 관심을 쏟았다.

백제천문학은 일본에 전해져 일본에서도 물시계와 점성대를 비롯해 일본달력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는 일본천왕이 시간의 지배자, 하늘의 지배자로서 스스로 '황제'의 지위에 오르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나.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이성계에게 전해진 천문도의 탁본 복사물에 대해 권근은 “몇 세기 동안 돌에 새겨진 평면천체도가 평양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672년 고구려가 신라에 의해서 함락되는 전란 중에 대동강에 빠져 소실되었던 석각천문도의 탁본” [권근(權近, 1352∼1409)의 《양촌집(陽村集)》 천문도시(天文圖時)조]이라고 했다. 태조는 그것을 매우 귀중히 여겨 돌에 다시 새기도록 서운관(書雲觀)에 명하였으며 우려골절 끝에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보다 앞서 있으며, 일본 최초의 천문도인 천상열차지도(1670)와 천문분야지도(1676)에 영향을 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그 정확성과 세밀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축, 즉 북극은 2만5천8백 년을 주기로 별들 사이를 서서히 옮겨가며 하늘에서 원을 그리는 세차운동을 한다. 이를 이용해 옛 천문도에 그려진 별자리들의 위치를 북극과 적도의 위치와 비교하면 그 천문도가 어느 시대 밤하늘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천문도 중앙부인 북극 주변은 조선 시대 초 근처로, 그 바깥에 있는 대부분의 별들은 서기 1세기경인 고구려 시대 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동서를 막론하고 일찍이 이만큼 이른 시기에 온 하늘의 별자리를 한데 모아 그린 성도(星圖)는 없었다._박창범 교수(서울대학교 천문학과)

[ 글 : STB상생방송 구성작가 김덕기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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